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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종근의 역사 문화 이야기 41> 전주의 게와 무 맛을 아십니까

<이종근의 역사 문화 이야기 41> 전주의 게와 무 맛을 아십니까

한국학호남진흥원이 이종근에게 '지송사고(遲松私稿)'와 '성남만록(城南漫錄, 2권)'의 교점본(校點本)을 보내왔다.

교점본이란 한문 원본의 올바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보기 편하게 띄어쓰기 작업을 의미하지만  통상 한글로 국역까지 하지는 않는다.

홍석희(1904~1980)의  '성남만록(城南漫錄)'엔 오목대 등 전주를 읊은 시 15편이 실려 눈길을 끈다. 

이 가운데  '자줏빛 게'와 '무'가 소개되는 바,  이종근이 처음으로 국역해  소개한다.

1.자줏빛 게를 먹다(食紫蟹)

전주천은 자주빛 게를 산물로 내놓는다. 가을이 되면 살이 통통하게 올라 집돼지보다 훨씬 맛이 좋다. 고기잡는 사람이 천의 물을 가로로 잘라 막고 중간 한 곳를 잘라 잘 흐르게 한다. 그 두둑에 장막을 만들어 놓고 밤이 오기를 기다려 유역(流域)에 불을 든다. 그러면 불 아래로 게가 모여든다. 이에 고기잡는 사람이 사로잡을 수 있다. 만일 날아 갑자기 등을 칠 경우 스스로 사로잡히게 된다. 전주천 위아래 곳곳마다 어막(漁幕)이 많았다.

게를 사로잡아 아침에 집으로 돌아오네
게를 잘 꿰어 날마다 시장(남부시장)에 내다 파네
내가 오니 가을은 이미 무르익고
시장에서 파는 술과 함께 진미를 맛본다.

2.무(菁根)

전주의 속어(俚語)에 이르기를 '배(梨)는 무만 같지 못하고, 기생(妓)은 벼슬아치(知印, 아전, 통인)만 같지 못하다' 이는 대개 무 맛의 진가(珍佳)가 벼슬아치가 사람들을 대함과 같다.

무(菁)의 맛이 사각사각함이 눈(雪)과 같고,
무우색이 고결해 옥(璵)과 같다.
작게 자르면 초나물(醋菜)이 되니
고기없이 먹는 것도 한숨 쉴 일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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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산십미(完山十味)

완산십미(完山十味)는 전주와 완주의 멋을 만한 음식 열 가지를 말한다.

파라시는 8월에 나오는 감이다. 서낭골(성황사와 기린봉 밑)과 산성골(남고산 주변), 남고진, 안터골(구이동, 평균), 대성골(상관, 대성리)에서 나는 것이 더욱 맛이 있었다.

전주 감은 맛이 좋기로 옛날부터 유명하다. 물이 많고, 달며, 씨가 별로 없어 먹기에 좋고, 먹고 난 다음 입맛이 개운해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입에다 넣으면 사르르 녹아 버린다고 해서 손꼽힌다.

 열무는 전주 기린봉 기슭과 효간재(구이면)에서 나오는 것을 손꼽는다. 응달에서 자란 것일수록 연하고 사각사각한 맛이 훌륭하다.

녹두묵은 자만동(교동) 녹두포 샘물을 이용하여 만든다. 

서초(담배)는 완주군 소양면 대흥골과 상관면 마치골 산이 평안도 성천, 충청도 충주, 증펴 진천 맛과 버금했다.

 애호박은 신풍리(송천동) 산동(山洞)에서 나왔다. 

모자(모래무지)는 모래 속을 파헤치면서 생활한다. 남천, 서천의 모자와 조림(지짐)과 부침, 탕 들은 술꾼들이 좋아했다.

민물 게는 삼례 한내의 것을최고로 꼽되 전주 남천, 서천, 남고천, 반석천, 다가천, 가련천, 삼천 것도 곁들여 꼽았다. 그러나 지금은 전주천에서는 게와 비슷한 것도 발견할 수가 없다. 특히 게찜, 게장조림 등이 유명했다.

무우는 옛날부터 삼례 황토밭 산, 신풍리 산동 산에서 생산된 게 맛이 좋았다.  황토밭에서 나는 무우는 돌멩이처럼 단단하고 둥글면서도 큼직하여 인기를 끌었다.

콩나물은 옛날 부성 사람들이 하루 세 차례씩 음식상에 올려 먹었던 반찬이다. 상정골과 자만동(현재의 교동 일대)의 녹두포 샘물로 기른 콩나물을 일품으로 꼽았다. 이밖에 남천, 서천 물로 기른 것도 있었다.

미나리는 전주시 화산서원 고개를 넘으면 물씬 향취를 냈다. 이 일대는 유래가 깊은 미나리 방죽이다. 옛 부터 전주 미나리는 유명하다. 미나리 줄기가 연하고 겨우내 물속에서 자라 그 맛이 또한 일품이다. 전주의 미나리는 그런 약용보다는 그 맛이 독특해서 밥반찬으로 손꼽힐 만하다. 


지금도 아주 어려운 일을 능수능란하게 한다는 뜻의 ‘선 너머 아가씨 미나리 다듬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