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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전주뱅뱅이비빔밥을 아시나요


전주비빔밥에 대한 역사기록


작촌 조병희 선생은 '완산고을의 맥박'을 통해『남밖장의 낭만 어린 정경』이라는 책에서 전주비빔밥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남부시장의 비빔밥을 비비는 솜씨는 천하일품이었다. 음식점에 들르게 되면 널따란 양푼을 손에 받쳐 들고 꼭 쥔 숟가락 두 개로 비빔밥을 비벼대는 장정을 보게 된다. 흥이 나면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빙빙 돌렸던 양푼을 허공에 빙빙 돌렸다가 다시 손으로 받쳐 들고 비벼대는 솜씨는 남밖장만이 가지고 있는 정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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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비빔밥은 최승범의 『란록기』에서도 유래를 발견할 수 있다.

산과 들 바다가 고루 갖추어진 전라도의 음식은 세 곳에서 나는 것을 모은 것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농번기에 농가의 아낙네는 들에 밥을 이고 갈 때 버들고리나 광주리 밥
동구리를 모두 동원하여 찬 접시를 담고 나가려 하니 어찌 나를 수 있으랴, 그래서 생각한 것은 큰 옹배기 같은 그릇에 밥을 담고 찬을 그 위에 열열히 담고 고추장 한 그릇 담고 숟가락 챙겨 이고 나갈 때 논고랑 밭고랑을 쉽게 걸어가서 밭둑, 논둑의 하늘아래
야외식탁이 펼쳐진 것이 비빔밥의 최첨단이고 보니 식단 합리화라 칭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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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자 황포묵에 전주비빔밥 지역 재료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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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비빔밥 ‘부뷤밥’
천지일보 (newscj@newscj.com) 승인 2014.01.01 20:4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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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전주하면 비빔밥, 비빔밥하면 전주’라 할 정도로 전주의 비빔밥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진주의 향토사학자 故 김상조 선생은 전주의 비빔밥을 부뷤밥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원래 진주비빔밥은 가마솥에 밥을 할 때 한 물 넘으면 콩나물을 넣고 뜸을 드려 이미 가마솥에서 콩나물과 함께 섞기 때문에 비빔밥이 아니라 부뷤밥이라고 주장 한다.

여기서 1968년 당시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조사한 전주비빔밥 조리법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쇠머리를 푹 끓여서 굳은 기름은 걷어 버리고 쌀을 넣고 밥을 고슬하게 짓는데, 밥이 한 물 넘으면 콩나물을 넣고 뜸을 들인 후 더울 때 참기름으로 무친다.

숙주, 미나리는 각각 데쳐서 참기름과 묽은 장(청장)으로 무친다. 도라지는 소금에 절여 주물러서 다시 헹구어 짜서 볶고 고사리도 삶아서 기름장으로 무쳐 볶는다.

우둔고기는 채 썰어 양념장으로 육회를 무친다. 청포묵은 굵게 치고 계란은 황백으로 지단을 부쳐 란면(卵麵)으로 썬다. 밥을 조반기에 담고 각색 재료를 색 맞추어 덮어 얹고 엿고추장은 종지에 따로 곁들인다.

전주비빔밥에는 반드시 콩나물국이 따라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혹자들은 전주비빔밥이 궁중의 음식이나 섣달그믐날 먹는 음식, 제삿집 비빔밥으로 그 유래를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최승범(崔勝範)의 <란록기(蘭綠記)>에 전주비빔밥의 유래가 잘 묘사돼 있다.


“산과 들 바다가 고루 갖추어진 전라도의 음식은 세 곳에서 나는 것을 모은 것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농번기에 농가의 아낙네는 들에 밥을 이고 갈 때 버들고리나 광주리 밥동구리를 모두 동원하여 찬 접시를 담고 나가려 하나 어찌 나를 수 있으랴, 그래서 생각한 것은 큰 옹배기 같은 그릇에 밥을 담고 찬을 그 위에 열열히 담고 고추장 한 그릇 담고 숟가락 챙겨 이고 나갈 때 논고랑 밭고랑을 쉽게 걸어가서 밭둑 논둑의 푸른 하늘아래 야외식탁이 펼쳐진 것이 비빔밥의 최첨단이고 보니 식단 합리화라”고 칭송한다.

최승범의 <란록기>에 보면 전주의 비빔밥은 농경문화에서 그 유래를 들수 있는 대목이지만, 이철수의 <전주야사>에서 “전주비빔밥은 조선조 때 감영(監營)내의 관찰사, 농약패의 판관 등이 입맛으로 즐겨왔었고 성(城)내외의 양가에서는 큰 잔치 때나 귀한 손님을 모실 때 외에는 입사치로 다루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오래 전부터 전주의 고관들이나 부유층에서 식도락으로 즐겼던 귀한 음식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전주부성 향토세서기’ 중 2, 3, 4월경에 기호음식으로 비빔밥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전주에서는 200여 년 전부터 이미 비빔밥을 즐겨먹었음을 알 수 있다.

