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스토리

'정읍 서화의 맥을 잇다' 정읍시립박물관, 서화기획전 '선과 먹으로 전하는 마음, 정읍 서화'

이종근의 행복산책 2024. 12. 2. 15:17


정읍시립박물관이 내년 2월 2일까지 기획특별전 '선과 먹으로 전하는 마음, 정읍 서화'를 갖는다.
'서화실' 신설을 기념,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정읍 출신이거나 정읍에서 활발히 활동한 서화가들의 작품이 공개된다.
난곡 송민고, 창암 이삼만, 석지 채용신, 몽련 김진민, 동초 김석곤 등 정읍 서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예술가들이다.
석지 채용신(1850~1941), 토림 김종현(1912~1999), 창암 이삼만(1770~1847), 몽련 김진민(1912~1991), 동초 김석곤(1877~1953) 등 정읍서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서화가 12명의 작품 6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붓과 먹으로 표현한 작품 속에서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당대를 살아가던 작가들의 삶과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얼음과 눈 같은 모습이 사랑할 만하여 예부터 난초와 혜초처럼 가까이 지냈지, 서로 그리운 마음이 밤새 일어나니 다시 정신을 추스를 수 있을까?'
난곡 송민고가 오랜 벗을 떠나보내며 친구의 인품을 매화에 빗대 그린 게 전별도이다.
좋은 시를 짓고 멋진 글을 쓰고, 마음을 표현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모두 서로 통한다는 당시 선비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우러난다.
박물관 1층 서화실에서는 선비들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를 비롯, 자연과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삶과 정신을 화폭에 담은 그림들이 전시된다.
희귀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송민고의 '묵매도'와 채용신이 그린 10폭 '영모도' 병풍이 전시된다.
호랑이 그림의 명인으로 불린 소제 이상길이 표현한 소나무 아래 입을 크게 벌리고 포효하는 호랑이. 선조들은 당시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던 호랑이 그림으로, 집안의 평안을 기원했다.
호랑이 그림의 명인 소제 이상길, 달마도 대가 소공 이명우 등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2층 기획전시실에서는 조선 후기 명필 창암 이삼만의 작품을 비롯해 몽련 김진민의 '난정서 10폭 글씨 병풍', 동초 김석곤의 병풍과 현판 작품이 공개된다.
일제강점기 여성 서예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한 몽련 김진민의 낙지론'이다.‘낙지론’은 후한(後漢)시대의 학자이자 고사(高士)였던 중장통(仲長統 179-220)이 쓴 문장으로, 허건은 이 글을 화제시로 써놓고 그림을 그렸다.

'내가 사는 곳에 좋은 밭과 넓은 집이 있으니 산을 등지고 냇물을 굽어보며 도랑과 연못이 둘러 있다. 주위는 대나무와 나무들이 둘러싸고 앞에는 타작마당과 채소밭이 있으며 뒤쪽에는 과수들이 심어져 있다. 걷거나 건너는 것을 대신해 배와 수레가 있고 수고를 대신해 줄 하인들이 있으며 부모님을 봉양할 맛있는 음식이 있고 처와 자식을 수고롭게 할 일이 없다. 좋은 벗들이 모이면 술과 안주를 차려 즐기고 좋은 때나 좋은 날이면 양과 돼지를 삶아 조상에 바친다. 동산 위를 거닐기도 하고 숲에서 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맑은 물에 몸을 씻고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헤엄치는 잉어를 낚고 높이 나는 기러기를 활로 쏘아 잡는다. 기우제 제단 아래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방안에선 정신을 가다듬고 노자의 현허(玄虛)를 생각하고 조화의 정기를 호흡하며 지인(至人)의 경지를 구한다. 깨달은 몇몇 사람과 도를 논하고 책을 강론하며 고금의 역사와 인물을 평한다. ‘남풍가’의 우아한 곡조를 연주하고 청음(淸音)과 상음(商音)의 오묘한 가락을 연주하며, 한 세상을 유유히 살며 천지 만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시대의 책임을 맡지 않고 타고난 생명을 길이 보존한다. 이와 같이 한다면 하늘을 넘어 우주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제왕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부러워하랴!'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한적하게 살겠다는 의지와 김진민 특유의 힘 있는 필획이 어우러진 명작으로 불린다.
이삼만의 대표작인 '산광수색'과 유수체의 조형미를 보여주는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며 영조가 정읍사람 김도언에게 하사한 영조어필과 무성서원 현판 등도 전시된다.
작품 감상 외에도 매화 그림과 눈 내리는 농촌 풍경을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 어린이를 위한 포토존, 컬러링 체험 공간도 마련돼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다채로운 체험을 제공한다.
이학수 시장은 "정읍 서화가들이 선과 색을 통해 담고자 했던 소망과 감성을 이번 전시에서 느껴보시길 바란다"며 "서화실을 통해 다양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겠다"고 했다.
종이 위를 쓸고 간 붓질의 궤적을 따라 서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이 전시는 내년 2월 2일까지 정읍시립박물관에서 열린다./이종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