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의 '전라감영과 전북 ‘와유(臥游)’'
들어가는 말
예나 지금이나 산수화와 유람기에는 ‘와유(臥遊)’라는 제목을 쓴 것이 적지 않다.
처음 이를 접한 사람들은 ‘누워서 노닌다’는 뜻을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이 말에는 그럴만한 함축적 의미가 도사리고 있다.
고려시대 이규보는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라는 기행문을 쓴 바 있다.
1199년 전주목(全州牧)의 사록겸(司錄兼) 장서기(掌書記)로 온 그는 전주 등 전북 곳곳을 여행하며 접한 특이한 견문거리를 시와 산문으로 기록하여 두었다가 노년이 되면 젊어서 견문한 기록을 펼쳐보고 그 답답함을 풀겠노라고 했다.
조선 중기 이후 산수유람의 기회와 기록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 고경명의 ‘유서석록’, 홍백창의 ‘동유기실’은 하나의 산을 유람한 기록이 단행본으로 편집돼 널리 읽혔고, 홍인우의 ‘관동일록’, 성해응의 ‘동국명산기’ 등은 여러 산의 유래와 명승에 관한 인문 지리서 성격까지 지니게 됐다.
‘내 발자취가 미친 모든 곳의 높낮이를 차례로 매겨본다면 두류산이 우리나라 제일의 산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만일 인간 세상의 영화를 다 마다하고 영영 떠나서 돌아오지 않으려고 한다면 오직 이 두류산만이 은거하기에 좋을 것이다. 이제 돈과 곡식과 갑옷과 무기와 같은 세상 것들에 대해 깊이 알아 가는 것은 머리 허연 이 서생이 다룰 바는 아니리라’
유몽인의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은 그가 관직을 사임하고 남원의 수령으로 내려가 있던 1611년 봄 두류산을 유람하고서 쓴 기행문이다.
이는 지리산을 말하며, 두류산의 의미는 ‘백두대간[頭]이 흘러왔다[流]’라는 의미이다. 유몽인은 두류산 곳곳의 경물을 눈에 보듯 실감나게 묘사했으며, 천왕봉에 올랐을 때는 그곳 매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동정하기도 하여 치자로서 백성의 고통을 느껴 보고자 하는 마음도 드러나 있다.
임훈은 1552년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을 남겼으며, 김창협의 ‘동유기’를 보면
'덕유산 멀리로, 진안의 중대산, 금구의 내장산, 부안의 변산, 전주의 어이산, 임피의 오성산, 함열의 함열산, 용담의 주줄산(운장산)이 그 서쪽을 둘렀고, 용담의 기산은 주줄산 안에 있다. 고산의 대둔산은 북쪽에 비껴있다’
고 했다.
심광세 '유변산록(遊邊山錄)’이 변산 유산록으로는 최초의 기록라고 한다.
부안현감으로 부임(1607년)한 지 넉 달 만인 5월에 바쁜 일정 중 시간을 내어 변산을 유람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그렸다 두루마리 화첩은 지금 전하지 않는다.
강흔의 '부안 격포행궁기'와 '하설루기'는 아직 한문 번역이 전혀 안돼 있다. 이번에 처음으로 번역해 소개한다.
전라감영을 찾은 프크와 카르네프, 이하곤 등이 있어 제목에 이를 달았다.
4부 각 부마다 시대는 고려때부터,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로 이어진다. 지역은 전주로부터 시작해 익산, 남원, 고창, 부안 등을 둘러본다.
옛 사람의 글을 통해 갈 수 없는 아름다운 땅뿐만 아니라 개발 등을 통해 이미 사라져버린 산과 물까지 함께 즐겨 보는 건 어떠한가? ‘와유’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현대에도 되살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전북을 소재로 한 ‘와유(臥遊)’ 책자 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두가 전북으로 오라. 지금부터 이종근이 여러분들을 ‘와유(臥遊)’의 세계로 초대한다.
전라감영과 전북 '와유(臥遊)' 목차
제1부 ‘의관 문물의 고장’ 전주
이규보의 '남행월일기'
서거정의 '패향십영(沛鄕十詠)’
구봉령의 ‘빈일헌십영차운(賓日軒十詠次韻)’
조수삼의 '전주8경’
민주현의 '완산가'
제2부 강후진, 7층의 미륵사지 석탑을 보다
양대박, 1586년 지리산을 유람하다
강후진, 1738년 미륵사지 석탑을 보다
강흔의 ‘부안 격포행궁기’와 ‘하설루기’
강세황의 '격포유람기'와 '유우금암기’
마쓰다 고조, 1888년 전북 방문
야나기 무네요시, 전북의 특산품에 반하다
제3부 외국인들이 찾은 전라감영
임훈의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
이하곤이 1722년에 본 전라감영과 경기전
포크, 대동여지도 들고 전라감영을 방문하다
카르네프 등이 1896년 전북을 찾다
'심춘순례'와 전북
제4부 신선도 부럽지 않는 변산과 지리산
심광세의 '유변산록(遊邊山錄)’
유몽인, 1611년 지리산을 찾다
조위한의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
김서경의 ‘송사상유변산서(宋士祥遊邊山序)’
소승규의 '유봉래산일기'
이 종 근 편저
이종근
'한국의 옛집과 꽃담' 등 41권의 책을 펴냈다. 2023 전주시민대상 문화예술장 심사위원장, 전주문화원 연구위원, 전주시 윤슬 연구 및 집필위원, 전북수필문학회 이사, 한국서예교류협회 홍보 및 기획 이사, 현재 새전북신문 편집부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들어가는 말
예나 지금이나 산수화와 유람기에는 ‘와유(臥遊)’라는 제목을 쓴 것이 적지 않다.
