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식

'노포' 말고 '오래가게' 어때요?호남권전북 임실의 '백양국수'와 전주의 '송철국수공장'이 양대산맥




37년 전통의 을지면옥이 2022년 6월 25일 오후 문을 닫았습니다. 이날 서울 중구 을지면옥 앞은 오전 일찍부터 ‘마지막 냉면’을 먹기 위해 몰려든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이들은 낮 기온 30도가 넘는 날씨에도 냉면을 먹기 위해 긴 줄을 섰습니다. 이날 을지면옥을 찾은 마지막 손님 중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방 주치의였던 신현대 전 경희대 한방병원 교수도 있었습니다.
을지면옥은 이날 오후 3시까지 영업을 하기로 했지만 오랫동안 기다린 손님을 위해 재료가 소진될 때까지 영업시간을 연장했습니다
을지면옥뿐 아니라 한국의 노포들은 점차 스러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가게 운영이 어려워지거나 재개발 사업에 밀려 강제로 가게를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노맥 문화의 원조로 알려진 을지OB베어도 ‘2015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되는 등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가게였지만 올해 4월 건물주와의 명도소송 끝에 사라졌습니다.
중소기업벤처연구원이 2018년 전국사업체조사를 바탕으로 통계분석을 실시한 결과 전체 317만여 소상공인 중 업력이 30년 이상인 곳은 11만개로 3.5%에 불과했습니다. 50년 이상 가게를 운영한 소상공인은 2,500여개, 100년 이상은 27곳에 그쳤습니다.
우리나라의 국수는 면의 종류, 육수의 재료 등에 따라 다양하게 발달했습니다. 각 지역에서는 지역 고유의 식재료를 사용해 국수를 만들었고, 이 음식들에는 지역 생활문화의 특징과 양상이 담겨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잔칫날 돼지를 잡아 끓인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는 것에서 유래한 제주도 고기국수와 금강유역에서 잡은 생선을 넣고 끓인 국물에 국수를 넣어 먹는 생선국수, 척박한 토양에 메밀을 생산하여 면을 만들어 먹었던 강원도의 메밀국수가 대표적입니다. 반가의 음식에서 안동의 대표적 향토음식이 된 건진국수, 뱃사람들이 먹던 음식에서 즐겨먹는 음식이 된 포항의 모리국수, 여름날 더위를 견디기 위해 먹던 전라도의 팥칼국수 등이 대표적인 지역 국수입니다.
국수가 지역별로 발달하는데 영향을 준 것은 국수공장입니다. 1970~1980년대까지 읍면단위에는 한 곳 이상의 면을 뽑는 국수 공장이 있었습니다. 국수공장들은 소규모로 국수를 생산해 최고의 맛을 내는 국수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찾아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소규모 국수공장은 지역, 또는 공장에 따라 중면, 소면 등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국수를 생산했고, 이러한 국수 제면 방법은 지역에 맞는 다양한 국수를 발달시키는데 역할을 했습니다.
호남권에서는 전북 임실의 '백양국수'와 전주의 '송철국수공장'이 양대산맥입니다. 송철공장은 부안의 뽕잎, 군산 검정쌀, 익산 자색고구마 등 5가지 농산물의 100% 천연분말로 색을 내며 천년전주기네스에도 선정된 바 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인근 동문사거리 '국시코시'나 삼천동 '옛날양푼국수', 월드컵경기장 인근 '자미원' 등이 송철국수를 애용하고 있습니다.
백양국수를 받아 파는 임실 강진시장 내 할매국숫집인 '행운집'(김복례 할매)은 안도현 시인 등 전라도 문인들이 단골로 이용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전주 송철국수는 지난 1946년 일제의 징용으로 강제 노역을 하다 돌아온 송철승 대표가 누이의 공장을 이어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남부시장 안에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던 송철국수는 2대 송현귀, 3대 송진우 대표까지 어느덧 76년의 세월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1970년, 남부시장 건너편 좁은 골목으로 자리를 옮긴 송철국수는 30년 넘게 이곳에서 변함없이 신선한 국수면을 만들고 있습니다. 송 대표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옛 맛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철칙”이라고 강조합니다.
대형 공장에서 생산되는 국수는 열풍건조 방식입니다.
임실의 ‘백양국수’는 국수를 만든 후 건물 옥상에서 태양열로 말립니다. 국수 맛도 다르다. 방송에 나온 후 전국에서 국수 주문이 쏟아지지만 대부분의 과정을 ‘손’으로 해냅니다. 여전히 옥상에서 말립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롭습니다. 맛은 다르다
이 집은 등록증상 1947년으로 돼 있습니다.
전북도와 경진원(전북도경제통상진흥원)은 소상공인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전북 천년명가 육성사업'을 통해 10곳을 선정했습니다.
‘전북천년명가’는 30년이상 한 길 경영과 가업을 승계한 우수 소상공인을 발굴해 홍보·마케팅·자금지원 등 다양한 정책수단을 연계 지원해 100년이상 존속·성장할 수 있도록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전북도와 경진원은 30년이상 사업을 영위하고 있거나 직계가족으로 가업을 승계한 소상공인 중 성장 가능성이 검증된 10곳을 ‘전북천년명가(全北千年名家)‘로 선정했습니다.
이번에 최종 선정된 곳은 ▲엠아이비(주)-40년 동안 국내 칫솔 제작(전주) ▲여밈선한복-3대를 이어 세계적 무대에서 활동(전주) ▲민속공예사-전북 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장을 잇는 가업승계(전주) ▲동양식품-50년의 역사가 담긴 지역 대표 수제 어묵(군산) ▲덕인공방-4대에 걸쳐 필장의 가업을 잇는 전통 붓(익산) ▲운봉목기-무형문화재 11호 목기장이 제작하는 전통목기(남원) ▲백양국수공장-60년동안 수제 국수면 제작을 고집하는 장인(임실) ▲한빛영농조합법인-무주군 대표 술 대학찰옥수수동동주 제조(무주) ▲줄포수산-수산물을 직접 건조·유통을 선도(부안) ▲고창전통자수-3대 가업을 잇는 자수명가(고창) 등입니다.
'노포(老鋪)'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오기 시작해 해방 이후 사용안하다가 2000년대 이후 다시 쓰이기 시작한 일제 잔재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노포(老舗, 老鋪)'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은 1918년 9월 24일 '부산일보' 기사에서입니다.
노포(老鋪) 대환(大丸)의 신축 낙성기사로, 이는 일본 오사카에 새로 들어서는 다이마루(大丸) 신축건물에 대한 것입니다.
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노포(老鋪)'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고 똬리를 틀고 있다. '시니세 다이마루의 신축 낙성식(老鋪大丸の新築落成式)' 기사는 아무래도 씁쓸합니다.
서울시는 오래된 가게를 가리키는 일본식 한자어 표기인 '노포(老鋪)'를 대신할 서울만의 새로운 이름을 찾기 위해 시민공모를 진행, 그 결과 '오래가게'라는 새 이름이 뽑혔습니다. '오래가게'는 '오래된 가게가 오래 가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노포' 말고 '오래가게' 어때요?

