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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전북 과화주(전주 장군주)

2002년 전주전통술박물관서 전주 장군주를 재현하는 김남옥여사. 당시 나이 82세였다. 그는 열다섯 살에 친정에서 혼례를 치르고 열여섯 살에 시집을 갔다. 친정은 울산 김씨 집안으로, 그의 아버지는 간재 전우의 제자인 위재 김여중 씨였다. 상투를 틀고 신학교에 가지 않는 것을 최소한의 충절이라고 여겨 일가친척들에게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친정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고 술을 잘 빚었다. 시어머니도 음식 솜씨가 좋고 술을 잘 빚어 그는 어깨너머로 자연스럽게 술을 익히게 되었다. 순창에서 태어나 김제로 시집와 전주에서 술도가를 할 때까지 어려움 없이 살았는데, 술도가로 파산한 뒤 객지 생활을 하게 됐다. 현재 그의 큰 아들 김재희씨가 경기도에서 이 술을 만들고 있다.

‘과하주(過夏酒)’는 봄과 여름 사이에 곡류로 술을 빚어 발효시켜 소주를 넣어 저장성을 높인 술. 여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여 과하주(過夏酒)라고 한다. 즉, 지날 과(過), 여름 하(夏) 자를 써 ‘여름을 넘긴다’는 운치 있는 술이다.
과하주는 고조리서인 『음식디미방』, 『양주방(釀酒方)』,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음식디미방』에는

 

‘누룩 2되에 끓인 물 한 병을 식혀 부어서 하룻밤 재워 두었다가 주물러 체에 밭쳐서 걸러 찌꺼기는 버린다. 찹쌀 한 말을 여러 번 씻은 후 쪄서 식거든 누룩물에 섞어 넣었다가 3일 후에 소주 14국자를 부어 두면 7일 후에 맵고 단 술이 된다’

 

고 했다.

 

『양주방』에는

 

‘찹쌀 한 말로 지에밥을 쪄서 차게 식힌 것에 누룩 5홉을 고르게 치대면서 섞어 하룻밤 둔 다음, 소주 20대야에 누룩 7홉 정도를 부어 20~30일간 삭힌다. 이때 누룩이 많으면 색깔이 붉어지고 맛이 안좋다’

 

고 했다.

 

『규합총서』에는

‘멥쌀 한 되나 두 되를 가루 내어 죽을 끓여 차게 식힌 후에 가루 누룩을 버무려 밑술로 한다. 이것이 고이기 시작하면 찹쌀 한말로 지에밥을 쪄서 차게 식혀 밑술에 버무려 두었다가 7일 후에 소주 20국자를 넣어 소주 맛이 없어질 때 마신다’

 

고 했다.

 

이같은 기록에서 보듯 과하주는 곡류(찹쌀, 멥쌀)를 주재료로 하여 술을 빚은 후에 소주를 넣은 술이다. 조선 초기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여러 지방에서 빚었는데, 그 중에서 경북 김천 과하주와 전주 과하주가 유명하다.
김천 과하주는 다른 과하주와는 달리 소주를 넣지 않고, 과하천의 물로 빚은 것이 특징이다. 누룩은 통밀을 곱게 갈아 밀가루와 밀기울을 과하천의 물로 빚어 짚, 쑥, 황국으로 한 달 가량 띄운다. 과하천의 물에 누룩가루를 섞어 우려낸 누룩물에 찹쌀 고두밥을 섞어 반죽하여 쳐서 떡처럼 되면 독에 옮겨 담는다. 독의 뚜껑을 창호지로 여러 겹 싸고 발효시켜 약 90일 정도 되어야 향미가 좋아진다. 알콜 농도는 23~25퍼센트 정도로 한여름에도 술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주 과하주는 소주를 부어 주도를 높였으며, 여러 약재나 꿀을 넣어 땅 속에 묻은 후 여름철에 많이 사용하였다. 봄과 여름 사이에 멥쌀 한 되를 가루로 만들어 범벅처럼 개어 아주 서늘하게 식으면 누룩가루를 넣어 밑술을 만든다. 일주일 후에 멥쌀 2말로 지에밥을 쪄서 물을 20되를 넣고 끓여서 식혀 밑술에 넣는다. 맛이 써지면 찹쌀 한 말을 쪄서 식혀 그 술밑에 버무려 두었다가 맛이 써진 후에 고아서 붓고 7일 만에 소주 20국자씩 부어서 마신다.

