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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209> 음력 10월 1일의 모임 '난로회(煖爐會)’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209> 음력 10월 1일의 모임 '난로회(煖爐會)’

<그림1> 왼편 작품을 보면 보름달이 떠 있는 저녁에 유생 다섯 명과 기녀 세 명이 산속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인물들의 복식과 앙상한 나뭇가지로 보아 계절은 겨울임을 알 수 있다. 복건을 쓴 남자는 집어 든 음식을 막 먹으려 하고, 풍차를 쓴 연장자는 음식을 입에 넣으며 그 맛을 한껏 음미하고 있다. 
갓을 쓴 이는 불판에서

음식을 집고 있고, 뒤늦게 방금 도착한 남자는 헐레벌떡 뛰어와 자리를 찾고 있다. 뒷모습의 기생은 멀리 앉아 있는 남자에게 음식을 먹여 주는 듯하며, 다른 기생은 불판에 음식을 어디에 놓을까 고민중이다. 
그림 속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는데, 생동감과 현장감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또, 고기를 여러 양념과 함께 구워 먹는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조선시대 후기 서울의 특정 풍습인 '난로회(煖爐會)'를 묘사했다는 점에서 매우 희귀한 작품이다.

이 그림의 소장처인 덴버미술관은 1893년에 미국 콜로라도주 수도인 덴버 시내 중심부에 설립됐다. 


<그림2> 매화꽃 핀 계절 3명이 불판 앞에 둘러앉아 고기 파티중이다. 제일 왼쪽 갓을 안 쓴 분의 집에서 가까운 곳이다. 이 분은 주최측 답게 긴 젓가락으로 뒤적이며 고기를 굽는 중이고, 그 옆에서는 고깃점을 입으로 가져간다. 

한 명은 얼굴을 가리는 차면선(遮面扇)을 들고 뒷짐 진 채 이런 모습을 내려다본다. 이 분은 왜 서있는 걸까. 상중인지? 소고기를 못 드시는지? 채식주의자인지?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부터 겨울이 되면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는 난로회(煖爐會)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난로회가 그림으로, 기록으로, 시로 전한다.

닥쳐올 한기를 막기 위해 추운 계절을 앞두고 몸보신을 하는 시식(時食)인 난로회는 시월 초하루 세시풍속이었다. 

'난로회'란 더울 난·화로 로·모일 회로 이루어진 단어로, 겨울의 추위를 막고자 따듯한 화로 앞에 둘러앉아 음식을 즐겼던 모임을 의미한다.

난로회는 보통 음력 10월 1일에 이뤄졌으며, 정조와 연암 박지원 등의 기록을 보면 궁중과 민간 할 것 없이 전국적으로 퍼져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풍속에 화로에 숯불을 피워놓고 석쇠(燔鐵·번철)를 올려놓은 다음, 기름·간장·계란·파·마늘·후춧가루로 양념한 소고기를 구워먹는데 이를 난로회(煖爐會)라고 한다. 숯불구이는 추위를 막는 시절음식으로 이달(음력 10월)부터 볼 수 있으며 난로회는 곧 옛날의 난난회(煖暖會) 같은 것이다”

홍석모(1781∼1857)가 '동국세시기'에서 소개한 음력 10월(이하 음력) 서울풍속 중 하나다. 책이 언급하는 음식은 조선시대 소고기 요리의 최고봉이라는 ‘설하멱적’(雪下覓炙·눈내릴 때 찾게 되는 구이)이다.

 음력 10월이면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눈이 내릴 때 쯤, 화로 앞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구워먹던 고기가 바로 설하멱이다.

가난하고 궁핍했던 조선시대, 소고기는 ‘큰 솥에 물 한가득 붓고 끓여 멀건 국으로 겨우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을 것으로 인식되지만, 뜻밖에도 그시절 사람들은 현대인도 귀해서 잘 먹기 힘든 소고기를 숯불에 구워먹었다. 사실, 조선사람들은 소고기 마니아였고 조선은 한해 40만 마리의 소를 도축하는 ‘소고기 왕국’이었다.

조선 사람들은 여러 육류 중 소고기를 제일 좋아했다. “우리나라의 풍속이 소고기를 가장 좋은 맛으로 생각해서 이를 먹지 못하면 살 수 없는 것 같이 여깁니다. 비록 금령이 있지만 오히려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1683년(숙종 9) 1월 28일, 송시열(1607~1689)이 숙종에게 소를 늘리는 대책을 제안하며 언급한 내용이다.

박제가(1750~1805)의 '북학의' 역시 “어떤 사람이 돼지 두 마리를 사서 짊어지고 가다가 서로 눌려서 돼지가 죽었다. 하는 수 없이 그 고기를 팔게 되었지만 하루가 다 지나도 돼지고기는 팔리지 않았다. 이는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소고기를 유난히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날 전라도에서는 잔치에 홍어가 빠지면 잔치가 아니라고 한다지만 조선시대 서울에서는 잔치상에 반드시 소고기가 올라와야 했다.

 이덕무(1741~1793)의 '세시잡영(歲時雜詠)'은 “(잔치때 잡는 소가) 부자들은 2~3마리(上富層數牛), 중간 부자들은 1마리(中富層一牛)”라고 했다.