갈수록 사라지는 추억의 향수들을 찾아 이제 세대를 이어가는 소비 트렌드도 생겨났듯이 역사적인 ‘노포’들을 보존할 방법이 없을까요? 서울시 등 일부 도시에서 오래된 가게를 보존하기 위해 생활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등의 노력은 있지만, 그 정도로는 미미한 것 같습니다. 좀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 가게를 지속하고자 하는 쥔장들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노포를 찾는 많은 단골 식객들의 변함없는 애정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전국의 30년 이상 ‘노포’지도를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인구 1억 2,000만의 대국 일본은 아직도 교토와 도쿄에만 100년 이상된 노포가 3만여 개, 200년 이상이 3,000여 개, 그리고 놀랍게도 1,000년 이상 된 노포도 7곳이나 있다고 합니다. 정말 부러운 일입니다. 이 나라라고 도시가 발전하지 않고 시간이 멈춘듯 정체되어 있어서 그런가요? 이 모두 전통과 가업을 중시하는 일본인들의 근성과 인식에 따른 것입니다.

창업은 실직과 명예퇴직 그리고 계속되는 불황 속에서 사람들이 선택한 마지막 희망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가게는 연평균 60만 개가 생겨나고 58만 개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창업 3년 차에 53.6퍼센트, 5년 차에 66.6퍼센트의 가게가 문을 닫았습니다.(2012). 이런 냉혹한 현실 속에 오랜 기간 동안 문을 닫지 않고, 더 나아가 100년 이상 이어지며 사랑받는 노포(老鋪,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요?
물론 100년 이상 된 ‘노포’가 한국에 없지는 않습니다. 각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대다수가 규모가 작고 영세합니다. 그렇기에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을 비롯한 현대사의 굴곡을 거치고 살아남은 장수 노포들은 더욱 소중합니다.
가게도 엄연한 기업이다. 업종, 규모와 관계없이 경쟁 상황을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고,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 자영업에서도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