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심원 하전에 이추림시인 시비 제막
‘경수산골 머흘대는 거무실들 갯바람이
검단선사의 예지로
갯벌갈이 일구어 낸 터전
심원사람들은 한결 넉넉하였다.
아무리 부애가 나도 너땜시 참고
살막아래 고록젓 냄샐 들불로 피어낸다
심원사람들은 순천하는 뜻으로
다투나 배려할 줄 알고
챙기나 나눌 줄 아는
슬픔보다는 눈물 자락을 더 잘 아는
올곧은 천품이 늘상 더 고왔다(‘심원사람들’)
고창문화원은 26일 오전 고창군 심원면 하전리에서 이기화시인과 카톨릭문우회 작가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 마을 출신 이추림(1933-1997)시인의 시비 제막식을 가졌다.
당초 2008년 4월 금담양만 대표 주길선씨가 자금을 내고, 고창문화원이 시비를 건립했다. 하지만 이시인의 가족들의 행방을 찾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14년만에 이날 제막 행사를 가진 것.
더욱이 시비에 들어갈 내용을 시인이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이기화시인이 ‘심원사람들’이란 시를 창작, 선보이게 됐다.
이시인은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 1963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의 한국문학상 본상, 한국현대시인상 본상, 한국자유문학상 본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역사(歷史)에의 적의(敵意, 인간사, 1962)’ 를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시인은 잇따라 '불의 조사' '두보씨네 다 큰 애들의 후일담' 등 10여권의 시집을 내놓았다.
주로 장시를 통해 돌연한 언어와 이미지로 현실에 충격을 주었던 시인은 시와 시의 요체인 언어를 얼마나 엄격히 탐구했는가를 살필 수 있게 한다. 시인은 전통적인 가치관을 부정하고 문명·사회·역사가 저지른 악을 고발하거나 반전(反戰) 사상을 고취시키는 시를 주로 썼다. 절망·고독·죽음 등과 같은 감정을 토로함으로써 언어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성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기화시인은 “그는 추상적이면서도 독특한 문법이나 조어법을 통해 새로운 감각과 관념을 환기하는 시작을 즐겨한다”면서 “주요시로 꼽히는 1970년 ‘현대문학’에 연재한 장시 ‘배화교도’는, 역사에 대한 치열한 증오와 비판을 전개하기도 했으며, 한반도라는 불가피한 지리적 조건과, 아이러니컬한 사회 구조, 거듭되는 정치적 위기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피맺힌 고뇌를 쏟아낸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고 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