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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이상의 노인에게 꿩 한 마리와 단자(單子)를 같이 전하라’ 국립민속박물관 ‘민속학연구’ 제52호에 김종수, ‘연재 송병선의 임피향약 연구’통해 ‘입약절목’은 강한 도덕적 지향..

이종근의 행복산책 2023. 7. 18. 13:54

한국 전통 활·화살·마을공동체 등의 가치와 특성을 담은 학술지가 발간됐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이 같은 주제의 연구논문이 포함된 ‘민속학연구’ 제52호를 최근 펴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호에는 연희, 신앙, 도시 민속, 의례, 인류, 역사(2편) 등을 다룬 논문 7편이 실렸다.
김종수 세명대학교 교양학부 강사는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임피향약(臨陂鄕約) 연구’를 통해 ‘입약절목’은 강한 도덕적 지향성을 기조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편집자

우암 송시열의 9세손으로 조선후기 활동기로 삼았던 연재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은 아우인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 1839~1912)과 함께 연재학파를 창시하여 공유했던 거유(巨儒)이자 우국지사다. 송병선은 학문 연찬과 저술·강학 활동을 통해서 세도(世道)를 부지(扶持)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전개하였던 인물이다. 그러다가 1905년에 강행된 을사늑약에 항거해 고종(高宗)과 대면한 직후에 순도(殉道)를 단행함으로써, 향년 7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우암 송시열의 9세손으로 조선 최후기에 활동했던 연재 송병선은, 아우인 심석재 송병순과 함께 연재학파를 창시·공유했던 거유이자 애국지사다. 송병선은 1905년에 강행된 을사늑약에 항거해 음독 자진을 시도함으로써, 7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송병선이 57세 때 기획한 ‘임피향약’과 그 매뉴얼인 ‘입약절목’을 분석함으로써, 논의의 지평을 보다 다각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송병선이 지금의 군산시에 통합된 임피현에서 향약을 전개한 이면에는 부모님의 산소를 이곳으로 이장하고, 수시로 성묘에 나섰던 인연과 직결되어 있다.
그러던 차에 송병선은 1892년에 이르러 임피향약을 구상하게 되었고, 이에 ‘입약절목’, ‘약속’으로 이뤄진 서안(書案)을 입안하기에 이른다. 특히 전래의 선행 사례들을 두루 참조한 끝에, 입안한 ‘입약절목’에는 강한 도덕적 지향성을 기조로 하는 가운데, 12부류로 세분화시킨 직임 구성이 중요한 특징을 형성하고 있다.
전형적인 면·리 향약을 대변해 주는 임피향약의 경우, 선적·악적과 연계된 엄격한 상벌 체계에는 관치(官治)를 전제한 가운데 적용되는 ‘출약·출경·형배’ 및 ‘태형·속형·면책’ 등과 같은 엄벌책이 자주 등장하는 특징도 발견된다. 한편 송병선은 훈회가 주도하는 강학 활동을 병행할 것을 명시하면서 학습의 결과에 따른 상벌 체계를 적용하기도 했던바, 이러한 정황은 송병선의 교육자적인 면모를 방증해 준다. 이른바 ‘사서(士庶) 병존(竝存)’의 원칙을 수용한 임피향약은 강한 명분 의식에 기초하고 있는 반면에, 환난상휼과 유관한 절목은 다소 소략한 편이다. 또한 ‘여씨향약’에서 제시한 네 강령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세부적 절목들 간의 정합적인 배치를 고려하지 않는 점도 부수적인 특징을 형성하고 있다.
송병선이 구상한 임피향약 경우, 자신이 태어나고 활동했던 호서권의 회덕현(懷德縣)이나 옥천(沃川)·영동(永同) 등지가 아닌, 하필 호남의 서북권인 임피 지역에서 향약을 시행했던 이유에 대한 해명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이 사안과 관련하여 ‘연보(年譜)’를 지은 아들인 지재(止霽) 송철헌(宋哲憲, 1869~1924)은 ‘임피향약’의 제주(題註)를 빌려서 아래처럼 간략한 부연 설명을 가해 두었음이 주목된다.
‘임피는 선생의 친묘(親墓)가 소재한 향읍[鄕]인데, 고을 사람들이 향약을 시행할 것을 청했던 까닭에, 선생이 이 조약(條約)을 입안하신 것이다’
윗글에는 송병선이 지금의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에 양친의 묘소를 마련했던 정황과 더불어, 그가 임피향약을 시행하기 위해 ’입약절목‘을 입안한 경위가 간략하게 드러나 있다. 일찍이 송병선은 11세 때 모친상을 당했고, 그로부터 9년 뒤인 1855년(20세)에는 부친상을 감당했던 터라) 부모님과 오랜 인연을 이어가지 못한 한스러운 소회를 평생 간직하게 된다. 애초 완산이씨(完山李氏) 모친과 부친 참판공의 묘소는 각기 회덕현 남쪽의 용두리(龍頭里)와 초동(草洞)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56세가 되던 해인 1891년에 이르러 “모부인 이씨의 면례(緬禮)를 임피(臨陂)의 축성산(祝聖山)에서 행했다”는 ’연보‘의 기록대로 임피에 모친의 묘소를 이장(移葬)하게 되었던 것이다.
송병선이 모친의 묘소를 이장한 이듬해인 1892년에 임피향약을 시행하기 위한 방편상, ’입약절목‘을 입안한 사실은 앞에서 논급한 바와 같다. 그런데 송병선이 임피현(臨陂縣)에 향약을 시행하게 된 이면에는, 그가 이곳을 드나들면서 관찰한 향풍(鄕風)에 대한 진단이 일차적 요인으로 작용한 결과였음을 아래의 ’임피향약서(臨陂鄕約序)‘는 확인시켜 주고 있다.

