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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한시로 만나는 전북 선비와 음식

 

염재 송태회(1872-1941) '토점에서 점심을 먹으며(午食兎占)'

 

대나무 식탁에 막걸리 마시고,

감잎은 밥을 싸서 향기롭네.

다투어 배고픈 이야기하는 동안

가을 산에는 또 석양이 지는구나

 

염재 송태회 '유마사에서 점심을 먹으며(午食維摩寺)'

 

판목으로 된 다리에 지팡이 짚고 찾으니,

푸르른 산중에 가랑비 오는 때로다.

버드나무 쇠잔하니 옛 사찰 보이고,

이끼에 덮인 비석이 연이어졌네.

가을 빛 이와 같이 맑으니,

숲 속의 행보 건장해서 앞서고자 하네.

김영운상인이 참으로 정이 많아,

점심때까지 서로 기다려 주었네.

 

염재 송태회 '복날에(伏日)'

 

어느 곳에 옷깃을 풀 데 없으니,

저물게 오히려 숲의 서쪽을 향하네.

괴로운 더위도 도리어 좋을시고,

술에 취해 복날의 시를 읊었노라.

 

반계 유형원(1622~1673) '동진의 시골 주막에서 나그네 회포(東津野店客懷)'

 

들이 넓고 하늘은 아득히 먼데

긴 강물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네.

 

하늘가에 돌아오는 기러기 있어

너무도 처량해 고향 생각나는구나.

 

거산 강천수(1863~1951)'붉은 복숭아(紅桃)'

 

유별히 연못 층계 모습이 사치하니

용이하게 물결 따라 눈에 보이네

이슬과 조화하여 싹이 더욱 많으니

지름길 이루니 누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아름다운 사람 찾아 함께 웃으니

문에 비추니 서로 엿보는 것 같네

품평하는 것 나는 비록 어두우나

자태가 짙으니 누가 너를 버리겠는가,

 

거산 강천수의 '복달임(煎伏)'

 

시와 술 한탄과 근심으로 뱃속 채우려 하니

얼마나 다행한가 친구가 발자국 소리내니

흐르는 샘물 소리에 항상 비소리로 속고

우는 새소리 그치니 외로운 삽살개 짖네

원래 무더운 먼지 땅에 이르지 않았는데

오랫동안 머무는 구름과 잎 창에 깃드네

올해는 비 때문에 식물들이 다시 자라고

평지따라 강이 만들어진 것 같이 보이네

 

거산 강천수의 '복날의 작은 모임 3(伏日小會 三首)'

 

복날에 술동이 메고 산 속에 앉으니

늙은 나이에 몸의 계책이 그릇됨이 아니네

이미 좁은 길에 많은 손님이 모여 오고

또한 해는 기우는데 지루한 비 끊어졌네

오늘 저녁 그대 번거롭지만 쉬어가리라

명승지인 이곳은 특별한 집의 문이 있네

향기로운 차 다리니 술 기운 도리어 깨고

눈으로 보내는 구름 한 조각이 날아가네

 

산 속의 집 모름지기 불꽃같은 더위 없고

제군들 알맞게 모이니 정을 겸해 통하네

그물을 빌려다가 앞의 시내로 나가니

아마도 깊이 잠긴 고기 몇 마리 잡아오겠네

장자(莊子)도 물고기의 즐거움(魚樂)을 다 알지는 못하니

창려(昌藜)가 어찌 반드시 소금에 찍는 걸(籤塩) 싫어하리

비온 후 돌아간다 말하고 물결 흐르듯 달려

헛되이 모래톱 잘못 밟으니 돌 끝이 보이네

 

비 오는 일로 올해 들농사 위로 되고

높은 논에 벼잎도 역시 따라 짙으네

깊은 산속 정자에 이름 없는 새 모이고

더위 물리치는 뜰에 우산 같은 솔 많네

거문고 술 이 잔치는 오직 나만 늙었고

아침저녁 그대가 아니면 누구를 따르리

흐르는 물로 양치하고 돌베게하니 분수 넘치고

아지랑이 둘러 있는 산은 여러 겹이네

 

거산 강천수의 '다시 읊다 2(伏日再吟 二首)'

