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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와 황차



1762년 11월 남해안에 이상한 배 한 척이 고군산에 표류해 왔다.
중국 절강성에서 표류한 청나라 난파선을 탐문하고 보니, 그 큰 배에 가득 실은 것이 모두 황차였다. 중국 경험을 한 서울의 높은 관리도 아닌 호남 지역의 일반 백성들은 중국에서 생산된 차란 물건을 태어나서 그때 처음 구경했다. 중국 사람들은 표류를 당한 난감한 처지에서도 특유의 장사 수완을 발휘해서 배에서 그 차를 팔았다. 호기심에서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사갔다.
7,000여 냥에 해당되는 여러 물화가 실려 있었고, 그중 엄청난 양의 황차였다.

무엇보다도 조선차문화사에 충厩譜)던져준 사건은 1762년 영조 11월에

만이 말하였다. “고군산에 표류한 사람들의 복물(짐)이 많기는 300태(짐)에 이르러 운반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봉한이 말하였다. “호조에 일러 산원을 보내고, 값을 깍아서 주는 것이 좋을 줄로 압니다”.

    동도가 말하였다. “호남백성들에게 300태 복물을 운반시키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상께서 존겸에게 글로서 명하기를 “이제 고군산 표류인들의 짐을 만약 운반해 온다면
  300태가 된다고 하는데, 이때 그것을 본도의 백성들에게 어떻게 쓰게 하여야 할까?  탁지종장들이 맡은 곳에서 서울을 대신하여 일을 처리 하여라 ”하고 분부하시며 전교를 내렸다.

    만이 말하였다. “지도 표류인들은 수로로 돌아가기를 원하는데 그들 소원대로 보내는 것은 어떠합니까?”

    상께서 말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봉한이 말하였다. "공평하게 많은 사람을 먹이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상께서 말하였다. "유언술을 보내어 먹이게 하는 것이 좋겠다."

    만이 말하였다. "혼궁역서 30건은 어떻게 합니까?"

    상께서 말씀하였다. "혜빈궁에 들이면 좋겠다."

    상께서 말하였다. "황차 잎이 올라오면 반드시 경매를 하도록 하여라."

    봉한이 말하였다. “비록 백성들이 아니라도 신들이 사도록 하겠습니다."

    상께서 말하였다. "술은 없드냐? 중관에게 소금을 술 대신 먹이도록 하여라."

    봉한이 말하였다. "근간에 차로서 술을 대신 하는데, 제례를 치를 때 사용합니다."

    晩曰, 古群山漂人卜物, 多至於三百駄, 難以輸運云矣。

    鳳漢曰, 令戶曹遣算員, 折價代給則似好矣。

    東度曰, 不可使湖南之民, 運來三百駄卜物矣。

   上命存謙書曰, 今聞古群山漂人卜物, 其若運來, 將至三百駄云,

   此時豈用本道之民? 令度支從長區處, 自京代給事, 分付。

   出傳敎 晩曰, 智島漂人, 願以水路回還云, 從所願入送, 何如?

   上曰, 依爲之。鳳漢曰, 公然食許多人, 誠難矣。

   上曰, 使兪彦述食之, 好矣。晩曰, 魂宮曆書三十件, 何以爲之乎?

   上曰, 入于惠嬪宮, 可也。鳳漢曰, 方有政稟矣。

   上曰, 再明日爲之。出傳敎

   上曰, 黃茶葉上來, 則必爭買之矣。

   鳳漢曰, 雖非百姓, 臣等亦欲買之矣。

   上曰, 無酒故耶? 中官有以食鹽, 代飮酒者矣。

   鳳漢曰, 近間以茶代酒, 而祭時用之矣。

   영조 38년 임오 11월 7일 1762년 乾隆(淸/高宗) 27년

1762년 고군산( 군산시 고군산열도)에 청나라의 표류선에 황차가 실려온 것을 적고 있는 이 의 내용은, 300태(駄)의 황차가 몰고온 후기 조선차문화사의 태풍의 핵이었다.
그러나 이미 이에 앞서 지도에 표한인이 온 것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지도에 온 표한인의 배에 실려있던 황차는 승정원일기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고군산에 표류해온 표한인들에 대한 처리문제에 있어 백성의 노고를 줄이고자 하고, 그 재원을 마련하는 것과 처리하는 방법에서 오늘날의 경매에 해당하는 ‘쟁매(爭買)’ 방식을 구상하는 등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하던 여러 모습들을 함께 알 수 있다. 그리고 홍봉한이 근간에 차로서 술대신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 차례와 제의문화에서 차의 부활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에 나타나는 황차 기록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난파선에 가득 실려 있었던 것은 조선의 위정자들이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녹색황금인 황차이다. 그 배에 실려 있던 황차는 조선의 차시장에서 한 세대 동안 유통되게 할 정도의 양이었다. 어떤 수요가 있어 이와 같은 상선이 등장하는가에 대한 조사를 통해, 중국변방의 이민족들이 이 황차의 그 실수요자이고, 차와 말을 바꾸는 다마무역을 통해 청나라가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선지식인들에게 비쳐진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남과 영남의 여러 고을에서 차가 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고사촬요(故事撮要)』 등에 실려 있는 것은  다만 열 곳 백 곳 중에 하나일 뿐이다.