 

‘조선시대에 폭넓게 빚어 마셨는데, 지금도 전국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다. 현재 경북 김천에서 시판되는 과하주가 있고, 10년 전 전주에서 ‘장군주’라는 이름으로 시판된 과하주가 있다. 또 전주에 사는 시인 권오표 씨가 빚는 과하주, 변형된 이름으로 전하는 보성 ‘강하주’, 영광 ‘강할주’가 있다. 과하주가 폭넓게 전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여름술이기 때문이다. 여름에도 두고 마실 수 있는 독보적인 술이어서 여러 집에서 이 비방을 숙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하주를 찾아 길을 떠나 보자. 김천 직지사 들목에서 황간쪽으로 넘어가는 지방도 초입에 김천 과하주 술도가가 있다. 송강호 씨가 약주 16도짜리와 과하주 23도, 30도짜리 술을 빚고 있다. 이 술은 언제든 맛볼 수 있고, 술도가를 찾아가면 술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으니 여기서 상세하게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과하주를 찾아 보자.

 

 1990년대 초반 전주 금상동에서 술도가를 운영했던 김재희 씨가 있다. 김제시 금산면 성계리가 고향인데, 그의 어머니 김남옥 씨가 여러 가지 술을 잘 빚었다. 그 중 과하주 빚는 솜씨가 좋아 교통부의 추천을 받아 민속주로 등록해 35도짜리 과하주를 출시했다. 술 이름은 ‘장군주’라고 했다. 김재희 씨 부친의 친구인 조병희(가람 이병기 선생의 조카이며, 이강주를 빚는 조정형 씨의 부친. 전주에서 영향력 있던 문화계 인물로, 2002년에 작고했다) 씨가 붙여준 이름이다.


언양 김씨인 김재희 씨 집안에 명성 있던 인물로 김천일 장군이 있다. 김천일 장군은 술을 좋아하여 호리병을 차고 전장에 나갈 정도였다고 한다. 비록 김재희 씨가 김천일 장군의 직계는 아니지만, 장군을 배출한 집안에서 빚은 술이라 하여 장군주라고 이름짓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장군주는 1년쯤 출시되다 중단되고 말았다.
명절 때 서울의 백화점에 납품했는데, 중간 납품업자가 4t짜리 트럭 한 대 분량의 술값을 떼먹고 달아나버린 것이다. 그 충격으로 술도가가 부도나고, 김재희 씨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현재 김재희 씨는 서울에서 언양김씨 대종회 일을 보고, 그의 어머니 김남옥 씨는 경기도 오산시 남사면 원암리에서 산다.


김남옥(83) 씨를 찾아갔다. 원암리 들판, 빈 집이 많은 허름한 빌라에서 홀로 지내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니 신발장 앞에 대형 플라스틱 술통이 놓여 있다.
1년 전에 전주 월드컵 경기 기념으로 빚은 과하주였다. 술통을 열어 보니 단단해진 술지게미 속에 커다란 용수가 박혀 있다. 용수 속에는 불그레한 술이 고여 있는데, 술지게미는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곰팡이가 피지도 않았고, 삭아 문드러지지도, 썩지도 않았다. 군둥내도 안 났다. 오래도록 소주에 전 탓이었다. 귀가 안 좋아 큰 소리로 말하는 김할머니는 “지금도 소주를 부어 과하주를 걸러 먹을 수 있어요”라고 했다.


김할머니는 이튿날 원불교 교당에 나가기 위해 옷을 다리던 중이었다. 오전 7시에 버스를 타고 서울 용산에 있는 원불교 본당에서 예불을 드리고 돌아오면 오후 4시 반이 된다고 했다. 그가 1주일에 한번 하는 유일한 외출이었다.
순창에서 태어나 김제로 시집와 전주에서 술도가를 할 때까지 어려움 없이 살았는데, 술도가로 파산한 뒤 객지 생활을 하게 됐다. 그는 독실한 원불교 신자로, 종교를 통해 마음의 평온을 얻은지라 마치 남의 일처럼 “시골 사람 망하믄 다 서울로 오잖아요”라고 했다.

 

그가 빚을 줄 아는 술은 많았다. 제조 기간으로 구분되는 술들로 9일주, ‘진양주’라고 부르는 15일주, ‘평양주’라고 부르는 20일주, 40일주, 과하주라고 부르는 60일주, 100일주가 있었다. 동동주와 비슷한 ‘점주’ ‘석탄향주’도 빚을 줄 알았다.