 

부질없이 책 들고 높은 언덕에 누우니

모든 일들이 유유하여 터럭 하나와 같네

복날 술 소반 위에 가는 국수 올라 있고

하늘 가득히 짙은 안개 높은 산 지나네

천도 복숭아를 작은 동산에서 아이가 따고

십리 밖의 중()은 거리에서 막걸리 사가네

쇠약하여 병 지루하니 몸 건강하지 못하고

조용히 여기서 읊어 글귀 찾느라 노력하네

 

맑은 시내 다 건너니 다시 큰 바위 있고

여러 젊은이 더위에 질려 땀이 옷에 배네

푸른 벽에 안개가 끌려 정자 반쯤 둘리고

푸른 이끼 산골 비에 온 길이 모두 막혔네

명산(名山)이 나에게 어찌 마음을 거슬리겠는가

조용한 감상 그대와 기약하며 함께 손잡네

 

석정 이정직(18421910)'九日(중양절에)'

 

해마다 맞는 구월 구일

넘쳐흐르는 누런 국화꽃 술 담은 잔

이 날은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많아지는데

나와 함께 어울려 시를 지을 사람 아무도 없네

가을 바람 엷어진 귀밑머리에 살짝 불어온다

달 지는데 문닫는 게 늦도다

온 나라 안이 온통 어지러운데

이를 말끔히 평정해줄 사람 그 누구인가?

 

석정 이정직의 '식사를 먹다(加餐)'

 

돌아와 어제 정원에서 놀았던 일 거창하게 이야기하네

서권(書券)에 향 몇 촉 피워 올린다

구례 날씨 따뜻해 나무 향기로운데

오동에는 바람이 많고 푸른 그늘 드리웠다

마음 속에 고뇌를 지니느니

눈 앞의 건강을 중히 여기겠네

머리 희어도 아직 마음과 힘은 강대해질 수 있어

식사를 더 들며 흘러가는 세월을 아낀다

 

석정 이정직의 '전주에서 돌아오다(自全州還)'

 

돌아와 누워서 타향에서 살던 때 곰곰 생각하니

쇠약하고 나이 드니 내 오두막집 소중할 세

오리 기러기 구름 속에 날아오느는 것 멀리 바라보이고

가을 햇슬에 곡식 익어가니 가난한 집에 생기 돋네

반가운 손님 갑자기 찾아오면 거친 밥 대접하고

젊은이들 가끔 와서 고서 읽는다.

웃음 속에 나그네 시름 잊어버리고

자나깨나 혼자 지치지 않고 읇조리네

 

석정 이정직 '쌀 찧는 것을 보다(觀舂米)'

 

산골 농가의 뜰에서 다섯 사람 함께 쌀을 찧는데

손놀림 서로 돌아가며 오르락내리락

다 찧을 무렵 외딴 마을에 석양이 물들고

횃대 가득 암탉 수탉 날아오르네

 

김제출신 백석 유집(1584-1651)백석유고(白石遺稿)’엔 귤 관련 시가 나온다.

 

편지로 안부 물어도 괜찮은데

겸해서 두 가지 맛 보내주셨네

물고기는 바다색을 머금었고

귤은 동정호의 모습 띠었구나

황금색 껍집을 손으로 까서

살집을 반찬으로 올려 놓으니

덕분에 늙은 어미 위로했지만

사사로운 은혜를 어찌 갚을까(‘성주(송국택)'귤과 붕어를 보내옴에 감사하며, 謝城主饋黃橘鮒魚宋國澤')

 

다음은 백석 유집의 '인가의 팔경을 제하다(題人家八景'의 다섯번째 시 '귤과 유자의 향기로운 바람(右橘柚香風)'이다.

