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고장

치산가

이종근의 행복산책 2023. 11. 22. 08:17

치산가

치산가는 부녀자를 가르치기 위한 계녀가류(誡女歌類)의 가사로서 주로 재산을 늘려 집안을 일으키는 것을 내용으로 한 작품이다. 이 가사는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여 노래한 망부가나 명당을 찾아 산천을 답사하면서 쓴 답산가와 마찬가지로 재산을 잘 다스려 집안을 일으키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가사라는 뜻을 지닌 치산가(治産歌)이다.

이 작품은 오래전에 필자가 이 고장 전주의 한 고서화점에서 발견한 것으로 ‘신유년 정월 팔일 효심곡 열녀전합부’라 병기하고 한글로 〈열녀젼이라〉고 표제한 것 중의 일부이다. 창작시기는 치산가의 결구 뒤에 ‘임슐년 졍월 쵸파일 치산가디노라’로 보아 임술년 1월 8일인 것은 분명하나, 임술년의 간지가 어느 해인지 분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사상적 배경으로 보면 이용후생과 실사구시의 실학이 성행했던 조선 정조대 이후로 추정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순조 2년 1802년이 임술년이고, 철종 13년인 1862년이 임술년인데, 사용된 국어법이나 종이의 지질, 또는 사상적 배경 등으로 보면 1862년 정월 팔일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그리고 ‘치산가’ 라 표제한 뒤 32×21cm의 크기로 한지를 접어 궁체흘림붓글씨체로 14장 28쪽으로 쓴 252행 501구의 장형가사작품과 ‘겁젼이라’ 한 산문체의 한글소설이 18장 36쪽으로 병합된 수제본이다. 
끝에는 ‘고창군 대산면 성남이 成소저시라’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성소저(成小姐)는 이 작품을 필사한 사람으로 추정된 여성이다. 이외에 ‘기묘 8월 득용기(得用記)’라고 한 동명이작의 치산가가 〈별회심곡〉과 합본된 작품이 또 있으나 취급하지 않고 이 치산가만을 소개하려 한다.

작품 내용으로 보면 안빈낙도하는 도학자풍과는 달리 치산을 잘 해야만 집안이 풍족해지고 자식도 잘 가르쳐서 번성할 수 있다는 근세 실학적 물질사상이 근간을 이루는 특성을 지닌다. 그것도 조선조를 주도해 왔던 남성적 언어가 아니라, 규중여인네의 목소리였다는데 주목하고 싶다.

 대개 계녀가란 근검절약하여 가산을 잘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치산의 개념으로 하고 있지만, 이 치산가는 그러한 소극적 차원에서 벗어나 치산의 구체적이고도 실천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어서 다른 계녀가사와 다른 특성을 보인다. 그러므로 〈홍규권장가〉, 〈상사별곡〉과 더불어 영성한 호남지방의 규방가사 가운데 질량을 더해줄 귀중한 자료인 셈이다.

이 치산가는 서사, 화동생지친(和同生至親), 사구고(事舅姑), 행신(行身), 접빈객(接賓客), 봉제사(奉祭祀), 치산, 태교, 육아, 장원급제 및 도문(到門), 진심갈충(盡心竭忠), 결사로 구성되어 있는 영남의 일반적인 계녀가류와는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 치산가의 결언 가운데는 ‘유전(有錢)이면 가사귀(家事貴)’라 하여 치산을 잘해야만 자식의 권학에 힘쓸 수 있고, 이후에 온갖 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진보적인 자본주의의 물질관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지간 만물중의 신령(神靈)한 게 사람이라

얼굴로 이른 것과 행실로 이름이라

신체발부 이내몸은 부모님께 받아있다


효도로 지애(至愛)하고 지성으로 봉양하소

가막 까치 저 짐승도 반포(反哺)할 줄 능히 아네

하물며 사람이야 부모봉양 섬서하랴

부모은덕 논란하면 태산이 가벼우니

정성 충양 극기하나 반분인들 갚을소냐

귀하도다 우리형제 부모정기 함께 받아

형수 동기 형제간의 우애화목 아니하랴

(중략)

