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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해동죽지와 음식


최영년(崔永年: 1859-1935)의 '해동죽지'는 조선시대에서 일제강점기에 걸쳐 죽지사 형식으로 출간된 마지막 시집이다. '이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지 11년이 지난 1921년 집필이 완성됐다. 이 시기의 한국에서는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는 거대한 문화적 혼융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해동죽지'엔 근대 이후 변화되기 직전 우리 고유의 풍속, 문화가 기록되어 있어, 외래문화와 뒤섞이기 전의 한국 전통 식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갖고 있다.
작가 본인이 실제 겪거나 간접적으로 경험한 양반문화에 대한 서술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식재료나 음식을 대상으로 노래된 '해동죽지'의 죽지사는 99수이다.
이 가운데 '음식명물'은 함경도와 평안도, 제주도까지 조선팔도의 다양한 식재료들을 다루고 있어 산과 들, 강과 바다 등 다양한 환경에서 생산되는 식재료가 총망라되어 있다. 지역성이 명확히 제시된 식재료 관련 죽지사가 31수, 음식 관련 죽지사가 43수이다. 음식이 나오는 죽지사를 지역별로 보면 43종 중 15종이 경성, 경기 지역의 음식이다. 영, 정조 시대의 엄격한 금주령이 조선 후기에 느슨해지면서, 양반들을 비롯 일반 서민들까지 식사 때마다 반주로 술을 마시는 음주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술을 주제로 한 죽지사가 4수 등장하고, 음주문화가 묘사된 죽지사는 22수에 이를 정도로 술과 관련된 내용이 빈번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조선의 음주문화가 가진 특별한 풍경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그 동안의 문헌에 나타나지 않다가 '해동죽지'에 새롭게 등장한 음식들을 조사한 것이다. 최초의 배달음식이자 해장국인 효종갱과 1920년대 당시 대구의 시장에서 시판되고 있었던 허제반에 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식재료 구성의 차이가 있지만 현재의 닭볶음탕 조리법과 유사한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는 도리탕과, 귀한 과일이었던 귤을 이용하여 만든 떡인 귤향고에 대한 내용도 등장하고 있다. 그 외 중국에서 들어온 음식인 팔보반이 한국문헌에 최초로 등장하였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빙허각 이씨 (憑虛閣 李氏)의 '규합총서'는 죽력고를 전주의 특산주라 하였고, '해동죽지'는 나주,창평 등지의 특산명주로 죽력고를 들었다. 다같이 전라도의 특산주임에는 다름이 없다.

최영년은 '죽력고'를 칠언절구로 노래하기도 했다. ‘한수의 포도주를 말하지 마시게 / 강남의 죽엽주도 미치지 못할 걸세 / 사람의 속됨을 없게 하고 / 정신을 맑게 함에는 백가지 것들보다 나으리’(休言漢水葡萄綠 不及江南竹葉靑 可無一日令人俗 百檻堪宜養性靈). 월래 대나무의 진액(津液)은 가래를 삭이고 열을 내리게 하는 약효가 있다고 했다.

이 책은 미나리 중에서도 남원(南原)의 미나리가 가장 유명했다고 했다.

‘남원근(南原芹)’은 남원군의 남문 밖에 있는 탄보묘(誕報廟), 즉 관우(關羽)를 제사지내는 관왕묘 앞에 있는 겨우 몇 이랑에 불과한 미나리 밭에서 자랐는데, 파처럼 줄기가 비어 있는 다른 지역의 미나리와 달리 속이 꽉 차고 통통하여 맛이 달고 향기로워 절품(絶品)이라고 한다'고 했다.

'고추장은 순창의 명물이라고 그 향미를 소개한뒤 순창 사람이 서울에 와서 만들었더니 그맛이 순창에서 만든 것만 못했다'고 전한다'고 했다.

전주부 봉상면(봉동)에선 연강정과(軟薑正果)가 유명하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의 설명이다.

'새로난 햇 생강을 껍질 벗기고 통으로 여러 날 물에 우려낸다. 그 후에 물은 따라 버리고 꿀이나 설탕치고 물을 넉넉히 붓고 아주 약한 불로 졸인다. 빛이 검도록 졸여서 쓴다. 이것은 정과를 곁들여 쓰는 데는 쓰지 않고 단순히 한 가지만 담아 쓰는 데 요긴하다. 이것은 전라도에서 잘 만든다. 만일에 설탕에 졸이면 엿같이 굳어서 못 쓴다'

전주부 재증병(再蒸餠), 임실의 수시(水枾)도 유명하다고 했다. 재증병은 흰떡을 치다가 다시 찐 뒤에 또다시 쳐 낸 떡으로 보드랍고 졸깃졸깃하다.
 수시(水枾)는 임실군 갈담촌과 태인군 내촌에만 유독 이 품종이 있다고 했다. 임실군 청웅면 옥전리 명동(椧洞)은 남양수시(南陽水枾)로 유명하다. 이는 곶감이다. 명동마을에서 나오는 수시(水枾)는 맛이 좋아 조선 때 조정에 진상되기도 했으며, 가랏수시 또는 남양수시(南陽水枾)로 유명하다. 옥전2리 (일명 가랏-가전)는 남양홍씨의 마을로, 임진왜란때 홍참판이란 사람이 이곳에 피난와 살면서 전원에 감나무를 심은 것이 이 수시의 시초다.그때 여기서 나는 감을 서울 친척에게 선사하곤 했는데 그 맛이 얼마나 진귀했던지 임금에게 진상하여 유명하게 됐단다. 그후부터 해마다 수시는 이 고을의 진상품이 되어 왔다.이 감이 익어 홍시가 되면 감전체가 감로수로 화하여 앞에 놓고 보면 터질 듯 손이 간다. 이래서 수시라 일컬어왔는데 어느 감처럼 쪼개먹지 못한다.

'해동죽지'는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양반 중심의 한국 상류층 음식문화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는 민속놀이, 명절문화, 세시풍속 등의 분야에서는 '해동죽지'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음식문화 분야에서 연구된 경우는 아직 찾아볼 수가 없다. 향후 "해동죽지'에 대한 음식문화사적 관점의 지속적 연구를 통해 전통성 있는 전북 음식이 재조명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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