전래 과정에서 그 역사․지리적 환경과 관련 지어 볼 때 전주에서 특히 잘 발달한 이유로는 풍부한 식재료(전주10미)와 부녀자의 음식 솜씨 등으로 인해 오늘날의 ‘전주비빔밥’이 탄생하였다고 사료된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 3대 음식 운운하는 것을 좋아 하지만, 그 단초는 조선 후기 실학자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와 일제 때 지식인 호암 문일평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平壤之紺紅露、冷麪、骨蕫飯 평양의 감홍로, 냉면, 골동반이 유명하다는 문장이다’이라 기록돼 있는데, 이 책에는 전주도 언급된다. 생강과 달래가 유명하단 기록은 있어도 비빔밥이 유명하다는 말은 없다.

문일평의 <조선인과 음식물>이라는 책에서는 ‘매식 가운데 개성 탕반과 평양냉면, 그리고 전주의 골동반이 지방도시의 대표적인 명식물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규경과 문일평의 표현이 돌고 돌고 돌아서 조선시대 3대 음식으로 유명한 것은 ‘개성 탕반’ ‘평양냉면’ ‘전주비빔밥’이 된 것이다. 결국 공인된 것도 아니고, 확대 재생산 된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동시대의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우리나라 지방 명식물로 전주에는 콩나물을, 그리고 비빔밥은 전주가 아닌 진주를 들고 있다. 전주지역 관광청에서는 진주, 해주, 전주를 들고 있고, 여기에 안동과 평양 등지도 추가할 수 있다. 결국 일제시대 까지도 전주는 비빔밥이 유명한 여러 지역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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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포묵

비빔밥은 우선 전북의 전주비빔밥을 꼽는다. 전주비빔밥의 특징은 물에 데친 콩나물과 쇠고기 육회 또는 볶음, 황포묵을 고명으로 빠뜨리지 않는 것이다. 황포묵은 녹두 청포묵에 노란 치자물을 들여 만든 묵이다. 전주는 예부터 수질이 좋아 콩나물에 쓰이는 콩의 품질이 좋다고 한다. 무와 오이, 당근, 애호박, 표고버섯 등도 들어간다. 특히 밥은 소 양지머리 고기를 푹 고은 물로 지어 비빌 때 밥알이 서로 달라붙지 않고 윤기가 나도록 했다. 고명의 가운데에 계란을 하나 얹어 화룡점정을 찍는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널리 알려진 전래 민요 '파랑새'의 일부다. 동학농민혁명을 전후해 불려진 이 민요에서 청포장수는 청포묵 장수를 일컫는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민간에서 청포묵이 애용됐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청포묵은 녹두를 갈아 앙금으로 만든 묵이다. 해열·해독 작용과 보양에 좋으나 색깔이 곱지 않은 게 흠이다. 그래서 격(格)을 높인 게 황포묵(노랑묵)이다. 앙금이 엉기기 시작할 때 자연 색소 중 최고인 치자물을 넣은 것이다. 탱탱하면서도 낭창낭창한데다 맑고 노란 색감이 입을 유혹한다.

2008년 전주시가 지정한 '전주 비빔밥 표준조리법'에 따르면 이 황포묵은 비빔밥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필수재료다. 길이는 4-5㎝, 너비 1㎝, 두께 3㎜ 정도로 썰어 사용하도록 했다.

황포묵은 비빔밥 재료로서 뿐 아니라 오래 전부터 전주(또는 完山)8미(또는 10味)중 하나였다.

잠깐 전주8미에 대해 살펴보자. 전주8미가 언급된 것은 가람 이병기의 시조가 처음이다. 1950년대 초, 전주시 교동 양사재(養士齋)에서 지은 근음삼수(近吟三首)가 그것이다.(http://food.jeonju.go.kr) 이 시조에서 가람은 완산8미로 △기린봉 열무 △신풍리(송천동) 호박 △한내 무 △상관 게(蟹) △남천(南川) 모자 △선왕골 파라시(감) △소양 대흥리 서초(西草·담배) △오목대 황포묵을 꼽았다.

'전주야사'를 쓴 이철수는 산지(産地)를 조금 더 넓혔다. 또 △사정리(서서학동) 콩나물 △서원넘어(華山동) 미나리를 더해 '10미'라 했다.

그러면 전주 비빔밥에 빠져선 안될 황포묵은 어디서 나올까. 도내에서는 전주와 남원에서 생산되었다. 하지만 남원은 1989년 소복순 여사가 사망함에 따라 맥이 끊겼고, 전주 청식품이 유일하게 남았다. 전주 우아동 아중저수지 인근 9㎡ 남짓한 가게에서 양석대 대표(76)가 3대째 가업으로 130여년을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한때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전주 비빔밥을 즐겨찾아 서울 신세계 백화점에 납품했다고 한다. 또 허영만의 '식객'에도 소개된 바 있다.

황포묵 장인으로서 뿐 아니라 전주 비빔밥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산 증인이지만 그에 대한 대접이 소홀한 것 같아 안타깝다.

/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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