 우리나라 풍습이 비록 작설을 사용하여 약에 넣기는 해도, 대부분 차와 작설이 본래 같은 물건인 줄은 모른다.

때문에 예전부터 차를 채취하거나 차를 마시는 자가 없었다.

 혹 호사가가 중국 시장에서 사가지고 올망정, 가까이 나라 안에서 취할 줄은 알지 못한다.

경진년(1760년, 영조 36)에 배편으로 차가 오자, 온 나라가 비로소 차의 생김새를 알게 되었다.

  10년간 실컷 먹고, 떨어진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또한 따서 쓸 줄은 모른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차는 또한 그다지 긴요한 물건이 아니어서,  있고 없고를 따질 것이 못됨이 분명하다.

      비록 물건을 죄다 취한다 해도 이익을 독점한다는 혐의는 없을 것이다.

      배로 서북 지역에 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운반하여, 차를 은과 바꾸면

      주제(朱提)와 종촉(鍾燭) 같은 양질의 은이 물길로 잇달아 들어와 지역마다 배당될 수 있다.

      차를 말과 바꾼다면 기주(冀州) 북쪽 지방의 준마와 양마가 바깥 관문에 가득하고

      교외 목장에 넘쳐날 수가 있다. 차를 비단과 맞바꾸면 서촉(西蜀) 지방에서 짠 고운 비단을 사녀(士女)들이 나들이옷으로 걸치고, 깃발의 천도 바꿀 수가 있다.

 나라의 재정이 조금 나아지면 백성의 힘도 절로 펴질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럴진대 앞서 황량한 들판 구석진 땅에서 절로 피고 지는 평범한 초목을 얻어  나라에 보탬이 되고 백성의 생활을 넉넉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庚辰舶茶之來, 一國始識茶面. 十年爛用, 告乏已久, 亦不知採用, 則茶之於東人,

      其亦沒緊要之物, 不足爲有無, 明矣. 雖盡物取之, 無榷利之嫌. 舟輸西北開市處,  

      以之換銀, 則朱提鍾燭, 可以軼川流而配地部矣. 以之換馬, 則冀北之駿良駃騠,

      可以充外閑而溢郊牧矣. 以之換錦段, 則西蜀之織成綺羅, 可以袨士女而變㫌幟矣.

      國用稍優, 而民力自紓, 更不消言. 則向所云得於荒原隙地, 自開自落之閑草木,

      而可以裨國家裕民生者, 殆非過言.

 여기서 우리는 경진(1760)년과 그 다음에 임오(1762)년에 걸쳐 2차례에 황차를 실은 배가 표류해 들어온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덕리가 기록한 것은 1760년의 사실인데, 그때 비로소 온 나라가 차라는 것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 당시 우리가 만들고 있던 차와 청나라가 만들고 있던 차 사이에 상당한 간격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설과 차가 한 종류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에도 상당히 어려움이 있었던 것과, 말과 비단
으로 바꿀 수 있는 차가 우리나라에도 있음에도 호사가들이 차를 연경에서 사오고 있는 현실과 함께 나라를 부강하게 할 차업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호되게 꾸짖고 있다.

 1태(駄)는 말에 실는 짐의 단위다. 군산에 표류해온 황차가 300태라고 하면 300마리의 말에게 한가득 실린 차이다. 그 양 또한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차마고도(茶馬古道)의 나귀들이 20kg의 차를 실어 날랐던 것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6톤 정도의 양이 된다. 그것이 두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 졌다면 제법 상당한 양의 차가 유통된 것을알 수 있다. 이 차의 소비는 왕실과 사대부들 사이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황차선이 들어온지 30-40년이 지나자 황차는 왕실에서 체기를 내리는 가장 대표적인차로 자리를 잡는다. 그렇다면 사대부와 민간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을까?

다행이 우리는 황윤석(黃胤錫 1738~1791년)의 를 통하여 그 편모를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기록 속에서 황차의 음다방법과 약리작용, 황차의 판매가격등을 알 수 있기에, 황차선에 실려온 황차가 어떻게 왕실 밖에서 유통되었는지 알 수 있다.