임금의 수라에는 소고기가 빠지는 날이 없었지만 폭군 연산군(1476~1506·재위 1494~1506)의 소고기 사랑은 유별났다. '연산군일기' 1506년(연산 12) 3월 14일 기사에 따르면, 연산군은 소고기 먹기를 좋아해 불시에 고기를 올리라 했고 미처 준비하지 못했을 때는 길가는 소를 빼앗아 바쳐 원망하는 자가 길에 가득했다. 연산군은 송아지와 지라, 콩팥 등 특수부위를 즐겼다고 실록은 전한다. 소고기는 전투를 앞둔 군사들에게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술과 함께 지급되기도 했다. 진주목사 김시민(1554~1593)의 문집 '부사집'은 “왜적이 성을 포위하여 바야흐로 긴급하지만 구원병은 오지 않았다. 공이 밤낮으로 성을 순시하며 소고기와 술을 군사들에게 먹였다”고 했다.

<그림4>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성협 (成夾)의 풍속화첩’에 실린 '야연(野
宴)'에서는 고기 익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다섯 명의 남자가 야외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난로를 중심으로 모여 고기를 구워먹고 있다. 불이 벌겋게 올라오는 화로 위에 벙거짓골이 얹혀 있고, 사내들은 잘 익은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며 술도 한 잔하고 있다. 

불기운이 가득한 화로 위에는 벙거짓골이 올려져 있다. 벙거짓골은 일종의 전골냄비로, 그 생김새가 마치 벙거지를 엎어 놓은 것과 같이 생겼기에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벙거짓골은 가장자리에 고기를 구우면 안쪽의 움푹한 부분으로 육즙이 흘러들어 채소를 익혀 먹을 수 있는 특이한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아마도 이 시대에는 국물이 적은 전골 요리를 즐겨 먹었던 모양이다.

'화제'에는, '버섯과 고기, 천하의 일미로구나(香蘑肉膊上頭珍)'라는 감탄이 허사가 아님을 알겠다.

그림 속 장면은 젊은이가 관례를 치르고 난 후에 어른들을 모시고 술과 소고기를 대접하는 것을 묘사했다.

난로회에 모인 다섯 남자의 차림새에서 보이는 두터운 복건과 털 달린 남바위를 쓴 것으로 보아 날씨가 제법 쌀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즐거운 날이기에, 차가운 공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불을 쬐며 술과 함께 안주를 먹고 마시면서 분위기를 한껏 내고 있다. 

그림 한편에는 숯이 담긴 바구니가 있어 숯불로 고기를 굽는 방식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창 숯불구이를 만드는 데 열중하는 이는 잔치를 주최한 주인으로 보이며, 가장자리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댜양한 모습으로 술과 고기를 즐기고 있다. 

손으로 고기를 집어먹거나 고개를 돌린 채 술 한잔을 입안에 털어 넣는 사내, 이들 외에도 한 손에는 고기를 담은 그릇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젓가락으로 뜨거운 고기를 집어 후후 불어서 먹는 남자의 모습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식사에 열중하고 있는지를 잘 느낄 수 있다. 

그들 주위는 마늘과 파의 향, 그리고 고기 냄새가 진동한다. 연신 고기를 집어삼켜 배를 든든히 채움과 동시에 정감 넘치는 대화가 오갈 것이 눈에 선하다.

 '화제'가 재미있다. 한자리에 모여 맛있는 고기와 버섯을 먹으니 좋지만, 늘그막에 이런 기회가 늘 생기지는 않으니, 식탐을 조심해야겠다는 내용이다.

'술잔과 젓가락 늘어놓고 온 동네 사람과 모인 자리/ 버섯과 고기가 정말
 맛나네/ 늘그막의 식탐이 이쯤에서 다 풀리겠냐만/ 푸줏간 앞에서 입맛만 다시는 사람 꼴은 되지 말아야지.

杯箸錯陳集四隣
香蘑肉膊上頭珍
老饞於此何由解
不效屠門對嚼人(성협의 ‘야연’ 속 시구)'

성협의 그림에는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는 방법이다. 고기를 집는 이들을 자세히 보면 젓가락을 X자형으로 쥔 걸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젓가락을 어떻게 집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바른 젓가락질로 알고 있는 엄지와 검지로 집는 방식과는 사뭇 차이가 있는 흥미로운 장면이다.

K푸드 세계화의 골든타임을 놓지지 않기 위해선 한식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록 우리의 일상에서 전립투를 접하기란 많이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잔을 부딪칠 소중한 사람은 남아있다. 어쩌면 난로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맛있는 전골 음식도, 취기를 살짝 올리는 술도 아닌 따듯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함께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충분한 준비가 될 것이며, 사람이 모이는 곳엔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행복한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좋은날,  좋은 사람들이랑 먹는 소고기 한우는 사랑이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되기를 바란다.

사진1

왼쪽부터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작품인 '겨울철 야외에서의 연회'와 '거리의 판결'.(미 덴버미술관 제공)

사진2

작가 미상, '상춘야연도(賞春野宴圖,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사진3

추운 겨울날 나무 밑에서 벌어지는 소고기 파티(일부 그림). 조선 후기 초겨울이 되면 볼 수 있다는 ‘난로회(煖爐會)’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풍속화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4

성협 필 풍속도(19세기). 남자 5명이 숯불 위에 소고기를 구워먹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