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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흥갑과 주덕기

이종근의 행복산책 2022. 11. 25. 10:35

전주는 예나 지금이나 소리의 고장이다. 정창업과 유공렬은 통인부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 참여한 소리꾼이다. 박만순은 처음에는 전주의 주덕기에게 배웠으나, 후에 가왕 송홍록에게 배워 그의 수제자가 됐다. 그는 송홍록의 문하에서 ;춘향가’중 옥중가를 적공(積功)하고, 전주 선화당에서 첫소리 한 바탕에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전주부(全州府)의 누정에서 있었던 명창 모흥갑과 그의 수행고수였던 명창 주덕기 사이의 일화가 유명하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따르면 그는 만년에 전주군 귀동에 살았다고 한다. 어느날, 물건을 살 일이 있어 전주부 시장에 들어가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다가정에 수천 명의 군중이 환도함을 보고 웬일인가 하고 헤치고 들어갔다. 당시 명창으로 성명이 쟁쟁한 주덕기다 소리를 하는데 청중 들이 추임새로 '얼씨구 좋다'를 사방에서 해댔다. 한때 송흥록과 모흥갑의 고수였던 주덕기가 전주 다가정에서 자신의 판소리 공연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 청중들에게 모흥갑과 송흥록에 대해 “모흥갑은 부족괘론(不足掛論)이요, 송흥록도 유부족앙시(猶不足仰視)”라고 자찬했다. 이 소리를 청중 속에서 엿듣던 모흥갑이 “나는 부족론(不足論)이로되 송흥록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가이요 가왕(歌王)의 칭호까지 받은 명창이어늘 주덕기는 참으로 무례막심(無禮莫甚)하다”고 꾸짖었다. 이때 소리로 우열을 가려보자고 제의했다. 모흥갑은 연로해 앞니가 다 빠져서 순음(脣音: 소리를 입술로 저장해 부르는 입술소리)으로 춘향가 중 ‘이별가’ 대목을 부르게 됐다. ‘여보 도련님, 여보 도련님 날 다려가오. 날 다려가오. 나를 어쩌고 가려고 하시오...’

주덕기는 절창에 얼굴이 홍당무가 됐다. 이때 부른 모흥갑의 소리는 매우 특이하고 아름다워 다른 소리꾼이 도저히 따르지 못한 정도였다. 이는 유명한 ‘강산제 더늠’으로, 훗날 주덕기를 통해 세상에 널리 전해져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이야기다. 19세기 전기 8명창 모흥갑의 수행고수에서 뒤늦게 명창의 반열에 오른 주덕기가 오만함을 딛고 일어선 것 또한 그의 음악적 바탕이 된 모명창과 그의 충고가 있었기 때문일 터이다.

최근들어 고창군이 군수 직인을 포함한 고창군 관인을 모두 동리 신재효 판소리체로 교체했다. 군에 따르면 유기상 군수가 6일 집무실에서 '제1호 판소리체' 관인발송을 결재하면서 전체 118점의 기존 관인이 모두 교체됐다. 군이 기존 30여년간 써왔던 전서체 관인은 꼬불꼬불하게 구부러져 있는 만큼 알아보기 힘들다는 불편이 잇따랐다. 글씨는 고창의 역사적 상징과 문화적 정체성, 문화·예술적 가치에 가장 잘 부합하는 동리 신재효 판소리 춘향가체로 선정됐다. 세상 참으로 많이 변했다. 판소리체가 관인으로 다 쓰이다니./이종근(문화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