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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73> 연한 봉동 생강으로 만든 정과(正果)와 탕후루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73> 연한 봉동 생강으로 만든 정과(正果)와 탕후루

조선 말기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전주(全州) 봉상면(鳳翔面)에서 나는 생강은 초가을에 연한 것을 캐어 정과(正果)를 만드는데, 천하의 진미이다. 
판서 김교근(金敎根)이 전라도관찰사가 됐을 때 풍고(楓皐)가 이것을 요구하니, 김공이 힘써 달여서 보냈는데 풍고가 너무 늦었다고 책망했다. 김공이 뒤에 들으니 한 아전이 선수를 쳐 올려 보냈다고 하므로 매로 다스려 죽이고자 했는데, 양일(兩日) 간에 청탁하는 서찰이 갑자기 이르렀다. 그 내용에, “일찍 이 맛을 보게 된 것은 역시 감사(監司)의 공입니다” 했으니, 권력 있는 아전이 본관(本官)보다 나은 것이 본래 이와 같은 것이다’라고도 나온다.

여기서 풍고는 조선 후기 순조의 장인이며 노론 시파(時派)의 핵심이었던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을 말한다.

현재는 옛날과 반대로 설탕이 흔해지고 꿀이 비싸져서 꿀로 절인 것이 더 비싸다. 중국에 탕후루라는 비슷한 요리가 있다.
이 탕후루는 중국 송나라 때 황제인 광종의 첩이었던 황귀비가 몸이 허약해 어떠한 약제와 시술로도 병이 낫지 않았지만, 한 한의사가 소화를 돕는 산사나무 열매를 설탕과 달여서 식전에 먹게 했더니 병이 나았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가 백성들한테 퍼지자, 사람들은 산사나무 열매를 꼬치에 꿰어 팔기 시작했고 이것이 탕후루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