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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서정주시인과 신석정시인이 좋아한 양하

얼마 전, 김제시 금구면사무소앞 '예촌'에 주인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시식할 수 있는 기회가 돼 방문했다. 주재료는 쌀국수에 간장으로 야채비빔을 융합한 요리였다. 중요한 느낌이 있는 부분은 야채 가운데 양하장아찌를 쌀국수 한 젓가락에 한개씩 얹혀 먹었다. 쌀국수에 쫄깃한 맛에 미나리장아찌 무장아찌가 곁드려지며, 양하에 특이한 향과 아삭거림까지 그풍미가 장난이 아니었다.

정읍시 산내면 예덕리 상례마을의 추석 별미엔 양하산적이 올라온다. 고기 한 점 꿰고, 대파 꿰고 양하 한 송이 쏘오옥~ 차례상 대표별미로 변신 마쳤으니 바로 양하산적이다. 생강과 식물이다보니 워낙 향이 강해서 고기와 어우러질 때 그야말로 환상궁합, 기름진 산적의 느끼함마저 없애주는 양하 산적 납시오~

한가위 무렵이면 전주 동문사거리 길목집에서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양하나물을 지금도 맛볼 수 있다.

양하(蘘荷)는 고창에선 '양애'로 부른다. 그 누구는 '양해', '양해간', '양화' 등으로도 부른다. , '양아', '양애간', '양애끈', '양횟간' 등 부르는 이름도 지역별로 다양하다. 양하는 꽃도 열매도 예쁘고 신비스럽다. 생강나무와 비슷하지만 더욱크고 주로 전북의 아래인 전주, 정읍, 부안, 고창 등에 자생하고 있다. 하지만 요즈음엔 전문 채취꾼땜에 구경하기가 힘들다.

최승범시인은 "가을철 풋콩밥이나 밤밥이 상에 오르면 양하의 맛이 입안을 간지럽힌다. 어느 해 추석 점심상이 차려진 부안 신석정시인의 청구원에서 양하의 맛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 중에서도 달걀 노른자 위에 양념을 해 구워낸 마당조개의 맛과 난생 처음 대한 양하의 맛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양하는 9월에 부드러운 새순이 나올 때는 회나 무침으로 먹고, 봄철 쇠었을 때는 장아찌를 담가 먹거나 전으로 부쳐 먹는다. 어린순은 나물이나 국··산적 등 식용으로 쓰이며, 어린순과 뿌리는 향신료로 쓰인다. 양하는 따뜻하고 그늘이 있는 곳에서 잘 자라 남부지방에서는 집앞 텃밭 또는 시골집 담벼락에 심어놓고 꽃봉오리를 따서 반찬으로 썼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싫다던 사람들도 먹다 보면 자꾸만 끌리게 되지요. 고기나 생선과 곁들이면 한 조각만 먹어도 금세 입안이 개운해져요. 양하 장아찌나 초절임은 명이(산마늘)잎 절임 못잖게 입맛을 돋워준답니다

전주음식 명인이기도 한 김년임 전주대 한식조리학과 객원 교수의 설명이다.

고창에선 바로 이같은 양하를 이용해 맛과 향이 뛰어난 별미로 양하김치를 비롯, ·장아찌 등의 다양한 반찬으로 만들어 먹고 있다.양하김치, 양하느름적, 양하산적, 양하녹두나물, 양하가지나물 등 종류 또한 다양하다. 양하적을 안주로 술을 마시면 비운 잔의 술맛이 향기롭고, 반찬으로 해서 밥을 먹으면 떠넣는 숟갈의 밥알마다가 향기롭지 않은가.

미당 서정주시인은 수필 '양하 나물'에서 이 양하의 맛을 못잊어 했거니와 고창, 부안 등 서해안 지방에서 일찍부터 재배됐다. 서시인은 19744월 여성동아를 통해 '양하 나물'이란 글을 통해 전주와 정읍 언저리에서 생산되는 양하보다 더 맛있고 향기로운 것을 모른다고 했다. 그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도둑 마음보를 가진 한 가족이 경치 좋은 깊은 산속 외딴 곳에서 구경 오는 나그네를 상대로 여관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손님이 가지고 온 보따리를 털어서 그들을 잘살았다. 터는 방법은 뭐냐 하면 폭력이나 사기나 절도질이 아니라 맛 좋은 양하 나물을 잘해서 먹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맛이 너무나 좋아 나그네들은 거기 도취해서 온갖 걱정뿐 아니라 들고 온 보따리까지도 깡그리 그만 잊어버리고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의 겨울 기온엔 살아남지 못하는 게 유감이다고 하면서 올해 만일 이것이 잘 자라 추석에 나물을 만들어서 술안주를 하게 되면 나는 무엇을 잊어버려야 할까를 생각해본다"고 했다.

문정희시인의 이야기에도 서정주시인과 관련한 양하 나물 이야기가 나온다. '하루는 선생님이 좋아하는 양하 나물을 구해서 서울 사당동 집에 갔더니 사모님과 신이 나서 웃고 있었다. 어젯밤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선생님이 스위스에서 사가지고 온 목동의 뿔피리를 뿌우뿌우 불었더니 그만 도둑이 도망을 갔다고 했다. 두 분은 어린아이 같았다. 세상에 목동의 뿔피리로 도둑을 쫓다니. 강감찬 동상 아래서 초등학생처럼 나란히 서서 맨손체조를 할 때도 그랬다'

고창에서 가을철이면 땅 속 줄기를 따내어 쇠고기와 함께 대꼬챙이에 꿰어 적으로 부쳐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양하는 심원면 하전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놀이요 '거미 타령'에 나온다. 이는 1989년 김익두가 집필하고 전북애향운동본부에서 발행한 '전북의 민요'에 실려 있다. '거무야 거무 왕거무/ 청룡 황룡 둘러타고/ 귀경 가 귀경 가/ 어디 봉으로 귀경 가/ 자두봉으로 귀경 가/ 벽장문을 열고 보니/ 자두새가 우는구나/ 우리도야 어느 때는/ 저 새소리 맞었건만/ 각시님이 되걸랑은/ 저 새소리 잊었구나/ 이 많은 잔치 왔다가/ 그냥 갈 수 있겠느냐/ 술이나 한 탕 불러봐/ 이 술 저술 도파술/ 술일랑은 불렀시나/ 너물 채소를 불러봐/ 주먹 같다 고사리 나물/ 꼬부라 장장 콩너물/ 이골저골 고구마 너물/ 뺑뺑 돌아라 돌가지 나물/ 천방 지방 호박너물/ 한 냥 두 냥 양해너물/ 한 푼 두 푼 돋너물/ 너물 채소를 불렀시나/ 탕일랑을 불러봐/ 접으로 들어 영계탕/ 들로 들어/ 오도리 포도리 매초리탕/ 산에로 올라 꿩탕/ 물로 들어 거위탕/ 탕일랑은 부렀시나/ 제육점을 불러봐/ 대양판에 제육점/ 소양판에 갈빗대/ 제육일랑 불렀시나/ 실과랑을 불러봐/ 푸르나 따나 청둥감/ 붉으나 따나 홀실롱'

'거미 타령'은 거미가 텅 빈 허공에다가 거미줄을 만들어 쳐 나가는 모양을 보고, 잔칫상 위에다 온갖 맛있는 산해진미를 차려 나가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거미를 주제로 한 대표적인 전래 동요로 양해, 고사리 등 다양한 먹거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