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상봉터미널
지난 1985년 8월 개장해 강원도와 경기북부, 중부이남 국민들의 서울행 관문 역할을 해온 서울 상봉터미널이 지난달 30일 오후 8시 원주·문막행 버스를 마지막으로 38년 만에 문을 닫았다. 상봉터미널은 1985년 9월 2일 개장 이래 한때 이용객이 하루 평균 2만 명을 넘어서는 등 서울 지역 내 주요 터미널로 자리를 잡았다. 당시 상봉터미널은 강원·경기북부 지역 시외버스, 중부 이남 지역을 잇는 고속버스의 기종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인근에 동서울터미널이 개장하면서 군인들이 주로 이용하던 경기도와 강원도 노선을 흡수되면서 점차 승객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다가 2019년 시작된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고, 최근에는 하루 평균 이용객 수가 20명을 밑돌 정도로 운영난에 시달렸다.
필자는 1985년 논산훈련소에서 4주간의 훈련을 받고 강원도 102보충대로 옮기는 사이 ‘소양강 처녀’한 노래를 불렀다. 보병 12사단에 배치된 후엔 ‘원통 블루스’란 노래를 부르다가 상봉터미널을 반드시 지나야 했다. 무수히 많은 전북 지역의 청년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상봉터미널을 거점으로 양구, 인제 등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한 만큼 감회가 새롭다. 시장이 요즘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며 붐비기 시작했다. 초대박을 터뜨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 게임’의 영향이다. 주인공 ‘지훈’에게 운수 좋은 날이었던 경마장 장면은 ‘상봉터미널’에서 촬영했다. 1980~1990년대 전방 군 장병과 면회 가던 가족들에게 추억의 장소였던 이곳은 그간 강원과 경기 북부 지역의 시외버스와 중부 이남 지역 고속버스의 기·종점 역할을 했다. 특히 군부대가 몰려있는 전방 지역 군인들이 휴가를 나갈 때나 부대에 복귀할 때 이 곳을 많이 이용해, 군인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노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건물도 낡아 재개발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중랑구 상봉동(上鳳洞)은 조선시대부터 유래하는 상리, 봉황동 등의 자연부락을 통합하여 상리의 ‘상’자와 봉황동 등의 ‘봉’자를 따서 상봉리라고 붙인데서 연유하고 이 지역은 중앙선 철도와 망우로가 동서로 관통하고 동2로가 남북으로 지나고 있으므로 교통의 요지다. 1980년대 초까지 택시 합승은 흔한 일상이었다. 시민들도 대중교통의 당연한 형태로 받아들였다. 5명이 탈 수 있는 택시가 손님 한명만 태우고 운행하는 것이 낭비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서울에서 지역으로 오는 택시는, 손님 1명이 타는 경우가 드물었다. 상봉동과 동서울터미널에는 4명을 채울 때까지 손님을 기다리기 일쑤였다. 시외버스가 끊긴 늦은 시간엔 궁여지책으로 귀가하는 방법이었다. 요금을 분담해 지방까지 장거리로 이동하는 비용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군인들의 추억은 뒤로한 채 상봉터미널은 2000년대 들어 이용객이 빠른 속도로 감소했다. 상봉터미널 자리에는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고, 상봉터미널은 이 건물 아래 일부를 이용하는 '초미니 터미널'로 명맥만 이어가게 됐다. 세월이 변하는데 따라가야지 어쩌겠느냐면서도 삶과 추억이 담긴 건물이 사라지니 아쉽긴 하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