 

 제조 기간이 길어질수록 누룩을 적게 쓰는데, 주로 멥쌀 2되로 밑술을 잡고 찹쌀 1말로 덧술을 했다. 밑술을 할 때 15일주는 죽을 쑤고, 20일주는 흰무리떡을 하고, 40일주는 생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반숙하여 빚었다. 60일주와 100일주는 물을 쓰지 않고 술로 술을 빚었다. 그의 술 빚는 비방 속에 전통술의 모든 기법이 담겨 있었다.
그는 열다섯 살에 친정에서 혼례를 치르고 열여섯 살에 시집을 갔다. 친정은 울산 김씨 집안으로, 그의 아버지는 간재 전우의 제자인 위재 김여중 씨였다. 상투를 틀고 신학교에 가지 않는 것을 최소한의 충절이라고 여겨 일가친척들에게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친정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고 술을 잘 빚었다. 그는 어머니가 빚었던 술을 다 배웠더라면 수도 없이 많은 술을 빚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시댁 또한 살림살이가 넉넉했다. 시어머니도 음식 솜씨가 좋고 술을 잘 빚어 그는 어깨너머로 자연스럽게 술을 익히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단속이 심해 술을 제대로 빚지 못했지만, 해방 뒤로는 술을 자주 빚어 먹었다고 했다. 김할머니는 뜻밖에 자신의 술 중 가장 빚기 쉬운 술이 60일주인 과하주라고 했다.


그러고는 냉장고 문을 열더니 과하주를 꺼내 잔을 3분의 1 가량 채우고, 3분의 2를 포도주스로 채워 즉석 칵테일을 건네주었다.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고 미세한 전류처럼 알콜 기운도 느껴졌다. 김할머니는 과하주를 빚기 위해 우선 보리소주를 빚는다. 보리는 척서(滌署), 즉 더위를 씻는 음식이어서 여름술인 과하주에 어울린다고 했다. 고슬고슬한 보리밥 1말에 누룩 3되를 섞어 항아리에 넣고 7일간 발효시킨다.


이때 술이 시어져도 상관없지만, 술이 부글부글 괴어 힘있게 발효할 때 가마솥에 넣고 소주를 내리면 술 양이 많아진다. 보리쌀 1말로 빚은 발효주에서 25도 소주면 됫병 4개 분량, 30도 소주면 됫병 3개 분량이 나온다. 이렇게 보리소주를 내린 다음 본격적으로 과하주를 빚는다. 우선 찹쌀 1말을 댓잎과 솔잎을 넣고 찐다. 쪄낸 찹쌀 고두밥을 누룩 1되와 잘 버무려 주먹만하게 뭉쳐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 넣는다. 그 다음 됫병 10개 분량의 보리소주를 붓는다. 이때 45도 소주를 부으면 10도쯤 떨어져 35도짜리 과하주가 된다.


항아리 덮개는 예전에는 기름 먹인 종이를 썼지만 요새는 비닐을 사용한다. 베보자기로 싸면 알콜 성분이 날아가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밀봉하기 전에 산약(마)·인삼·백봉령·산사를 그물망에 넣어 항아리에 담아 둔다. 밀봉하고 60일을 기다리는데, 30일쯤 지나 술을 한번 저어주기만 하면 된다.


김할머니가 과하주 빚기가 쉽다고 한 것은 온도 조절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오뉴월에 불 땐 방에 항아리를 놓아 두어도 좋고, 한여름에 이불 씌우고 비닐 덮어 건물 옥상에 놓아 두어도 술은 된다. 식혜 만들듯 하면 된다는 것이 김할머니의 말이다. 60일간 발효시키는 전주 과하주 img4R전주 과하주의 특징은 보리소주를 사용하고, 60일 동안이나 발효시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녹두 누룩을 사용하며 여러 가지 약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김재희 씨는 녹두와 쌀을 가루내 3대 2의 분량으로 혼합해 빚은 누룩을 특허까지 내놓았다고 했다. 이제 누룩 특허 보호 기간도 15년에서 3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김재희 씨는 제조 과정에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 누구와도 손잡고 과하주를 부활시키고 싶은데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해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김할머니는 술 때문에 가족들이 풍비박산났으니 이제 술을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주 과하주뿐만 아니라 문화재나 명인 지정을 받은 전통주들이 ‘가양주’에서 출발해 대량생산되는 상품으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외부 자본이 투입된 것도, 외부 기술이 결합된 것도 아니어서 영세한 규모를 벗어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술만 잘 빚을 줄 알던 사람들이 상표 디자인을 하고, 홍보도 하고, 판로를 개척해야 하니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김할머니의 경우처럼 한 집안을 풍요롭게 했던 가양주가 한 집안을 수렁에 빠뜨리는 경우도 생겨난 것이다.

