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돌담 전북으로 가나
제주 돌담을 부안에 만들기 위해 현무암 반출을 포함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도는 최근 제주자치도의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제주 돌담문화 활용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교류 방안이 논의됐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논의된 문화교류 방안에는 고려말 부안 출신으로 제주 판관을 역임한 '지포 김구'가 시행한 돌담문화의 활용이다.
제주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유산인 '돌담'은 지포 김구가 24세 때인 1234년(고종 21년)에 제주 판관으로 재직하면서 농경지 개척시 밭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정책에서 시작됐다. 이를 기념하는 후대의 평가는 제주시 삼양동에 있는 제주민속박물관의 '돌문화의 은인 판관 김구 선생 공적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와 함께 현재 애월읍 설촌마을에는 제주 특유의 현무암 돌담길이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다. 이에 전북과 제주는 '전북의 지포 김구와 제주의 돌담문화'를 활용한 문화교류를 계획했고, 전북 무안에 만들어지는 '전라유학진흥원' 일부 지역에 제주에서 반입한 현무암으로 돌담을 만들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현재 제주 현무암은 조례로 무단 반출이 금지돼 있지만, 향토문화 교류 차원에서는 허가가 날 수 있어 제주 현무암의 전북 반출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제주는 집의 담은 조금 높은 반면, 밭담은 밭을 쉽게 볼 수 있게 낮게 만들어져 있다. 아무리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이 돌담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제주도의 밭담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고종(高宗)(1192~1259) 때부터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밭담이 만들어진 것은 부안출신 제주 판관 김구(金坵, 1211-1278)가 지방의 사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토지 소유의 경계로 돌을 이용해 담을 쌓으면서부터다. 이름 속 구(坵)자는 흙토(土) 변에 언덕 구(丘)로 밭 위에 언덕, 밭담과 이어진다. 밭담 쌓기에 관해 문헌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234년 제주판관 김구가 농지와 관련한 재산권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 경계용 밭담을 쌓도록 지시했다고 적혀 있다. 농사를 짓기 위해 개간하는 과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돌들을 힘들여 멀리 운반하지 않고 자연스레 밭 주변에 쌓았을 거란 생각이다. 제주 밭담은 2013년 국가 중요 농어업유산으로 지정됐고, 2014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제주 밭담은 악조건의 제주 농업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제주만의 독특한 농업유산이다. 농업의 역사와 맥락을 함께해 온 제주 밭담은 전 세계의 농업유산으로 보전해야 할 가치가 있는 자원이다. 전라도 정명 당시 제주는 전라도 53개 군현 중 하나로 전북과 많은 역사문화적 교류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관계가 소원해졌다. 앞으로 이같은 역사적 사실과 콘텐츠를 발굴에 노력해야 한다.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