행동거지 조심하고 언어수족 삼가하소

과년(過年)에 출가하기여자의 예사로다

이친출가(離親出嫁) 무삼인고 삼종(三從)이 지중하다

 천지간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한 게 사람이라고 시작하는 것은 규방가사의 일반적 형식에 맞춘 것으로 유교적 윤리의 전범에 의거하였다. 〈훈계가〉의 ‘천생만물 하올적에 유인이 최귀로다’도 유교적 윤리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소학의 ‘천지지간 만물지중 유인최귀(天地之間 萬物之衆 唯人最貴)’를 그대로 용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것은 ‘신체발부 이내몸은 부모님께 받아있다.’(身體髮膚 受之父母)라든가 ‘까막까치 저 짐승도 반포할 줄 능히 아네’등이 모두 논어, 맹자, 소학, 대학 등의 유교전서에 전거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이런 바탕 위에 송나라 때의 ‘주자가훈’이나 주천구가 찬한 ‘여범(女範)’이 근간이 된 인효문황후(AD 1407년)의 ‘내훈(內訓)’ 등은 조선조 규방가사의 전범이 되었다. 내훈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보다 70년이 지난 조선 성종비인 소혜왕후가 쓴 게 있지만 목록은 비슷하나 내용은 서로 다르다.

 명 나라의 내훈은 영조 12년(1736년)에 이덕수가 ‘여사서(女四書)’의 권2에 전문을 수록하여 놓았는데 그 목록들은 유교전서 외에도 주자가훈이나 여범(女範), 내훈(內訓), 여사서, 여훈(女訓) 등에 들어있는 덕목으로 여자로서 말을 삼가하는 일, 덕성을 기르는 일, 부지런함, 남편을 모시는 일, 형제간의 우애와 친척간의 화목을 도모하는 일 등 20덕목을 구체화하여 진술되고 있다. 천지간 만물 중에 인간만이 가장 신령스럽고 귀중한 존재이며, 사람의 신체발부는 부모께 받은 것이므로 부모께 지성으로 효도하여 봉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새끼들은 어미가 물어다 준 먹이를 먹고 자라지만, 성장한 뒤에는 어미를 되먹여 살린다는 반포조(反哺鳥)인 까마귀를 용사(用事)하여 때론 인간이 미물인 까마귀만도 못하다는 것을 대조적으로 강조하였다. 부모정기를 함께 받아 태어난 형제간에는 우애하며 화목해야 하고 출가하면 후회하지 않도록 규중범절을 익히면서 침선(針線)과 주조(酒造)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언어와 수족을 삼가 해야 한다고도 하였다. 특히 언문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보더라도 언문은 학문이라기보다 규중여자들의 필수적 수신과목이었음을 알만하다.

 여자가 과년하면 의당 출가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나 부모 곁을 떠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를 확인해 보지만 여자는 삼종(三從)의 질곡이 운명이라고 체념을 하기도 한다. 삼종의 의미를 일일이 설명하고 삼강오륜의 뜻을 알고 몸소 실행을 한다면 여자의 행실은 자연 아름다워진다고 호소하고 있다. 삼강 중에서 임금이 신하의 벼리가 되어야 한다는 강상은 지적함이 없이 자식의 벼리는 아버지인 것이며 부처(夫妻)의 벼리는 가장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오륜은 부부간에 친애하고 임금과 신하간에는 충의가 있어야 하며, 부자간에는 분별이 있어야 하고 어른과 소년간에는 차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도 삼강에서 군신간의 벼리가 빠진 것처럼 오륜에서도 벗들 간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덕목이 결여되어 있다.

 출가하여 3일을 지낸 뒤에는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서 시부모에게 공양을 잘 해야 하는데, 시부모께 효양을 잘 하면 세상 여자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효부가 되고 또 가장을 공경하면 세상에서 범상치 않은 열녀가 된다고 하였다. 시부모는 남편의 부모이자 곧 나의 부모가 되기 때문에 어육과 떡, 과실을 얻게 되면 먼저 부모에게 받들어 모셔야 한다고 예거하고 있다. 벗들 간에는 신의가 첫째요, 일가친척 간에는 화목해야 하며 슬하의 노복(奴僕)들은 나의 손발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체하(逮下)’의 도리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 옛날 당나라의 장공예(張公藝- 원문에는 종공예로 잘못 기록됨)는 9대에 걸쳐 집안 화목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들어 용사하면서 구세동거(九世同居)의 중요한 요인이 참는 일이며, 따라서 백인지당(百忍之堂)의 집안이면 반드시 화목이 이루어진다고도 하였다.

