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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조선시대 '대하(大蝦, 왕새우) 어장의 고장' 옥구현(군산)

조선시대 '대하(大蝦, 왕새우) 어장의 고장' 옥구현(군산)

기록적인 더위를 견디고 혀끝으로 맛본 가을은 달기만 하다. 파닥파닥 튀어오르던 대하가 냄비 안 천일염 위에서 힘을 잃고 장렬하게 소금구이로 전사(?)해 가는 동안 앞바다는 조금씩 펄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대하가 익어갈 때쯤 한 손엔 가위, 한 손엔 집게를 들고 나타난 ‘ㅇㅇ수산’ 주인이 능숙한 솜씨로 대하 머리와 몸통을 해체·분리해주며 한마디 한다.

 “싱싱한 가을 대하는 이렇게 껍질도 잘 까지고, 살이 탱탱하며 감칠맛이 살아 있어요”

소금을 깐 프라이팬 위에 올려 익히거나 밀가루옷을 입혀 튀겨먹으면 탱글탱글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올 여름 고수온 탓에 광어와 우럭 등 양식 어류 폐사가 잇따라 어민들의 걱정이 컸던 상황.

다행히 대하는 오히려 씨알이 굵어지고 길이가 20cm 를 넘는 등 기대 이상의 상품 가치를 보이고 있다.

이 항구에 들어오는 어획량만 하루 평균 5, 6톤으로 예년보다 배 이상 늘었다.

조선시대 대하 어장은 어디였을까. 18세기 편찬한 '여지도서'는 남양도호부, 인천도호부, 안산군(이상 경기도), 홍주목, 서천군, 서산군(충청도), 해주목, 연안도호부, 백천군(황해도), 의주부, 용천부(평안도), 흥덕현, 부안현, 옥구현, 용안현, 함열현, 나주목, 영광현, 함평현, 무장현, 무안현, 순천부, 낙안군, 보성군, 흥양현(전라도) 지역 산물로 기록했다. 오늘날 서해와 서남해 지역이다. 모두 모래와 펄 등 갯벌이 발달한 지역이다.

 1894년에 간행된 '여재촬요'는 대하를 수원부, 옥구현, 보성군, 의주, 해주부 등 토산으로 기록했다. 

'동국여지지'는 대하를 수원도호부, 남양도호부, 인천도호부, 안산군(경기), 홍주목, 서천군, 서산군(충청도), 옥구현, 진도군, 순천도호부, 낙안군, 보성군, 광양군, 흥양현(전라도), 해주목(황해도), 용천군(평안도) 토산으로 기록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전주부 옥구현에도 
'토산'에 대하가 소개된다.

'대하(大蝦)ㆍ대게[大蟹]ㆍ곤쟁이(紫蝦)ㆍ조기[石首魚]ㆍ조개[蛤]ㆍ토화(土花)ㆍ굴[石花]ㆍ전어(錢魚)ㆍ홍어ㆍ숭어[秀魚]ㆍ준치[眞魚]ㆍ붕어[鯽魚]ㆍ부레[魚鰾]ㆍ웅어[葦魚]ㆍ차ㆍ생강'

금강은 내수면 어업의 중심지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1454년 완성된 ‘세종실록 지리지’ 관방수어조에 따르면 금강은 호남과 충남의 조세와 공물 운반을 하는 주요 수로였다.
 이곳을 끼고 있는 옥구현의 조기, 준치, 대하, 숭어 등 진상품까지 운반했다고 전한다.

'자산어보'에 새우를 '하(蝦)'라고 했지만, 다른 문헌에는 '하(鰕)'를 쓰기도 한다.

일식집 차림표나 간판에 보면 왕새우를 그려놓거나 ‘大蝦전문’이라고 쓴 것을 볼 수 있다. 고급요리 의 주요 재료로 쓰이는 왕새우는 큰 놈은 몸길이가 30cm쯤 되면서 온몸에 분홍빛이 돌고 맛이 좋다. 
이 왕새우 요리는 일찍이 생선요리와 새우요리가 발달한 일본에서 들어온 것인데, 그래서인지 우리나 라에서도 그들이 쓰는 한자를 우리말 소리대로 읽어 ‘대하(大蝦)’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어로는 ‘大蝦’라고 쓰기만 하지, 읽기는‘오오에비(おおえび)’라고 읽는다. 한자 그대로 보자면 ‘큰새우’라는 뜻이니 우리 말로‘큰새우’, '왕새우’라 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 
한국에 왔으면 ‘대하’도 ‘큰새우’가 되고‘왕새우’ 가 되어야 하건만, 이렇듯 하찮은 것에서도 일본 한자어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자산어보' 새우 관련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