 

귤 숲에 서리 내려 가을이 깊어지니

예쁜 열매 영롱해 색이 번지려하네

바람결에 늦은 향기 침실까지 스미는데

갑자기 동정루(洞庭樓)에 누워 있나 착각할 정도

 

 

장파총, 김제를 지나다가 잉어회에 겨자장을 곁들인 밥상을 받다

 

김제평야의 한 되의 쌀을 정미하니 옥보다 윤기나고, 닭국엔 들깨와 쌀가루 들어가 매끄럽고 잉어회엔 겨자장으로 향기롭고 부추는 맛이 조금 맵고 미역국은 더욱 푸르스름하네. 순무는 네 계절에 먹는 것으로 채소 중에 최고이니 은색 실의 가는 것처럼 잘라 쟁반에 올리니 찬란함을 헤아릴 수 있네. 아빠는 손에 익숙하듯 잠깐 사이에 수퇘지 잡아 흰 눈 같은 목살 저미니 달고 연하여 실제로 견줄 만한 게 적다네

 

김려(1766~1822)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은 장편서사시로, 한국한시사상 보기 드문 작품으로서 소중한 자료이다. 주인공 방주는 장수 장계(長谿) 땅의 백정집에서 태어난 여성이다. 무관 장파총(把摠, 4품 벼슬이름)이 마을 백정집에 저녁을 청한다.

 

원제에서 장원경(張遠卿)의 처 심씨를 위해 짓는다(爲張遠卿妻沈氏作)’고 했다. 심씨란 방주를 가리키며, 장원경은 필시 장파총의 아들이다.

 

이 글에 의하면 조선 사람들은 이렇게 얻은 수산물에 어떤 상상력을 더했을까.

 

장파총은 김제를 지나다 잉어회에 겨자장을 곁들인 밥상을 받았다. 겨자장은 회의 짝으로 가장 널리 쓰였다.

 

‘(이어) 잠시만에 오묘한 반찬 준비하고 소담하고 청초하며 깔끔하지. 창 머리의 흑기장 술의 향기로운 술맛이 고양이 눈 찢을 듯하네. 고당에 대자리 깔니 때자리는 시원해 얼음장 같네. 손님에게 가운데 앉길 권하고 부채 흔들며 더위 몰아내네. 더운 바람에 모기 씻기고 뜰 나무엔 붉은 햇빛 스러지네. 주인이 친히 밥을 받자옵고 앞으로 나가 공경히 무릎 꿇고 괴로이 말하네. “잠깐 사이라 거친 밥이 매우 보잘 것 없습니다. 저는 아내도 이미 없고 천한 여식이 마침 음식을 주관하는데 음식 기술이 비록 거칠 게 이해하더라도 조화로움이 어찌 적당한 맛이겠나요? 근래에 나라에선 엄금(농사용 소를 위해 소 도살을 금함)하고 쇠고기 하물며 다시 귀함에 오죽하겠습니까?” 파총은 수저를 내려놓지 못하고 내심 감격했네. 화려한 빛깔이 갑자기 눈에 뜨이고 진귀한 향기가 이미 코에 닿았네. 아낙네의 여러 행실의 요체는 먼저 술과 밥 솜씨를 따르는데 반찬의 품질이 이미 이와 같으니 심한 일 물을 게 없네

 

가장과 삼형제가 도축만이 아이 지나다가 방주를 보고 일부러 방주의 집을 방문, 그녀의 아버지에게 자기 아들과의 혼인을 청한다. 작중 현재에 진행된 사건은 여기서 일단 정지되며 시는 장파총의 과거로 소급해 들어간다. 그리하여 장파총의 파란의 인생역정을 장황하게 서술해가는데 그러다가 중간에서 끊어진 것이다.

 

매천 황현(黃玹 1855~1910)은 매천집(梅泉集)에서 "冷麵千絲石竇泉(냉면천사석두천) 냉면 천 가닥을 돌틈 샘물에 말았구나"라고 읊었다.

 

"과거시험을 치르고 난 다음날 일행과 함께 점심식사로 냉면을 배달시켜 먹었다

 

1729년 오늘(525),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은 일기처럼 쓴 '이재난고(전북 유형문화재 제111)'에서 우리나라 배달의 역사250여년 전으로 끌어올린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 음식기록으로 보인다. 176877, 나이 마흔에 시험을 치른 뒤 맛본 냉면이었으니 얼마나 시원했을까. 그는 서른한살에 진사시험에 합격했지만 문과에 급제하지 못하고 결국 낙향해 생을 마감한다.

