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연재물> [김스미의 미술산책] 3. 배운성의 ‘가족도’
<새전북신문 연재물> [김스미의 미술산책] <3> 배운성의 ‘가족도’
고향으로 가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이런 설 풍경은 동아시아 존재의 뿌리에 대한 인식의 문화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가르침 이전의 핏속에 흐르는 가족에 대한 끈끈한 디앤에이다. 가족은 외로움의 심연을 구원하는 선물 같은 숙명이다. 코로나에 겹친 불황의 터널도 뒤로 하고 우리는 가족이라는 따뜻한 품으로 티켓을 끊고 도로정체도 용서하고 새벽녘에 도착하겠지.
이 작품은 한 지붕 아래 모인 17명의 백인기 가족으로 추정되는 삼대를 그린 배운성(1900-1978)의 가족 초상화 ‘가족도’다. 한국 근대미술사에 미스터리한 명작을 남긴 배운성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조선인 최초 베를린 미술학교에 다니고 프랑스 화단에서 활동하였으나 6.25 전쟁 이후 월북으로 한국 미술사에서 사라졌던 천재다. 1999년 파리의 골동품상 창고에서 전창곤 씨가 48점을 발견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2013년에 당시 주거와 복식 등 사료적 가치가 인정되어 국가등록 문화재 제534호로 등록되었다. 집이 가난하여 백씨 가문에 서생으로 들어간 그가 주인집 아들 독일 유학길에 동승 하게 된 것이 화가의 길로 갈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인생은 거부할 수 없는 예정된 행로가 있는 것 같다.
배운성의 가족도는 20세기 초 조선 상류층 대가족의 모습이지만 어딘지 우울하고 경직된 모습이다. 아마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불안과 작가의 이데올로기가 작품으로 내면화되어 있는 듯하다. 커다란 대청마루가 있는 부잣집 한옥을 배경으로 노모와 주인 내외, 형제자매와 자식들 모습이다. 사랑채 안쪽의 블랙 배경의 남자는 돌아가신 이 댁 큰 어른으로 보인다. 왼쪽에 엉거주춤한 표정의 화가 자신도 그렸다.
유화 작품이지만 맑고 부드러운 담채화 같은 색채는 서양 원근법의 배경과 어우러져 낯설지 않고 편안하다. 날렵한 서양 개와 찻잔의 여유가 계급적 낭만으로 보였다면 지나친 시선일까? 한복의 완벽한 차림으로 냉정하고 침착하게 현실 대처를 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21세기를 사는 청년들은 결혼도 관심 없고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했던 세대와는 생각이 다르다. 정부는 부모 급여를 현금으로 지급하여 인구 감소의 리스크를 고민하고 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자식 낳고 기르는 부담이 크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1인도 가족이고 다양한 공동체도 가족이다. 함께 할 수 있으면 개체의 속성과 상관없이 가족이다.
부모노동의 대가로 얻어진 가정의 평화라는 책임 구조는 박물관 유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라는 근원적 문제와의 충돌이다.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가치들은 있다.
인생사 희로애락은 받아 놓은 밥상이다. 관대하고 섬세한 마음으로 진실을 찾아가는 인생 행로의 중심에 가족이 있다. 지지고 볶고 살아도 혼자 사는 팔자보다 가족이 있어 행복은 배가 된다.
세상살이에 깨져 아프고 시린 몸이 치유되는 것은 나를 믿어주는 가족의 따뜻한 정이다. 좌절이 실패가 아님을 알게 하고 실패한 인생이란 애당초 없는 것이며 살아가는 경험이라고 말해주는 것도 가족이다.
평범한 아버지의 삶이 어느 유명 시인의 완벽한 시구보다 진실했음을 알게 된 나이가 되니, 소중한 가족이란 원 팀의 밑동에 굵은 오라 같은 뿌리 깊은 역사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크고 작은 히스토리가 쌓이고 모여 문화가 된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K컬처의 바탕에는 한국의 가족이라는 강렬한 엔진 동력이 있다. /화가 김스미
△가족도, 1930년대, 캔버스에 유채, 140x200cm, 등록문화재 제534,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