전일환 교수의 한국문학의 원천, 전북문학의 미학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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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산하라 이른 말이 우선농사 힘을 쓰소

산상육등 박토라도 거름하면 곡식되리

옛 사람은 전하되 농불실시(農不失時) 일렀도다

상평전(上坪田)에 하평전에 농사하기 재미내소
(중략)
우마계(牛馬鷄)돝 양식동물 암 짐승을 가려두소

육축짐승 잘되기는 사람에게 있나니라

온갖 채소 잘 가꾸어 삼시반찬 장만하여서라

좋은 반찬 곁에 두고 값진 고기 사지마소
(중략)
송죽(松竹)이라 하는 것은 여염가에 허다 있어

쓰고 남은 송죽베어 팔아다가 전답사소

밭을 사고 논을 사면 가세(家勢) 자연 요부(饒富)하리

앞에 노적 뒤에 노적 석숭왕가 가소(可笑)로다

치산가의 주제인 살림살이와 가난퇴치의 방법이 구체적으로 서술된 단락이며, 재산을 늘려야만 집안이 번성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적 물질철학이 두드러진 부분이다. 이는 아마도 실학정신이 들어온 정조대 이후 조선조 말엽의 사회의식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가난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다. 길고 긴 봄날 하루를 죽 한 사발로 연명하고, 아들 손자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동네를 돌면서 걸식(乞食)하는 일이란 부모로서 참을 수 없는 처절한 절망이다. 걸식하는 아이들이 밥은커녕 오히려 매를 맞고 돌아오는 상황이라든지, 우는 아이 달래려고 밥이나 고기를 주겠다고 속임수를 써서 부모가 거짓말로 울음을 달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의 극한상황이다.

‘매터를 만지면서 매 맞으면 쉬 큰단다/ 우지마라 지발 덕분 우지마라/ 밥을 주마 우지마라 고기주마 우지마라’는 극단적인 가난의 고통을 표현하는 패러그랩이다. 부모 자신의 고통쯤이야 스스로 견뎌낼 수 있지만, 분신같은 자식의 고통과 쓰라림은 참고 견딜 수 없는 게 이 세상 부모들의 공통된 심정이다. 오죽했으면 밥을 주고 고기를 줄 테니 우지마라라고 거짓으로 달래었을까 말이다. 이런 처절한 고통은 치산(治産)하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고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치산의 방법을 구체화한다.

첫째, 제초와 시비로 농사에 힘을 기울이면 산상 육등부의 박토(薄土)일망정 수확이 가능하고, 특히 농사란 절대 때를 놓치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윗뜰의 상평전이나 아랫뜰의 하평전이라도 농사하기에 재미를 붙이고, 모맥과 서숙, 두태(豆太)밭에도 제초하기를 힘쓴다면 가을 수확은 ‘양양만가(揚揚滿家)’일 것이니 이 아니 좋은 일인가라고 서술하고 있다.

둘째, 농사일뿐 만이 아니라 양잠과 길쌈에도 힘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봄, 여름 두 계절에는 마포(麻布)와 저포(紵布)를 힘써 낫고, 석 달 농사가 양잠이므로 누에치기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衣食)이 일체이니 농사만이 아니라, 의복에도 힘을 써서 거느리고 있는 종에게도 옷을 만들어 입힌 후에 남은 것은 내다 팔면 그것 또한 재물이 된다는 것이다. 재물이 많아지면 자연히 귀한 손님도 많이 드나들게 되고 판서자제, 참판, 수령방백들도 모여드는 법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치산가는 재물이 있어야만 집안이 흥성할 수 있다는 생각 끝에 적극적으로 치산에 힘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교술(敎述)적인 가사이다.