   저녁에 돌아오니 경승서가 왔다.
  초저녁부터 와서 이야기를 하다가 닭이 울 때 까지 한 뒤 잠을 자다. 이날 태인이 온제의 편지답장을 나에게 보내왔다.
또 나에게 가래기침(咳嗽)이 있기에 황차 두 봉지를 보내왔다.  어두워 진 뒤 황차 반첩을 달여서 먹자 가래기침이 조금 안정이 된다, 밤이 되어 다시 달여 마시다.

   夕歸 則景升書至 初昏來見因話 直至鷄鳴 乃宿 是日 泰仁 作溫弟答書付余

   又以余咳嗽之故 出黃茶二封贈余

   昏後 服黃茶煎湯半貼 咳嗽稍安 而夜復作

   十三日丁未 출전:頤齋亂藁

   어제 저녁 설사를 하여 고생이 심하였다. 아랫사람에게 생강과 귤피 황차 맑은 꿀을 사오게 하였다. 달여서 두 차례를 마시자 배가 조금 안정이 된다. 밤이 되어도 역시 설사증세가 없다. 이렇게 이어서 평안하니 다행이다.

   昨夕 以泄瀉苦證 命吏輩買生薑 橘皮 黃茶 淸蜜水 煎服二次 腹部少安

   夜亦姑無泄證 繼此得安則幸矣

   十六日甲午 頤齋亂藁

   저녁에 황차를 사서 문생 덕연이 앓고 있는 곳으로 보내려고 하였다. 듣자니 병세가 조금 덜하다고 한다. 아마도 길을 나섰다가 찬기운에 감기가 든 것일 것이다.

   夕間始買黃茶 送于文生德演病所 聞其病勢稍減蓋路憊寒感也

   二十四日壬申 출전:頤齋亂藁


   또 식당동의 문생 덕연을 방문하였다. 이 사람은 큰 병이 들어서 불쌍하다. 그래서 문안을 하면서 약을 사다가 주려고 하였지만, 황차를 얻지 못하여 먼저 소엽을 보냈다.

   又訪文生德演於食堂洞 此君亦大病可憐 故往問 因爲買藥贈之 而黃茶未得 先送蘇葉

   二十三日辛未 출전:頤齋亂藁

   고직이 이세형이 생강을 사가지고 왔고 황차 한 봉지를 서명응가에서 얻었다. 세형이 서명응가의 고직이이기 때문이다. 즉시 탕약을 다려서 뜨겁게 마셨다.

   庫直李世亨 以買薑 又得黃茶一封于徐台命膺家 世亨其家廳直故也 卽時煎湯藥納 乘熱服

   十三日丙辰 출전:頤齋亂藁

   고직이에게 황차와 생각을 찾아서 탕을 달이게 하다. 가슴에 쌓연던 기운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예방하는 뜻이다.
나는 날씨가 찬데 옷을 얇게 입고 장중의 찬곳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었고, 시장기를 다스릴 수가 없었다. 하여 얻은 돈으로 들어온 배 4개를 응경과 같이 먹었다.
  이 찬 것이 배로 들어가 냉병을 만든 것이 아닐까 두렵다.

   令庫直 覓得黃茶幷薑煎湯 將以發胸膈積氣以防成痢之本耳 盖余天寒衣薄

   頃於場中 久坐冷處 又無療飢者 適使令得金者 追入供生梨四介

   與應卿分吃 恐此物以冷入腹 因成冷病耳

   十二日乙卯 출전:頤齋亂藁

   오후에 가슴에 염증이 엉겨서 통증이 오고 오한이 들다.  급하게 황차잎과 생강을 사서 달여서 마시고 따뜻한 온들에서 조리를 하다.

   是午 始有胸隔痰氣凝結成痛 强赴直中 亟買黃茶葉及生薑煎服 更令煖炕調理

   二十二日癸巳 출전:頤齋亂藁


   황차잎 두 첩을 사다. 값은 1전 1분이다. 다려서 마시고 땀을 내다.아침에 밥을 먹을 수 없다.

   買黃茶葉二貼 價一錢一分 煎服取汗 朝不能飯

   二十五日壬辰 출전:頤齋亂藁

  차서(茶書)에 또 편갑(片甲)이란 것이 있는데 이른 봄에 딴 황차다. 차실은 배가 오자 온 나라 사람들이 황차라고 일컬었다.
하지만 창과 가지가 이미 자라, 결코 이른 봄에 딴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 표류해온 사람들이 과연 그 이름을 그와 같이 전했는지는 모르겠다. 흑산도에서 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정유년(1777, 정조 1) 겨울에 바다로 표류해온 사람이 아차(兒茶) 나무를 가리켜 황차라고 했다고 말했다.아차는 서울 지방에서 이른바 황매(黃梅)라고 하는 것이다.황매는 꽃이 노란데, 진달래보다 먼저 핀다. 잎은 삼각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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