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문단의 큰 별, 최승범시인 별세
전북 문단의 큰 별, 고하(古河) 최승범(崔勝範) 전북대 명예교수가 1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그는 전북의 정신적 어른의 역할을 충실하게 담당해오고 있는 가운데 선비정신의 줏대로 살아온 한국문학계의 산증인이다.
남원 출신인 그는 1931년 6월 24일 남원군에서 출생, 초등학교 입학 전 할아버지로부터 ‘추구’를 배웠고, 할머니로부터 고전 소설을 듣고 자랐다. 고모의 도움으로 남원농고에서 학업을 이어갔으며, 1949년 명륜대학(전북대 전신)에 입학했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전에서 복무한 후, 전북대에 복학, 가람 이병기선생을 모시고 학업에 열중했다. 1954년 전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전북대학교 상장 제1호로 총장상을 받았단다. 1953년 전북대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학부 때부터 기자로 일해온 대학신문사 편집주임을 맡았다.
신석정 시인의 맏사위이기도한 그는 “이제 전북을 위해 무엇을 한다기 보다는, 앞으로 후배 문인들에게 무엇인가를 물려줄 수 있는 자산을 생각할 때라고 본다”고 했다. 그의 호는 장인이 지어줬는데 감히 뜻과 이유를 물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강의 옛말 ‘가람’(스승)과 목가시인으로 ‘저녁 물가’를 뜻하며 ‘석정’(장인)을 아우르는 ‘고하’(古河)라고 추정할 뿐이라고 했다.
1957년 전북대 국문과 박사과정 입학과 아울러 전임촉탁강사로 발령받아 1996년 정년하기까지 전북대 국문과에서 후학을 양성한다. 그는 1958년 '현대문학' 6월호에 ‘설청’ 외 2편으로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한다.
그는 전북대 대학원에서 ‘계축일기(癸丑日記)’로 석사학위를, ‘한국수필문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전북문학’의 지속적인 발간이다. ‘전북문학’은 전북에 연고를 둔 문인 뿐만 아니라 외부 필진에게도 문호를 개방, 지역문학의 위상을 제고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시조, 수필, 문학 연구 등의 작업을 통해 한국의 전통 가치와 문화를 계승하려는 의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현대적 삶의 정신적 이정표로 선인들의 정신 가치를 내세우는데 공을 기울였다.
최근들어 전주시 고하문학관에 소장된 고문헌들이 디지털서적으로 다시 태어나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게 됐다. 문학관은 고하 최승범 명예 교수가 자신의 소장자료를 전주시에 기부한 후 전주한옥마을에 조성된 문학관으로, 현재 5만여 권의 장서와 500여점의 서예·그림 작품, 고서 1,900여 권 등을 보유하고 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서로 기뻐한다는/ 송무백열 그대 혹 들어보셨는지 전주향교/ 명륜당 왼편 뒤뜰에 가 보시라//한겨울 추위련데 나란히 나란히/ 서로가 서로를 살펴 푸를 청청/ 하늘도 꿰뚫어 치솟은 세찬 기운 아닌가’( ‘소나무와 잣나무’ 중)
고하 최승범 시인은 ‘소나무와 잣나무’ 시를 통해 송무백열(松茂栢悅)하던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풍경을 강조했다. 송무백열이란 소나무가 무성함을 잣나무가 기뻐함, 즉 벗이 잘됨을 기뻐한다는 뜻이다.
1969년부터 발간한 ‘전북문학’등을 통해 평생동안 향토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이 인정돼 제22회 문예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957년부터 1996년까지 전북대에 재직해 시조론과 수필론을 가르치며 전주와 시조문학을 지켜왔다. 최근에는 전북지역 이야기를 한데 모아서 만든 ‘신전라박물지’를 12번째 시집으로 출판했다.
그는 “百世之師(백세지사)로 받들어 모신 가람 이병기 선생은 곧잘 3복(술복 ,제자복, 난초복)을 말씀하셨는데 지금 그 말씀이 생각난다”며 “만해문예대상을 받게 돼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문인협회 전북지부장, 한국문화단체총연합회 전북지부장, 한국언어문학회장을 지냈으며, 정운시조문학상, 한국현대시인상, 가람시조문학상, 한국문학상, 목정문화상, 민족문학상, 제1회 한국시조대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한국수필문학연구’, ‘남원의 향기’ 등과 함께 시집 ‘난 앞에서’, ‘자연의 독백’ 등이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여느 ‘국보’들처럼 그렇게 불현듯 우리 앞에 나타났다.
시인은 ‘…겹겹 어둠 인고의 세월을/ 아 용하게도 끝내/ 견디어냈구나/ 부스스/ 어둠 털고 현신하던 날/ 사비성 날빛도/ 눈이 부셨다…’고 표현했다.
‘마른 대나무는 푸른빛 가셨어도 그 성깔 한결 결을 이루었네 한생을 굳곧은 결로 산 부러운 삶이여(‘苦竹’)’
대나무는 선비들의 절개나 의리를 상징하는 사물이다.
이 작품에서도 시인은 대나무의 속성을 섬세하게 묘사한 다음 그 속성을 정신 혹은 가치로 치환하여 인지하고 있다. 왕대가 지니고 있는 굳고 곧은 삶의 자세를 유지하며 삶을 지속하고 싶은 욕망과 화자의 그렇지 못한 현실 생활에서의 실망감이 표상되어 있다.
이처럼 ‘부러움’을 고백하는 화자의 태도는 이 시에 진솔성의 분위기를 부각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유족으로 자녀 최강섭, 최가산, 최영섭 씨가 있다.
빈소는 뉴타운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5일 오전 9시였다. 장지는 전남 구례군 섬진강로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