셋째, 소나 말, 닭과 돼지 등은 암컷을 잘 가려둬서 번식시켜야 재물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짐승들은 사람이 어떻게 양축(養畜)하는가에 달려 있는 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넷째, 채소를 잘 가꾸어서 반찬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는 순연히 자급자족의 방식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과정 중에 남은 것은 내다 팔아 재물로 만든다는 것이 주된 치산의 방편이다. 채소와 같은 좋은 반찬을 놓아두고 값진 고기를 사지 말 것이며, 삼시 세 때 정성으로 반찬을 마련하되 쓰지도 맵지도 않게 알맞게 장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음식이란 그 집안의 흥망성쇠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고 경계하는 것도 주목된다.

다섯째, 청결과 불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고 나면 뜰을 쓸고 상 밑과 그릇까지 정성스럽게 닦아 청결을 유지하여 가정의 건강을 돌봐야 하며, 부엌에서 불조심을 게을리 하여 화재를 만난다면 모든 게 헛수고가 된다고 경고를 하고 있다.

여섯째, 송죽의 임산관리로 재물을 늘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송죽이라는 것은 여염가에 흔히 있는 것이므로 쓰고 남은 것들을 베어서 장에 내다팔아 논과 밭을 사게 되면 가세가 자연 요부(饒富)하게 된다는 것이다. 양반가에는 울창한 산이 많으므로 나무를 베어내어 팔아다가 전답을 사서 농사를 짓게 되면 앞뜰과 뒤뜰에 노적가리가 가득하여 진나라 때 부호인 석숭(石崇)이가 부럽지 않다는 용사(用事)까지 하고 있다.

이렇듯 치산가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역시 치산의 방법이다. 일반 규방가사에선 이 치산조가 얼마 되지 않지만 이 작품은 47행 96구로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개의 내훈조의 규방가사들은 근려(勤勵)와 절검의 덕목으로 입치레 곧 군음식금지, 몸치레의 의복치레금지, 헌옷 기워 입기, 잡음식도 버리지 말 것과 집안 청소, 기명(器皿)간수를 잘하여 그릇이 깨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 등으로 되어 있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치산가는 그 보다도 재산관리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는데 그 특성이 있다.

옛적의 해임태사 임태(姙胎)하여 태교 하네
태교란 뜻 들어 보소 낳기 전에 가르치소
궂은 빛과 음탕소리 보고 듣지 아니 하네
이렇듯 십삭만에 탄생하매 옥동자라

(중략)
어진 스승 맞아다가 글공부를 가르치소
사서삼경 백가어를 무불통리(無不通理) 가르치소
근본재주 있는 고로 수용산출(受容算出) 기지로다
문장탁월 무슨 일고 태교 덕이로다

태교는 여훈(女訓) 속에 ‘임자(妊子)’로 나와 있는데 특히 소학 ‘성학십도(聖學十圖)’ 입교편의 입태육보양지교(立胎育保養之敎)조를 근저로 하고 있다. 치산가의 ‘궂은 빛과 음탕소리 보고 듣지 아니 하네’는 소학 권1 ‘입교’편의 ‘목불시사색 이불청음성(目不視邪色 耳不聽淫聲)’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다른 규방가사의 경우도 소학의 입교편을 국문으로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말할 정도로 너무 혹사하다. 자식을 가르치는 것도 소학의 맹모삼천지교의 전범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맹자의 어머님은 세 번 옮겨 가르칠 제/ 처음으로는 장가이요 두 번째는 묏가이요/ 세 번째는 학당이라’는 여느 규방가사와 같이 소학 권4 계고(稽古)조를 그대로 용사한 것에 불과하다. ‘어진스승 찾아 가르치니 천고의 맹자로다’는 성학십도의 입교 가운데 ‘입사제수수지교(立師弟授受之敎)’로 ‘어진 스승 맞아다가 글공부를 가르치소’에 그대로 연결된다.

 치산가가 아니더라도 집안을 잘 다스려서 부자로 만들고 자식을 잘 기르고 가르쳐서 과거에 급제하고 영달(榮達)하게 되는 것은 규방가사의 일반적 내용이며, 이 또한 여인네들의 한결같은 꿈이요, 소망이었다.

그러므로 과거는 거의 모두가 장원급제로 과장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조선조 여인들의 열정적인 치산과 교육력에 의해 자식들이 잘 가르쳐지고 길러져서 가정이 번창을 하였고, 나라가 잘 지켜져서 오늘의 부강한 국가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