처음 이를 접한 사람들은 ‘누워서 노닌다’는 뜻을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이 말에는 그럴만한 함축적 의미가 도사리고 있다.
고려시대 이규보는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라는 기행문을 쓴 바 있다.
1199년 전주목(全州牧)의 사록겸(司錄兼) 장서기(掌書記)로 온 그는 전주 등 전북 곳곳을 여행하며 접한 특이한 견문거리를 시와 산문으로 기록하여 두었다가 노년이 되면 젊어서 견문한 기록을 펼쳐보고 그 답답함을 풀겠노라고 했다.
조선 중기 이후 산수유람의 기회와 기록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 고경명의 ‘유서석록’, 홍백창의 ‘동유기실’은 하나의 산을 유람한 기록이 단행본으로 편집돼 널리 읽혔고, 홍인우의 ‘관동일록’, 성해응의 ‘동국명산기’ 등은 여러 산의 유래와 명승에 관한 인문 지리서 성격까지 지니게 됐다.
‘내 발자취가 미친 모든 곳의 높낮이를 차례로 매겨본다면 두류산이 우리나라 제일의 산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만일 인간 세상의 영화를 다 마다하고 영영 떠나서 돌아오지 않으려고 한다면 오직 이 두류산만이 은거하기에 좋을 것이다. 이제 돈과 곡식과 갑옷과 무기와 같은 세상 것들에 대해 깊이 알아 가는 것은 머리 허연 이 서생이 다룰 바는 아니리라’
유몽인의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은 그가 관직을 사임하고 남원의 수령으로 내려가 있던 1611년 봄 두류산을 유람하고서 쓴 기행문이다.
이는 지리산을 말하며, 두류산의 의미는 ‘백두대간[頭]이 흘러왔다[流]’라는 의미이다. 유몽인은 두류산 곳곳의 경물을 눈에 보듯 실감나게 묘사했으며, 천왕봉에 올랐을 때는 그곳 매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동정하기도 하여 치자로서 백성의 고통을 느껴 보고자 하는 마음도 드러나 있다.
임훈은 1552년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을 남겼으며, 김창협의 ‘동유기’를 보면
'덕유산 멀리로, 진안의 중대산, 금구의 내장산, 부안의 변산, 전주의 어이산, 임피의 오성산, 함열의 함열산, 용담의 주줄산(운장산)이 그 서쪽을 둘렀고, 용담의 기산은 주줄산 안에 있다. 고산의 대둔산은 북쪽에 비껴있다’
고 했다.
심광세 '유변산록(遊邊山錄)’이 변산 유산록으로는 최초의 기록라고 한다.
부안현감으로 부임(1607년)한 지 넉 달 만인 5월에 바쁜 일정 중 시간을 내어 변산을 유람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그렸다 두루마리 화첩은 지금 전하지 않는다.
강흔의 '부안 격포행궁기'와 '하설루기'는 아직 한문 번역이 전혀 안돼 있다. 이번에 처음으로 번역해 소개한다.
전라감영을 찾은 프크와 카르네프, 이하곤 등이 있어 제목에 이를 달았다.
4부 각 부마다 시대는 고려때부터,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로 이어진다. 지역은 전주로부터 시작해 익산, 남원, 고창, 부안 등을 둘러본다.
옛 사람의 글을 통해 갈 수 없는 아름다운 땅뿐만 아니라 개발 등을 통해 이미 사라져버린 산과 물까지 함께 즐겨 보는 건 어떠한가? ‘와유’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현대에도 되살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전북을 소재로 한 ‘와유(臥遊)’ 책자 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두가 전북으로 오라. 지금부터 이종근이 여러분들을 ‘와유(臥遊)’의 세계로 초대한다.
전라감영과 전북 '와유(臥遊)'
제1부 ‘의관 문물의 고장’ 전주
이규보의 '남행월일기'
서거정의 '패향십영(沛鄕十詠)’
구봉령의 ‘빈일헌십영차운(賓日軒十詠次韻)’
조수삼의 '전주8경’
민주현의 '완산가'
제2부 강후진, 7층의 미륵사지 석탑을 보다
양대박, 1586년 지리산을 유람하다
강후진, 1738년 미륵사지 석탑을 보다
강흔의 ‘부안 격포행궁기’와 ‘하설루기’
강세황의 '격포유람기'와 '유우금암기’
마쓰다 고조, 1888년 전북 방문
야나기 무네요시, 전북의 특산품에 반하다
제3부 외국인들이 찾은 전라감영
임훈의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
이하곤이 1722년에 본 전라감영과 경기전
포크, 대동여지도 들고 전라감영을 방문하다
카르네프 등이 1896년 전북을 찾다
'심춘순례'와 전북
제4부 신선도 부럽지 않는 변산과 지리산
심광세의 '유변산록(遊邊山錄)’
유몽인, 1611년 지리산을 찾다
조위한의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
김서경의 ‘송사상유변산서(宋士祥遊邊山序)’
소승규의 '유봉래산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