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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익산 팔십의 형제 소동도와 소동명이 주고받는 안빈낙도(安貧樂道) 이야기

팔십의 형제 소동도와 소동명이 주고받는 안빈낙도(安貧樂道) 이야기

한국학호남진흥원 호남학산책 명시초대석 44(2023년 5월 26일)

김창호 원광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병중에 감회를 써서 태수 형에게 바치고, 아울러 고을의 벗에게 주고서 화답시를 구하다.(病中書懷, 呈太瘦兄, 兼示洞中諸益, 求和.)>

백발의 형과 아우 모두가 팔십이니
아침저녁 마주하며 지난 삶 얘기하네
말년의 고질병, 형은 아우가 가련타 하고
고을 맡아 효도한 일, 아우는 형을 부러워하네
영고성쇠란 원래 운수에 의한 것이니
우락(憂樂)을 가지고 다시 마음 쓰지 말길
생각하니 종형제 가운데 일찍 떠난 이 많으니
늦게 죽는 이 눈물 흐르지 않을 수 있으랴
白髮弟兄俱八十 晨昏相對話平生 沈年苦疾兄憐弟 致養專城弟羨兄
已識榮枯元有數 莫將憂樂更關情 翻思諸從多凶短 後死何堪涕自傾
 
나이 팔십의 노인이 이웃에 사는 사촌 형에게 보낸 시이다. 시를 지은 이는 익산에서 태어나 17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면와 소동도(蘇東道, 1592~1671)이다.

소동도는 의주부윤과 제주목사를 지낼 때에도 병을 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은퇴 후에도 병치레가 심했다. 소동명은 동생과 시를 주고받고 술잔을 나누는 일이 즐거웠지만, 마음 한 켠에는 동생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우리 흔하지 않은 여든의 삶을 누리며, 의지 삼아 세월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병에 눌리지 말고 식사 잘 챙기고, 무엇보다 삶을 서글프게 생각 말게나. 몸이 회복되면 우리 다시 멋진 시구(詩句) 나누며 한 잔 해야 하지 않겠나. 의욕을 일깨우는 형의 언사에 동생은 희망과 정겨움을 담은 시로 화답한다.


또 앞 시의 운자로 시를 지어서 태수형에게 드리다(又用前韻呈太瘦兄)

달이 처마 위에서 앞 기둥 위로 갔는데
한밤중에 일어나 앉으니 온갖 감회 일어나네
가죽나무 같은 자신 가련해 하는 것은 어리석은 동생
아가위꽃 같은 다정함 늘 바라는 것은 자애로운 형
채마밭 나물과 시내의 쏘가리 조석(朝夕)으로 먹고
말 줄이고 마음 거두어 성정(性情)을 기르네
동이 가득한 단술 벌써 익었다는 말 들었으니
상(床) 나란히 한 채 오히려 한 잔 비울 만하리
月移簷影上前楹 起坐中宵百感生 樗散自憐愚者弟 棣華常願友于兄
園蔬溪鱖供朝夕 含默收心養性情 醴酒盈樽聞已熟 連床猶可一盃傾
 
달이 중천에 뜬 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필름을 돌리듯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 것이 노년의 삶이고, 육체의 쇠약이 수반되기에 비감(悲感)으로 기울기 쉬운 것이 노년의 감정이다. 그런 생활 속에 형과의 동행(同行)은 언제나 힘이 된다. 노년은 생의 종착점이 멀지 않은 지점이다. 그렇지만 굳이 종착점을 의식할 필요가 있으랴. 담박한 생활의 터전을 바라보고 학인(學人)으로서 수신(修身)할 요체[존심양성(存心養性)]를 되새긴다. 채마밭의 싱싱한 채소와 시내에서 잡은 쏘가리는 내 몸을 건강하게 한다. 말 줄이고 마음 보존하여 성품을 기르는 것은 나의 정신을 건강하게 한다. 이쯤이면 뭐가 부러우랴. 팔십의 나이는 다시 청춘이 되고 청춘의 동생은 단술 익었다는 소식에 형과 함께 술잔 기울일 상상을 한다. 이 순간에 이들에게 늙음은 없다. 상상력과 열정이 존재하는 한 늙음은 머무를 곳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