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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선조들이 맛본 냉면

선조들이 맛본 냉면

"자줏빛 육수는 노을빛처럼 비치고, 옥색 가루가 눈꽃처럼 흩어진다. 젓가락을 입에 넣으니 그 맛이 입속에서 살아나고, 옷을 더 입어야 할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뚫는다."

紫漿霞色映 
玉紛雪花勻 
入箸香生齒 
添衣冷徹身


 17세기 사람 장유(張維)는 '계곡집(谿谷集)'에 ‘자장냉면’(紫漿冷麵). 즉 ‘자주색 육수에 만 냉면’이라는 시를 남겼다.
그때나 지금이나 냉면의 인기는 높다. 장유는 냉면의 차가운 육수와 쫄깃한 면발, 입속에서 살아나는 상큼하고 심심한 맛을 표현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냉면 마니아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냉면을 찾곤 한다. 냉면은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라는 마니아들도 있는 반면, 유명 냉면집에는 더워질수록 손님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사시사철 먹는 음식인 셈이다.

장유가 생전에 평양에 다녀 왔는지는 몰라도 주로 중앙관직에 있었고, 외직은 나주목사를 지다.

그런데 같은 시기 조경(趙絅1586~1669)의 [용주선생유고(龍洲先生遺稿)]에도 냉면(冷麪)이 나온다.  중국 사신을 대접하는 영빈사로 온 스님에 대해 쓴 시(詩)인데, "蘭奢之中動文采(난사지중동문채)스님다운 풍채에 문채가 나타나네, 冷淘湯餠又善謔(냉도탕병우선학)냉면이나 떡국들며 우스개도 잘하니"라고 나온다.


조선후기 학자인 이유원(李裕元1763~1835)은 [임하필기(林下筆記)]에서 '순조 초년(1800년)에 한가로운 밤이면 매번 군직과 선전관들을 불러 달을 감상하고 하셨다. 어느날 밤 군직에게 명하여 문틈으로 면(麵)을 사오게 하며 이르기를 "너희들과 냉면을 먹고 싶다"하셨다.
 

한 사람이 스스로 돼지고기를 사가지고 왔으므로 상이 어디에 쓰려고 샀느냐고 묻자 냉면에 넣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는데, 상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냉면을 나누어 줄 때 돼지고기를 산자 만을 재쳐 두고 주지 않으며 이르기를 "그는 따로 먹을 물건이 있을 것이다."하셨다. 이 일은 측근 시신(侍臣)이 자못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냉면에는 돼기고기가 들어 갔음을 알게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다산(茶山) 정약용(鄭若鏞1762~1836)은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에서 "拉條冷麪菘菹碧(납조냉면숭저벽)무김치 냉면에다 배추무침 곁들였다네"라고 냉면의 고명은 물론 냉면과 배추무침을 곁들였다는 당시의 냉면이 그려질 정도로 잘 묘사하여 시(詩)로 읊었다. 그뿐만 아니라 "湯餠錯冷淘(탕병착냉도)떡국도 먹고 냉면도 먹으면서"라며 당시 떡국과 냉면을 겨울에 먹었음을 알게해 주는 시(詩)를 남겼다.

조선후기 임백연(任百淵 1802~1866)의 [경오유연일록(鏡浯遊燕日錄)]에 '교생 이형린(李亨麟)이 그의 아들을 함께 데리고 와서 냉면 한소반을 내놓았다고 나온다. 김택영(金澤榮1850~1927) 역시 [소호당집(韶濩堂集)]에서 "簾幕重重翠影流)렴막중중취영유)겹겹의 주렴 장막에 푸른 그림자 비취네, 碧盌麵絲壓京陌(벽완면사압경맥)푸른 주발의 면발은 도성거리 압도하고"라며 평양풍속에 메밀냉면을 잘 만든다는 주석을 달았다. 조선말기 시인이며 문장가인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은 [매천집(梅泉集)]에서 "冷麵千絲石竇泉(냉면천사석두천)냉면 천 가닥을 돌틈 샘물에 말았구나"라고 읊었다.

조선말기에는 비교적 냉면(冷麵)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나오는데, 당시 중인(中人)출신인 공인(貢人) 지규식(池圭植)이 1891년 1월1일부터 1911년 6월29일까지 20년 7개월에 걸쳐 쓴 일기인 [하재일기(荷齋日記)]를 보면 '종로에 내려와서 민상순에게서 돈 5냥을 가지고 와 2냥을 주고 천유와 함께 냉면을 사먹었다'거나 '2냥5전을 주고 참외를 사다가 주인아주머니에게 선물했는데, 냉면 한 그릇을 또 내와 배불리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라고 나온다.

[하제일기]에는 그외에도 지규식이 수차에 걸쳐 냉면을 먹었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는 냉면 메니아였던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1915년 미국 시카고에서 냉면을 드셨다고 1925년 연설문에 나온다.

‘이재난고’를 보물로 지정하자

고창군이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실학자 황윤석 선생의 일기인 '이재난고'를 보물로 승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고창 출신 실학자 이재 황윤석 선생의 일기인 '이재난고'를 보물로 승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과거시험을 치르고 난 다음날 일행과 함께 점심식사로 냉면을 배달시켜 먹었다” 1729년 오늘(5월 25일),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은 일기처럼 쓴 '이재난고(전북 유형문화재 제111호)'에서 우리나라 ‘배달의 역사’를 250여년 전으로 끌어올립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 음식기록으로 보입니다. 1768년 7월 7일, 나이 마흔에 시험을 치른 뒤 맛본 냉면이었으니 얼마나 시원했을까요. 그는 서른한살에 진사시험에 합격했지만 문과에 급제하지 못하고 결국 낙향해 생을 마감합니다. 이는 영·정조시대 최고의 천문학자 탄생기입니다. 시험을 마치고 치맥을 먹는 요즘 대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큰 일을 치른 뒤에 맛있는 음식으로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자 하는 마음은 시대를 초월하는 심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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