 

 특히 전주 과하주의 김남옥 할머니 사례에서 보았듯 1년 된 술지게미에 소주를 재차 붓고 용수에 고인 술을 떠 먹어도 맛이 좋다고 하니,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과하주 한 독 빚어 놓고 두고두고 소주를 부어 우려 마셔도 좋을 듯하다.

 

우리 선조들과 함께 무더운 여름을 넘겼던 지혜로운 술 과하주, 우리 술의 비방이 총결합된 과하주, 지방화되어 제각각의 비방으로 빚어지는 과하주, 술로 술을 빚었던 과하주, 이 과하주를 한데 모아 잔치라도 벌였으면 좋겠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과하주가 도처에 있을 테니 말이다.(글쓴이 허시명)’: 2003년

 

사라져 가는 전북의 가양주

 

지난 2006년 한스타일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주하고 서천문화원에서 수행해서 발간된 「전통가양주실태조사」 보고서가 있다. 이 보고서에는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전북의 가양주가 여럿 소개되어 있다.

 

▲ 장수 권씨네 과하주와 점주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에서 살고 있는 안동권씨 집안의 가양주인데, 청주에 소주를 섞어 만드는 과하주이다. 과하주는 여름을 넘길 수 있다는 뜻을 가진 혼양주로서 상하기 쉬운 청주를 오래 보관하여 마시고자 했던 지혜가 담긴 술이다. 점주는 술에 물이나 감미료를 타서 마셨던 일종의 칵테일이다. 우리 술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술이다.

 

▲ 전주 권오표 과하주

권오표 시인이 어머니에게서 전수받아서 빚는 과하주는 그 맛이 입소문을 타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술이다. 멥쌀을 섞어 쓰며 감국이 들어간다는 게 특이하다. 권요표 시인은 순창 적성면 운림리가 고향인데 이 마을 사람들은 거의 술을 빚었다고 한다.


과하주 빚는 김남옥 할머니

 

“사정이 어려워 그동안 술을 제대로 담그지 못했는데 이제는 명품을 빚어낸다는 생각으로 남은 여생을 바치겠습니다.”

2002년 6월 9일 개관한 전통술박물관에서 전통민속주인 과하주(過夏酒) 담그기 시연회를 연 김남옥 할머니(81).

친정(울산 김씨)과 시댁(언양 김씨)에서 집안 대대로 전해진 과하주를 빚는데 평생을 오롯이 바친 김할머니는 86년 전통민속주로 지정받은 과하주를 담는 기능보유자다.

“임진란때 김천일 장군이 즐기며 힘을 돋웠다 해서 ‘장군주’로 불리기도 한다”는 김할머니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과하주가 3∼4개 있지만 전주의 과하주는 재료부터 다르다고 설명했다. 녹두 누룩을 사용해 술 빛깔이 좋은데다 숙취가 전혀 없고, 솔잎과 대잎을 비롯해 인삼·백봉령·사삼 등 각종 약재까지 사용해 건강에도 좋은 것이 특징이란다.
“일제 치하에서는 집에서 담가먹는 술도 밀주라고 해서 철저히 금지했어요. 해방후에도 주정을 금지했지만 우리것을 보존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남의 눈을 피해 몰래 술을 빚었지요.”
전통술 살리기에 앞장서온 김할머니는 “전북의 술이 타지역보다 월등한데도 지금까지 문화재로 지정된 술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푸대접을 받고 있다”면서 “판로개척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내 술기능보유자들을 위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할머니는 여든을 넘긴 고령에도 술박물관에서 일주일에 1∼2차례 술을 빚으며 체험프로그램을 열 계획이다.(전북일보 임용묵 승인 2002.06.10 23:02)


장군주(將軍酒)


장군주는 전주 인근에 사는 언양 김씨 집안에서 빚는 술로, 과하주의 일종이다. 한때 김남옥씨가 상품화시킨 장군주는 찹쌀, 댓잎, 솔잎, 산약, 인삼, 백복령, 산사를 원료로 빚는다. 발효 과정에서 섞는 증류주로 보리소주를 사용하고 있으며, 60일 정도 장기 발효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