이는 영·정조시대 최고의 천문학자 탄생기다. 시험을 마치고 치맥을 먹는 요즘 대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 큰 일을 치른 뒤에 맛있는 음식으로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자 하는 마음은 시대를 초월하는 심리라고 볼 수 있다.

 

조선중기의 호조참판 등을 지낸 문신 저헌(樗軒) 이석형(李石亨 1415~1477)'연상 즉차감사운(宴上 卽次監司韻)'은 오목대 관련 시다.

 

오늘 완산(完山:전주)의 좋은 벗 셋이 있어서/ 모처럼 서로 만나 성대한 연회를 가졌네

 

소공의 아그배나무 그늘에 봄빛 벌써 푸르렀고/ 초왕의 궁정 뜰엔 흥취 한창 무르녹네

 

소반 위엔 백설 같은 생선회가 쌓였고/탁자 위엔 황금 같은 유자가 고여놓았네

 

천만 순배 술잔에 진창으로 취해서/한평생 향락을 여기 호남에서 만끽하네

 

完山今日故人三 邂逅相逢盛宴參

召伯棠陰春已早 楚王宮畔興初酣

盤中白雪堆魚膾 案上黃金擘乳柑

飮盡千杯萬杯酒 平生行樂數湖南

 

효산 이수형(1837~1908)'천렵(川獵)'

 

복숭아꽃 봄물결은 바람없어 고요한데

아이들을 풀어놓아 고기 잡네

해거름이 돌아와 삶고 끓여 맛 좋으니

푼돈 들여 이를 산지라 한 술통이 붉고나.

 

경재 김명철(1878~1958)'박씨(種瓢)'

 

너희들은 도소주를 체면삼아 마시고

주인 옹은 박을 심어놓고 하루 하루 크는 걸 보네

꽃과 잎이 번성해 결실이 많고

가지 줄기 바로 사방으로 진을 쳐 뻗어가네

하늘이 단비를 내려 도와주고

인력이 성공하려면 매서운 서리가 한탄스럽네

금도 아니고 옥도 아니며 이익만 일삼으니

집집마다 빈부를 감추지 않음이 없네

 

유헌 정황(1512~1560)'우계하가 두 번 노루고기를 보내 줌에 사례하며(謝禹繼夏再送獐肉)'

 

매번 노루 내장을 보내주어

나그네 된 나의 반찬 걱정을 염려했구나

그대 마음 사랑스러우니

물건 또한 껍데기 살이 아니구나

 

유헌 정황 '서리 맞은 귤(霜橘)'

 

남녘 세한(歲寒)의 나무

임금께서 너를 아름답게 여기셨다

가시 가지 칼과 창처럼 섰는데

금 같은 열매 영롱하게 비꼈구나

그 성품은 풍상에 나타나니

어느 때면 우로 더해 질런지

한 마음이로되 회수로서 한계가 되니

삼려대부 굴원 탄식 깊고 진실되도다

 

유현 정황의 '어떤 이가 은구어를 보내 줌에 사례하며(謝人送銀口魚)'

 

근원을 찾아 한류를 거슬러온 몇 무리들

바뀌어버린 비늘무늬 점액(點額)이 아닌지

등용문으로 오르지 못하고 큰 물줄기 가에 있더니

근래에 도로 병자(病者)를 위한 공이 있구나

 

유현 정황의 '이찰방()이 고기와 쌀을 보내줌에 사례하며(謝李察訪磺送魚米)'

 

하늘가에서 살아 온 지 9

밤중의 기구한 길로 쓸쓸한 거처를 문안했구나

친척의 인연도 아닌데 약한 나를 도와주셔서

아침 식사에 밥과 고기를 먹게 했구나

 

풍거 이문규(1617~1688)'고사리국(湯蕨)'

 

봄 산에 비가 내려 고사리 잘 자라서

좋은 날 모두 모여 광주리 가득 캐네

걸죽한 국물에 간장을 타고

살지고 기름진데 기장을 함께 하네

온 집안 단란하게 다른 손님 없고

그릇에 철철 넘쳐 모두 배 부르네

삼월 사천(斜川)의 도연명(陶淵明) 모임에도

꽃밭에서 이 탕국 먹었는지 알 수 없네

 

