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스토리

익산 미륵사지 금당지(金堂址)의 대나무와 신잠의 묵죽화

이종근의 행복산책 2025. 7. 15. 20:16

익산 미륵사지 금당지(金堂址)의 대나무와 
신잠의 묵죽화

‘대쪽 같다’는 형용사가 있다. 유교문화권에서 대나무는 고고한 정신성을 은유하는 식물로 통한다. 유교적 인품을 상징하는 사군자(四君子)에 매화·난초·국화와 나란히 대나무가 있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리 사시(四時)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윤선도(1587~1671년)는 대나무의 매력을 이렇게 읊조렸다.
백거이(白居易)는 중국 당나라의 시인으로, 자는 낙천(樂天)이다. 그는  시에서 대나무를 소재로 삼아 '양죽기(養竹記)'라는 글을 남겼는데, 이 글에서 대나무의 곧은 성질과 뿌리의 굳건함을 들어 군자의 덕목에 비유했다. 

'대나무는 현자(賢者)를 닮았다. 어째서인가?대나무는 뿌리는 단단하니 단단함으로써 덕(德)을 세운다. 군자(君子)는 그 근본을 보면 확고히 서서 뽑히지 않을 것을 생각한다.
대나무는 성질이 곧으니 곧음으로써 자신을 세운다. 군자는 그 성질을 보면 가운데에 서서 기울지 않을 것을 생각한다.
대나무는 속이 비었으니 비어 있음으로써 도(道)를 체득한다.군자는 그 속을 보면 곧 마음을 비우고 겸허히 받아들일 방법을 생각한다.
대나무는 마디가 곧아서 곧음으로써 뜻을 세운다. 군자는 그 절개를 보면 곧 행실을 갈고닦아 고락에서 한결같기를 생각한다. 이와 같기 때문에 군자들은 대나무를 많이 심어 정원수로 삼고 있는 것이다.(중략)
아아! 대나무는 스스로 남다름을 나타낼 수 없으니 오직 사람이 그것을 남다르게 해주고, 현자(賢者)도 스스로 남다르게 할 수가 없으니 오직 현자(賢者)를 쓰는 사람이 그를 남다르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양죽기(養竹記)'를 지어 정자의 벽에 써서 이후에 이곳에서 살게 될 사람에게 남겨주고,또 오늘날의 현자(賢者)를 등용하는 사람에게도 전해지게 하고자 한다'

대나무는 사실 나무가 아니라 ‘벼(稻)과의 다녀생 풀’이다. ‘죽림칠현’ 등을 통해 다분히 탈속적 이미지가 있으나, 대나무만큼 실용성이 뛰어난 식물도 드물다. 돗자리·방석·바구니 등등 다양한 일상용품의 재료이자, 훌륭한 식재료 ‘죽순’을 만들어낸다. 죽순은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콜레스테롤 억제에 좋고, 나트륨을 배출시켜 고혈압 환자에게 이롭다.

"아삭한 식감과 단단한 육질, 담백한 맛 등 반찬·술안주로 일품이다. 볶음·데침·부침·절임·탕 등 모든 요리법에 잘 맞는다. 다음달 중순 쯤이면 죽순의 계절이다. "도끼로 찍고 칼로 다듬어 솥에 삶아내거나 풍로에 구으면 향기 좋고 맛이 연해, 입에는 기름이 돌고 배가 살찐다. 쇠고기나 양고기보다 맛있고 노린내나는 산짐승 고기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인로(1152-1220)의 죽순 예찬이다.

한자 문화권에서 대나무 그림이 나타난 것은 5세기 초반 육조시대, 인물화 위주의 그림에서 부수적으로 다뤄지던 대나무는 당시대엔 화조화와 더불어 부상했다
우리나라 대나무 그림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익산 미륵사지서 출토된 중원(中院) 금당지(金堂址) 외부 벽체편의 대나무 그림을 시작으로, 고려 중기 이후엔 수월관음도 등 불화나 분묘 벽화에 대나무가 등장한다. 

대나무의 단순 강직한 미감이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인간관 및 미적 취향과 맞물리면서, 문인 화원화가들이 묵죽화를 즐겨 다뤘다. 사실적 표현에 치중하던 화원 화가의 대나무부터 담박하고 소산한 의취를 담아낸 15세기 말, 16세기 초의 문인 묵죽화까지.

미륵사지 중원 금당지에서 발견된 벽화편에서 대나무 그림이 확인됐다. 이 벽화는 금당 내부를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대나무 외에도 꽃무늬와 기하학적 무늬 등이 함께 발견됐다.

미륵사 중원 금당지는 백제 무왕 시기에 창건된 미륵사의 중심 건물 중 하나이다. 중원 금당지에서 출토된 벽화편은 금당 내부 벽을 장식했던 것으로 보이며, 대나무 그림은 당시 불교 문화에서 대나무가 중요한 요소였음을 보여준다. 

문양으로는 대나무, 꽃무늬, 불명확한 기하학무늬 등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대나무 문양, 꽃무늬잎의 양식을 통해서 7세기 대나무, 초당대 보리수잎 유형과 유사성이 발견된다. 

신잠(申潛, 1491~1554)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무성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화가이다.

1543년 등용되어 태인현감으로 부임, 태인에 큰 흉년이 닥쳤을 때 어려움에 처한 백성을 잘 구휼했다.1549년 피향정(보물) 옆에 태인현감을 역임한 신잠(申潛)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신잠비가 건립됐다.

신잠의 작품으로는 '심매도(尋梅圖)', '사계화조도(四季花鳥圖)', '묵죽(墨竹)' 등이 있다. 신잠은 포도와 대나무 그림을 잘 그렸는데, 특히 묵죽이 유명하다.
 ‘퇴계선생문집’에는 열 폭 대나무 그림에 대해 시를 쓴 것이 있다.
이 그림은 퇴계와 절친했던 영천자 신잠이란 사람의 그림이다. 