“임영(臨瀛)[임피]은 바다와 가까운 현(縣)으로, 향속[俗]이 재화·이익을 숭상하기에, 순후하고 근실한 풍속이 적게 남아있다. 나는 분묘(墳墓)의 향읍을 오가면서 가만히 마음속으로 탄식하면서 이르기를, ‘사람의 마음이란 흡사 여울물과도 같아서, 동으로 트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로 트면 서쪽으로 흐르니, 풍속(風俗)을 더 낫게 고치는 일이란, 오직 인도하여 통솔함이 어떠한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대개 주부자(朱夫子)가 진(秦)의 향속을 논한 것을 살펴보면, 또한 증험할 수 있다”

위의 인용문에는 임피현의 풍속에 대한 진단과 함께, 순근(醇謹)한 풍속으로 계도하고자 했던 송병선의 의지가 차례대로 드러나 있다.
송병선이 기획한 ‘임피향약’의 경우, 외형상으로는 모두 21개 조목으로 이뤄진 ‘입약절목’과 말미의 ‘약속’ 두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즉, 구성체계가 상당히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특징이 있다. 먼저 후자인 ‘약속’이란, 1577년에 이이(1536~1584)가 해주의 석담(石潭)에서 선보인 ‘사창계약속(社倉契約束)’ 및 ‘해주일향약속(海州一鄕約束)’을 차용한 조어로 보인다. 물론 율곡이 사용한 ‘약속’은 ‘주자증손여씨향약문’에서 이미 선보인 단어다, 여하간 송병선은 이 ‘약속’을 통해 ‘여씨향약’에서 제시한 네 강목인 ‘덕업상권(德業相勸)·과실상규(過失相規)·예속상교(禮俗相交)·환난상휼(患難相恤)’을 차례대로 나열한 뒤에 ‘덕업·과실·예속·환난’에 해당하는 사례들을 소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네 강목에 대한 개념 정의가 이뤄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약속’의 말미 부위에서 “우리 동약(同約)의 구성원[人]들이 서로 타이르고 훈계하여, 혹여 절대 허물을 짓거나 나태하지 말아서, 영구히 그대로 쫓아서 행할 것을” 거듭 당부하는 말로 마무리하고 있다. 한편 전자인 ‘입약절목’은 다시 세부적으로 절목의 유래를 거론한 제1조에서 시작해서, 직임(職任)의 구성과 그 역할을 규정한 전반부[2~5조], 선(善)·악(惡) 양적(兩籍)과 처리 방침을 밝힌 대목[6·8·9조], ‘강신(講信)’으로 칭한 춘추 회집(會集) 시의 독약례(讀約禮) 의식에 관한 규정[7조], 그리고 네 강목을 실현하기 위한 범례(凡例)에 해당하는 부분[10~18조]과 각기 상·중·하 세 단계로 세분화시킨 상벌(賞罰)에 관한 내용[19·20조] 등으로 이뤄진 체계를 취하고 있다.
‘입약절목’에는 약계 구성원들 간의 경조사(慶弔事)에 관한 지침과 함께 70세 이상의 노인에게 꿩 한 마리와 단자(單子)를 같이 전하는 연말의 세의(歲儀)에 관한 조항도 수록되어 있다. 세의의 대상에는 70세 이상의 하인도 포함을 시켰는데, 단자 없이 “고기 3근을 공급하도록” 명한 차이가 있다. 또한 혼기를 놓친 남녀에게 중매를 나서 “절대 인륜[倫]을 폐함에 이르지 않도록” 주문해 두었다. 이는 “남에게 무왕(誣枉)[모함]를 당했으나, 스스로 곧게 펼 수 없는 자는, 동약(同約)이 연명(連名)으로 (관에) 소장을 제출해서, 그를 위해 면죄[救解]되게끔 한다.”는 신구(伸救) 조목과 더불어, 여타 향약에서도 매우 중시했던 사안이다. 나아가 송병선은 극벌(極罰)에 처하도록 명시한 예안향약을 수용하여 “수절하는 과부를 유혹·협박해서 더럽히고 욕보이는 자는, 관청에 고발해서 형배(刑配)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이 경우에 한정된 ‘형배’는 ‘출약·출경’보다 더 엄중한 처벌로, 중벌책의 기조로 일관한 임피향약의 극점을 전시해 보인 장면이다.
이상의 절목들을 통해서 확인되듯, 임피향약은 율곡이 해주향약에서 ‘수화(水火)·도적(盜賊)· 질병(疾病)·사상(死喪)[상·장례]·고약(孤弱)[고아]·무왕(誣枉)[무고]·빈핍(貧乏)[궁핍]’의 순서로 적시한 환난상휼과 관련된 세목들이 소략한 편이다. 반면에 “명분(名分)을 엄히 정립, 소민이 사족을 능욕하거나, 연소자가 연장자·노인을 모멸하고 업신여기면, 약계 내[約中]에서 죄를 다스리되, 심한 것은 관청에 고발해서 출경(出境)토록 한다”는 제11조를 통해서도 거듭 재현되고 있는 바와 같이, 강한 명분의식의 기조하에 관치와 연계된 강경책의 제시라는 특징적 양상이 주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세부적인 절목의 차이는 있으나, 임피향약은 민관(民官)의 구분이라는 엄격한 명분의식에 기초한 가운데, 향풍과 사풍(士風)을 진작시키기 위한 향규의 성격이 강한 ‘예안향약’의 기저와 유사한 양상을 취하고 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