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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세보와 순창고추장

[문화 인문 스토리] 여기는 발효의 세월이 흐르는 순창입니다

-이세보와 순창고추장

화방재(畵舫齋)는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에 있던 조선 후기 정자다. 
이는 여암 신경준(1712~1781)은 고향 순창에 잠시 머물던 1769년 당시 군수 신경조의 부탁을 받고 이의 축조 과정을 기록한 화방재기를 지었다. 권복(1769~1833)이 남긴 '곡운공 기행록(谷耘公紀行錄)' 남유록(南遊錄, 1818년 8월 11일~9월 23일)' 유상편에 응향각(凝香閣)·화방재와 관련,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순창 응향각은 동헌 곁에 있다. 집 아래에는 작은 호수가 있어서 연꽃이 많이 피어 있으며 호수 기슭에는 화방재가 있는데, 우뚝하게 이름난 정자이다'

신경조가 순창의 명승으로 알려진 응향각 주변에 화방재를 지었다. 응향각은 강물을 끌어 와 연못을 조성하고 백련을 심은 뒤 작은 배를 띄워 놓았으며, 주위에 대숲과 나무들이 둘러싸여 그윽한 맛이 있었다. 그러나 넓게 트인 경치를 볼 수 없어 응향각 서쪽의 남지(南池)와 시내 사이의 긴 언덕에 새로이 누각을 세워 화방재라 이름했다.
시조 작가 이세보(李世輔,1832~1895)가 응향각과 화방재에서의 유락과 추억을 노래한 시조 4수가 남아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적어도 19세기 말까지 존재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세보(경평군 이인응)는 458수의 시조를 지어 조선시대에 가장 많은 시조를 남긴 인물이다. 철종의 종제(從弟)이자, 흥선대원군의 육촌 아우이기도 하다. 
순창과 이세보의 인연은 1860년(철종 11) 봄에 시작된다. 아버지 이단화가 순창군수로 부임하면서부터다. 이때 그는 순창·순천·화순 지방 등을 유람하면서 쓴 유일한 가사
'상사별곡'을 지었다. 
당시  이단화가 순창 군수로 재임 중이었기 때문에, 이세보는 특히 순창을 중심으로 기생과 악공을 대동하고 풍류를 즐겼다. 이는 표면상 상사류(相思類) 가사이지만, 내용을 보면 풍류 마당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지은 애정 가사이다. 이세보는 이 작품에서 기생 신분의 여성 화자를 설정하여 풍류 마당에 함께 자리한 기생들의 관심과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 결사 부분에서는 흥겨운 사설을 사용해 분위기를 반전하고 유흥성을 고조하는 효과를 꾀하고 있다. 
이세보는 아버지가 순창군수로 부임할 때, 이 지역을 유랑하면서 8수의 시조를 지어 '풍아(風雅)'라는 시조집에 남겼다. 그의 '순창팔경가'는 여러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다. 지역적으로는 순창 일원의 팔경을 담아낸 유일한 작품이라는 의의가 있다.
이세보는 방위별로 군집을 지으면서 순창의 팔경을 선정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관아가 위치한 순창의 북쪽, 경천 건너의 남쪽, 그리고 적성강이 흐르는 동쪽을 차례로 훑어가며 두 개씩의 경치를 연관 지음으로써 지점과 지점 사이의 상관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제1, 2수는 순창의 진산인 금산과 그 주변의 경치를 담음으로써 작품의 시발점을 삼았다.  제3, 4수를 묶어 주는 기반은 ‘대’와 ‘연’이라는 소재이다. 순창에서 손꼽히는 두 가지 식물의 정취가 두 수에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순창에서 달밤을 즐기기에 가장 이상적인 공간을 두 군데 선정, 제5, 6수를 지어 내었다고 파악된다. 또, 그 두 곳이 모두 아미산이라는 공간적 범위로 수렴되고 있기도 하다. 제7, 8수는 적성산과 적성강이라는 순창군 동편의 승경을 다루었으며, 모두 ‘대(臺)’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관을 담고 있다.
김건우 전주대 교수는 몇 년 전 모 일간지에 1868년 1월 18일 충북 보은에 잠시 거처하던 이세보가 순창 인화면(현재 인계면) 마흘리에 거주한 전주이씨 집안에 보낸 편지 내용 일부를 소개했다. 

“고맙게 고추장을 먼 이곳까지 보내주시니, 감사한 마음이야 어찌 물품에 있겠습니까. 더욱 두터운 성의가 많아 감격스럽습니다. 언제쯤 왕림하시겠습니까. 간절히 바랍니다. 이곳에서 극히 구하기 어려운 물품은 고춧가루입니다. 부디 몇 말을 구해 보내주시면, 값은 편지로 알려주시면 즉시 갚겠습니다. 잊지 마시고 각별히 주선해주십시오. 거듭 말씀드립니다.”

보낸 준 순창고추장에 감사하며 보은에는 고춧가루를 구하기 어려우니 꼭 보내 주고 값은 편지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편지와 함께 이세보는 달력 1건을 보내줬다고 한다. 

1874년 10월 21일 보은에 사는 이종응(李宗應)이 순창에 보낸 답장에서도 보내준 고추를 받아서 잘 사용해 감사했다. 이어 부탁한 고춧가루를 유념해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두 차례 보내주신 고추는 긴요히 잘 썼습니다. 다음해 봄 고추장을 만들 때 오히려 부족하다고 합니다. 고춧가루 5, 6되를 더욱 유념하여 낭패한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해 주십시오. 거듭 부탁드립니다.’

1874년 11월 15일 이종응은 순창에 두 차례 보내줬던 고추를 긴요히 사용했고, 다음해 봄은 고추장이 귀하지 않다고 하니 고춧가루 5, 6되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고춧가루 부탁뿐만 아니라 선산 관리, 산송, 매매 대금 환수 등 보은 측에서 여러 차례 부탁했다고 한다.
150여 년 전 순창 전주이씨 가문이 이세보 및 종중들과 정보를 교환하면서 고추장 선물을 통해 관계망을 형성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순창은 양질의 고추와 풍부한 발효 미생물, 천혜의 자연환경을 이용해 장인정신으로 발효시킨 전통고추장. 고추의 매운맛과 각종 미생물에 의해 생성되는 단맛, 구수한맛, 짠맛, 신맛 등이 잘 조화된 전통의 맛과 향을 보존하고 있다.
햇볕에서 잘 말린 고추만을 사용해 고추장 본래의 색과 향이 뛰어나고 장아찌는 다양한 원료를 소금에 절인 후 재래식 비법으로 오랫동안 숙성시켜 우리 선조들이 즐기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할머니ㆍ어머니ㆍ딸로 대물림하며 지극정성으로 장독대를 보살폈던 어머니의 사랑과 어우러진 생명이 숨 쉬는 맛. 
알싸한 이 맛,  “순창고추장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