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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고수레(고시레)

옛날 어른들은 야외에서 식사하실 때, 으레 음식의 첫 술을 땅에다 버리시며 고시레’, ‘고시래’, 또는 고수레라고 하신 뒤에 음식을 드셨다. 고시레라는 말의 유래는 모두 스무 가지가 넘는다 한다.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되는 설화의 내용을 소개하면, 어느 지역에 고씨 성을 가진 한 부자가 있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며 덕을 쌓았는데 자손이 없이 죽은 까닭에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없자 사람들은 그 부자의 덕을 추모해 그분 제삿밥 삼아 자기 먹을 밥의 첫 숟가락을 그 부자에게 바치며 고씨네라고 말하던 것이 발음이 변해 여러 가지의 말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은 흉년이 들었는데도 유독 그 사람만 풍년이 됐다고 해서 다들 그 풍속을 따르게 된 것이라고도 한다.

김제 만경 성모암은 진묵대사 어머니의 묘소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불심과 효심이 다르지 않다고 여긴 진묵대사가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 千年香火之地)'에 모셨다. , 자손이 없어도 천년 동안 향불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곳으로 진묵대사가 어머니를 위해 잡은 명당이다. 성모암 석등을 지나 경내 왼쪽의 야트막한 구릉에 진묵대사 어머니의 무덤이 잘 가꾸어져 있고, 무덤을 돌볼 '고시래전(고시례전으로 표기)이 있는 것도 전국에 유일무이하다. 이곳에서 성모님께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영험이 전하면서 참배와 향화가 그치질 않는 곳이기도 하다. '진묵조사유적고'에는 어느 날, 늙은 어머니를 전주 왜막촌에서 봉양하고 있을 때 어머님이 여름날 모기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산신령을 불러 모기를 쫓게 한 후로 이 촌락에 모기가 영영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하기도 한다.

무당은 마지막 순서로 밥을 퍼서 강물에다 고수레를 했다’(윤흥길의 소설 '무제'에서)

고수레라는 말은 감탄사다. 지방마다 유래가 좀 다르지만 거의 들이나 산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준비해간 음식 중에서 하얀 밥 같은 것을 던지면서 외치는 소리다. 고시레를 외치면서 음식을 던지는 행위는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풍속 중의 하나다. 이같은 행위는 대개 봄철에 모내기를 할 때나 여름철에 김매기를 할 때 주로 행해졌다. 따라서 벼농사와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김제에서는 고시레라는 말이 진묵대사(震默大師) 어머니 고씨 부인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래, 그때는 그랬다. 모를 심던 날도, 감자를 심던 날도, 김을 매던 날도, 새참을 먹기 전 부모님은 밥 한술을 논과 밭에 던져줬다. 그때마다 외치던 고수레의 의미를 몰랐다. 이제는 철이 들어서야 알았다. 벌레들이 던져진 밥알을 먹듯 모든 생명과 함께 사는 것이었다. 지금 '고수레밥상'을 펴야 할 때가 아닐까? 이번 한가위엔 대대로 우리 몸에 아로새겨진 나눔의 정을 나눠야 할 때가 아닐까. 농부들의 풍년 농사 수확의 의미와 함께 여러분들의 만사형통을 빌면서 '고수레, 고시레, 고수레....'/이종근(문화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