풍거 이문규 '반환정 술자리에서(盤桓亭)술자리에서(盤桓亭酒席次韻)'

 

거문고 피리 가락 술 잔을 권하는데

무슨 행운으로 이 좋은 봄날 만났을까

잠깐 사이 비 내리다 개이니

교룡산이 새록새록 빛나네

 

풍거 이문규 '최옥구와 시냇가에서 쑥국을 끓이면서(與崔沃溝芮澗邊)'

 

신선의 음식은 새파란 쑥이고

동해의 참 고기는 청어(碧魚)다 마다

한 번 모이더라도 명승지 구해야지

잔디에 새싹 돋고 시냇가 매화 듬성듬성한 곳을

 

풍거 이문규 '물고기 횟감에(膾魚)'

 

시냇물 넘쳐 물고기 많이 잡혀

아가미 꿰인 고기 만 궤미나 되네

금을 찧듯이 마늘을 잘게 부수고

눈을 치우듯이 비늘을 벗겨내도다

매큼한 식초, 고추장, 간장 섞으니

안주상에 그 맛 으뜸이어라

비린 것 먹는 데는 술 한 잔 제격이라

술 불러 얼큰히 취해보세나.

 

풍거 이문규 '영천 술자리에서(寧川酒席口呼)'

 

장맛비에 발목잡힌 영천 객사 깊은 밤

가물거리는 등불 아래 조금씩 술잔 기우릴 때

누구를 기다리듯 술잔 멈춘 것은

오동나무 위에 떠오르는 달이 더디기 때문.

 

풍거 이문규의 '고산 술자리에서 서로 화답하면서(孤山酒席相和二首, *고산은 장수 산서면 대창리 앞산)'

 

긴긴 봄날 맑은 햇살 희롱하니

동풍에 꽃 떨어지고 제비는 돌아오네

술자리의 상봉은 참으로 우연인데

세상사 시비를 말하지 마오

 

복숭아꽃 살구꽃 뒤섞여 붉은데

호사다마라 편지 받지 못하고

이별 후 가을 지나 오늘에야 만났으니

술 마시고 담소함이 모두 같은 심정일세

 

풍거 이문규의 '술자리에서 장익제의 운에 따라서(酒席和張益哉韻)

 

백로는 쌍쌍이 맑은 물결에 점벙대고

들녘의 바람 연기 저물녘에 짙어가네

취한 몸으로 버들 숲 헤치고 가려는데

정 있는 꾀꼬리는 누굴 위해 노래하는가

 

고산처사(孤山處士, 益哉 張復謙)와 술 한 잔을 기울이니

세상사 모두 씻어 가슴 이 툭 트이네

훗날 꿈 속에서 다시 찾으면

수양버들 시냇가 누대를 기억하리

 

장 옥경헌의 원운(原韻)

 

풍거와의 대작(楓渠對酌)

 

옥경헌 장복겸

 

며칠 동안 술자리 만나 술잔을 잡으니

저문 해의 품은 시름 그대 때문에 풀었도다

아득히 알리로다 이별 후의 삼계(三溪)의 꿈은

나의 고산(孤山) 수월대(水月臺)를 오래토록 감돌 것을

 

 

욕천(浴川, 곡성)의 애탕회(艾湯會)에서 써서 주위 사람에게 보여주다

 

장경세

 

풀을 헤치고 시냇가에 앉으니

봄 들녘에 맑은 볕이 더디기만

눈은 어젯밤 비에 녹고

버들은 지난해 가지에 움트네

우연히 만나 멋진 모임 이루어

생황 노래에 술잔을 기울이네

기쁘게 즐기는 것만으론 부족하여

석약에 또 새로운 시를 짓네

 

 

*욕천(浴川)은 곡성의 별호이다. ‘애탕회(艾湯會)’는 모여 쑥국을 먹는 모임이다. 5월 단오 무렵이면 말린 청어에 쑥을 넣어 끓이기도 했다, , 어린 쑥을 물에 데치어 곱게 이긴 뒤에 고기 이긴 것을 섞어 은행알 만큼씩 빚어 달걀을 씌어, 펄펄 끓는 맑은 장국에 넣어 익힌 국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