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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황윤석과 배달 음식



배달음식의 역사는 아주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기록에 나오는 우리 민족 최초의 배달음식은 조선시대 냉면이다. 고창출신 실학자 황윤석은 1768년 7월 7일 자신의 일기‘이재난고'에 “과거시험을 본 다음 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평양냉면을 시켜 먹었다”고 적었다. 이는 우리나라 ‘배달의 역사’가 최소한 250년은 넘었다는 의미다.

장명수 전 전북대총장은 1930년대 주문집이 전주 완산동에 있었다고 했다. 주문을 하면 종업원들이 수건을 비비 틀어 머리에 괸 후, 교자상을 이고 신선로는 들고 왔다. 백반이나 한정식이라는 명칭이 나오기 전으로 한 상, 두 상으로 주문하면 배달해줬다. 전주에서 콩나물국밥을 팔던 진기파집은 서울의 혜천관을 모방하지 않았나 싶다.

1906년 7월 14일 일간신문 만세보엔 배달음식 광고가 등장한다. '각 단체의 회식이나 시내·외 관광, 회갑연과 관·혼례연 등 필요한 분량을 요청하시면 가까운 곳, 먼 곳을 가리지 않고 특별히 싼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 광고주는 최초의 조선음식 전문점 명월관이었다. 당시 고급 요릿집 명월관은 음식을 각각 그릇에 담아 교자상까지 차려 배달하기도 했다. 일종의 한정식 출장 뷔페였다. 당시 서울엔 혜천관도 있었다. 상류급 사랑방에 교자상 요리를 배달하는 주문집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 들어서면서 각종 탕과 냉면, 국밥, 비빔밥 등으로 배달이 확대됐다. 1931년 1월 2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다리 쓰는 일 중에 제일 많은 것이 배달부다. 한 시간에 달리는 거리는 대개 이십리. 하루 밤낮을 달린다면 거의 오백리나 된다’고 했다. 진주에선 관아 기생들은 진주냉면을 배달시켜 먹었다고 한다.

최영년의 '해동죽지'엔 서울 북촌의 재상 집으로 배달된 해장국 효종갱(曉鍾羹)이 나온다. 남한산성의 해장국집에서 배추속대, 표고버섯, 쇠갈비 등을 토장에 섞어 끓인 뒤, 소달구지에 실어 한양으로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때쯤 먹는 음식이었다. '순묘(純廟)가 초년에 한가로운 밤이면 매번 군직(軍職)과 선전관(宣傳官)들을 불러 함께 달을 감상하곤 하셨다. 어느 날 밤 군직에게 명하여 문틈으로 면(麵)을 사 오게 하며 이르기를, “너희들과 함께 냉면을 먹고 싶다.” 고 하셨다”’ 이유원의 '임하필기'엔 순조가 즉위 초 군직과 선전관을 불러 달구경을 하다가 “냉면을 사 오라고 시켰다”고 기록돼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20년 4월 17일 공공배달앱 ‘배달의 명수’로 유명한 군산시를 찾아 벤치마킹에 나섰다. 군산시는 공공 배달앱 ‘배달의 명수’를 상표 출원·심사 중으로, 가맹점과 회원은 각각 728개소, 4만3,919명으로, 하루 이용 실적은 355건에 이르고 있다. 이지사는 공공배달앱은 디지털 인프라다. 하나의 사회간접자본(SOC)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공공개발 의지를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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