신잠은 신숙주의 손자이다. 이것은 조선 사림파의 대나무 그림 예술의 극치이며, 이 제화시(題畵詩)는 대나무 그림의 비평으로 유명하다. 그중에 두 편만을 감상하면서 옛 선비들이 왜 대나무를 좋아하였고 우리는 대나무에게서 어떤 교훈을 본받아야 할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감상해보자.

雪月竹 눈과 달 속의 대나무

이황

玉屑寒堆壓 옥설이 차갑게 대나무를 누르고
氷輪逈映徹 얼음같이 둥근 달 휘영청 밝도다
從知苦節堅 여기서 알겠노라 굳건한 그 절개를
轉覺虛心潔 더욱이 깨닫노라 깨끗한 그 빈 마음

대나무는 흔히들 눈과 함께 일컫는다. 백설에 푸른 대나무는 색상의 대비가 우아하고 눈의 깨끗한 이미지와 대나무의 곧은 절개의 이미지가 잘 어우러진다. 그래서 예부터 선비들은 설죽(雪竹)을 일컫는다. 

여기에선  퇴계가 친구인 신잠이 달밤에 눈 속에서 고고한 자태를 발하고 있는 대나무를 그린 그림에 화제의 시를 쓰고 있다. 

그림과 시는 그 예술성이 다르다. 퇴계는 그림은 곧 사람이라는 입장에서 작가의 성격과 그림의 품격을 연결시키고 있다. 굳건한 절개와 깨끗하고 텅 빈 그 마음의 주인공은 신잠이다. 

이 그림에서 대나무에 대한 이미지를 결합시킨다. 차가운 눈 속같이 어려운 세태에도 겨울 대나무의 고통스러운 삶에서 선비의 고결한 이미지를 도출해 낸다. 

‘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날씨가 차가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를 안다)’라는 논어의 소나무와 잣나무에 대한 절개의 이미지를 소나무 대신에 대나무로 교체시키고 있다. 이미지 교체가 가져오는 또 다른 상상력은 관념을 융합시킨다. 

신잠의 묵죽화는 이른 바 '신여죽화(身與竹化)'의 경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몸이 대나무와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그림을 그릴 때 화가와 대상인 대나무가 하나가 되는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묵죽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으로, 작가가 대나무의 정신과 기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표현할 때 도달하는 경지를 의미한다. 

題靈川申潛畫竹 영천자 신잠의 대나무 그림에 쓰다

 이황

竹與靈川本一身 대나무와 영천자(靈川子)는 본래 한 몸이라서
一身變化儘通神 한 몸의 변화가 모두 신묘함에 통하였네.
可憐滿幅淸虛影 그림 가득 맑은 그림자만 가득함이 구슬프니
疑是靈川自寫眞 아마도 영천자가 스스로 참모습을 그렸나보네.

 題靈川子墨竹二絶. 與石川, 松岡. 分題同賦.

이황

영천자 대나무 그림에 쓴 절구 두 수로 석천(石川), 송강(松岡)과 나누어 쓰고 함께 읊었다.

舞月危梢隱兩旗 달빛에 춤추는 위태로운 가지 두 깃대를 감추고
和烟嚲露有孫枝 안개에 어우러져 이슬에 늘어진 곁가지 있네.
只今丹鳳無消息 지금 단봉(丹鳳)은 소식이 없으나
猶保堅貞歲晏知 오직 굳은 절개 보존하면 세밑에 알리라.

題靈川子墨竹 영천자 묵죽에 쓰다

 이황

舊竹飄蕭新竹長 옛 대나무 쓸쓸한데 새 대나무 자라
林間奇石狀奇章 숲 사이 기이한 바위 기장의 돌과 같구나.
不知妙墨傳湘韻 알지 못하는 사이 묘묵이 소상강의 운치 전하니
唯覺風霜滿一堂 오직 바람과 서리 집안에 가득함을 느끼네.

사육신의 한 사람인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묵죽도 다섯 폭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중에 설죽이 들어 있다.  거기에도 대나무 잎에 얹힌 눈이 묘사되어 있다. 

4대사화를 거치며 시대상을 눈 서리치는 시대로 보고 거기에 지조와 절개를 굽히지 않는 선비의 모습을 설죽으로 보았다. 사대 사화를 거치며 성리학적 강한 실천을 주장하던 사림들에게는 강한 설죽이 자주 소재로 등장할 법도 하다. 

영천자 신잠도 기묘사화의 모진 칼바람에 곤욕을 치른 선비였다. 눈 속의 겨울 대나무는 성리학자들이 추구해온 미적 지향과 잘 어울렸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훌륭한 예술품에는 반드시 작가의 훌륭한 정신이 깃들어 있고 그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술품을 통하여 사람과 시대의 정신을 만난다. 

예술과 정신과 삶이 하나인 예술품만이 영원한 생명력을 지니며 마력처럼 그 세계 안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필자의 호는 죽심(竹心)이다. '한 마디 위로 또 한 마디씩 자라며 천 개의 가지에서 만 개의 잎을 펼쳐 내지만 나는 스스로 꽃 같은 거 피어내지 않아 벌과 나비 모여드는 일 없게  하리라'

오늘 문득, 겨울 대나무에서 강인한 선비정신을 배우고 싶다. 바람에 부러진 대나무를 보면서 목이 달아나도 곧은 절개만을 지니는 저 대나무를 오늘 문득 너무나 닮고 싶다. 

http://www.sjbnews.com/news/news.php?code=li_news&number=855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