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식

전주 황포묵


[오목대] 황포묵 - 조상진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널리 알려진 전래 민요 '파랑새'의 일부다. 동학농민혁명을 전후해 불려진 이 민요에서 청포장수는 청포묵 장수를 일컫는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민간에서 청포묵이 애용됐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청포묵은 녹두를 갈아 앙금으로 만든 묵이다. 해열·해독 작용과 보양에 좋으나 색깔이 곱지 않은 게 흠이다. 그래서 격(格)을 높인 게 황포묵(노랑묵)이다. 앙금이 엉기기 시작할 때 자연 색소 중 최고인 치자물을 넣은 것이다. 탱탱하면서도 낭창낭창한데다 맑고 노란 색감이 입을 유혹한다.

2008년 전주시가 지정한 '전주 비빔밥 표준조리법'에 따르면 이 황포묵은 비빔밥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필수재료다. 길이는 4-5㎝, 너비 1㎝, 두께 3㎜ 정도로 썰어 사용하도록 했다.

황포묵은 비빔밥 재료로서 뿐 아니라 오래 전부터 전주(또는 完山)8미(또는 10味)중 하나였다.

잠깐 전주8미에 대해 살펴보자. 전주8미가 언급된 것은 가람 이병기의 시조가 처음이다. 1950년대 초, 전주시 교동 양사재(養士齋)에서 지은 근음삼수(近吟三首)가 그것이다.(http://food.jeonju.go.kr) 이 시조에서 가람은 완산8미로 △기린봉 열무 △신풍리(송천동) 호박 △한내 무 △상관 게(蟹) △남천(南川) 모자 △선왕골 파라시(감) △소양 대흥리 서초(西草·담배) △오목대 황포묵을 꼽았다.

'전주야사'를 쓴 이철수는 산지(産地)를 조금 더 넓혔다. 또 △사정리(서서학동) 콩나물 △서원넘어(華山동) 미나리를 더해 '10미'라 했다.

그러면 전주 비빔밥에 빠져선 안될 황포묵은 어디서 나올까. 도내에서는 전주와 남원에서 생산되었다. 하지만 남원은 1989년 소복순 여사가 사망함에 따라 맥이 끊겼고, 전주 청식품이 유일하게 남았다. 전주 우아동 아중저수지 인근 9㎡ 남짓한 가게에서 양석대 대표(76)가 3대째 가업으로 130여년을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한때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전주 비빔밥을 즐겨찾아 서울 신세계 백화점에 납품했다고 한다. 또 허영만의 '식객'에도 소개된 바 있다.

황포묵 장인으로서 뿐 아니라 전주 비빔밥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산 증인이지만 그에 대한 대접이 소홀한 것 같아 안타깝다.

/ 조상진 논설위원(전북일보 승인 2011.09.16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