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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1920년대 전주남부시장 뱅뱅이비빔밥

작촌 조병희 선생은 '완산고을의 맥박'을 통해『남밖장의 낭만 어린 정경』이라는 책에서 전주비빔밥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남부시장의 비빔밥을 비비는 솜씨는 천하일품이었다. 음식점에 들르게 되면 널따란 양푼을 손에 받쳐 들고 꼭 쥔 숟가락 두 개로 비빔밥을 비벼대는 장정을 보게 된다. 흥이 나면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빙빙 돌렸던 양푼을 허공에 빙빙 돌렸다가 다시 손으로 받쳐 들고 비벼대는 솜씨는 남밖장만이 가지고 있는 정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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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을 비비는 솜씨는 천하일품이었다. 음식점에 들르게 되면 널따란 양푼을 손에 받쳐 들고 꼭 쥔 숟가락 두 개로 비빔밥을 비벼대는 장정을 보게 된다. 흥이 나면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빙빙 돌렸던 양푼을 허공에 빙빙 돌렸다가 다시 손으로 받쳐 들고 비벼대는 솜씨는 남밖장만이 가지고 있는 정경이었다’

고 조병희씨의 '완산고을의 맥박'이란 책 가운데 '1920년대 남밖장의 추억'책에서 전주비빔밥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를 일러 뱅뱅이비빔밥이라고 한다. 그는 필자에게 “오늘의 남부시장은 옛날엔 남밖장으로 불리웠으니 풍남문 밖에 있었던 까닭이요, 선밖장은 구 다가동파출소 옆 네거리 서문 밖에 있었으므로 불리워진 이름이었다. 선밖장은 구 다가동사무소에서 완산교 구간 일대에서 다가산을 행해 뻗은 지대인 만큼 동학군이 서문으로 입성할 때 장꾼으로 가장했던 비화를 간직했다”고 했다.

1922년 전주교와 완산교가 만들어졌다. 이는 전북 최초의 콘크리트 다리였다. 2개의 다리가 완성되자 남밖장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전주교에서 풍남문을 거치는 이른 바 '남문통'은 전주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았다. 남문밖장, 남밖장이라 불렸던 전주 남부시장은 1473년 만들어진 2일·7일 장시의 전통 5일장이었다.

1894년 동학혁명 이전, 조선 후기까지 전주성의 사대문 밖에는 모두 장이 섰는데, 그 중 가장 규모가 컸다. 그러나 일제는 전주성의 사대문을 모두 헐어버리고 1923년 남문밖장과 서문밖장을 합쳐 풍남문(豊南門) 옆에 남문밖장을 활성화시킨다. 이곳엔 으레 5일장이 열렸다. 명절이 임박하면 여러 날을 앞당기기도 했는가 하면 천재지변이나 유행병이 번질 때는 거르기도 했다. 또 1929년에는 어채시장을 중심으로 한 간이시장을 개설하고, 1930년대 후반 지금의 남부시장 자리에 정기시장으로 재정비했다. 하지만 남문밖장과 천변장터는 해방 이후까지도 한참 동안 지속됐다. 지금의 2층 상가 형태의 근대시장의 면모를 갖 추게 된 것은 1968년 무렵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