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출신 직지 대모 고 박병선박사
병인양요 당시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가 국내로 반환된지 10년을 맞은 가운데 국내 반환의 주역인 전주출신 고 박병선(루갈다·1919.28~2011.11.23)박사의 활약이 뜨겁게 재조명받고 있다.
고 박병선 박사의 노력으로 외규장각 의궤는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은 고 박박사를 기억하고자 11주기가 되는 21일부터 27일까지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에서 갖는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1-2023.3.19)’ 무료관람을 갖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10년을 기념한 특별전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 10년 간 축적된 외규장각 의궤 연구 성과를 대중적인 시선으로 풀어냈다.
전시품은 외규장각 의궤 297책 등 460여 점이다.
전시는 3부로 구성됐다. 1부 ‘왕의 책, 외규장각 의궤‘에서는 왕이 보던 어람용 의궤가 가진 고품격의 가치를 조명한다. 또 의궤 속 자세하고 정확한 기록과 생생한 그림에서 읽어낸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를 소개한다. 2부 ‘예禮로서 구현하는 바른 정치‘에서는 의궤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의례(儀禮)로 구현한 조선의 ‘예치(禮治)‘가 담고 있는 품격의 통치철학을 살펴본다. 3부 ‘질서 속의 조화‘는 각자가 역할에 맞는 예를 갖춤으로써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조선이 추구한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그 이상이 잘 구현된 기사년(1809)의 왕실잔치 의례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행사가 끝나고 그 전체 과정을 기록한 것이 의궤이다. 그 중에 단 1부는 최상급 재료를 들이고 조선 최고의 화가와 장인들이 참여하여 정성스럽게 엮고 장황(粧䌙, 서책의 본문과 표지를 묶어서 장식하는 것)한 어람용 의궤를 왕에게 올렸다. 외규장각 의궤는 대부분이 어람용이다. 어람의 높은 품격을 지닌 외규장각 의궤 전시는 우리 문화의 자부심을 선물할 터이다. 실록에는 1846년 헌종이 아버지인 익종(효명세자)의 능을 옮긴 일을 단 3줄로 남겼습니다. 반면 의궤에는 그 절차를 모두 9책으로 자세히 기록했다. 행차 모습을 그린 반차도(班次圖)와 행사에 사용된 기물을 그린 도설(圖說)은 천연색으로 그려 지금까지도 어제 만든 것처럼 선명하다. 조선시대 왕은 모범적인 의례를 구현하여 예를 실천하고 신하와 백성들로 하여금 마음으로 움직여 스스로 따르게 하는 예치를 추구했다.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맞는 예를 갖춘 질서 속에 조화를 이루는 것은 조선이 추구한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공신녹훈(功臣錄勳) 의례에서 신하는 충심으로 보필하고, 국왕은 충신을 예우함으로서 신의(信義)를 보인다. 그 행사의 세세한 절차를 의궤에 담아 공신녹훈의 의미를 후세에 남기고자 했다.
특히 외규장각 의궤가 전량 전시된 대형 서가는 특별전의 감동을 기억할 포토존으로 사랑받기를 기대한다. 의궤의 생생한 기록을 토대로 복원한 여령(女伶. 전문 예인藝人으로 의례 중에 행사의 진행을 돕던 사람)과 잔치를 꾸민 준화(樽花)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외규장각 의궤 중 영국국립도서관이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는 ’기사진표리진찬의궤‘를 실제와 똑같이 복제하여 관람객이 직접 넘겨보며 어람용 의궤의 품격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너비 10m의 대형 화면에서 디지털 콘텐츠로 변신한 기사년의 ’진찬의 3D 영상‘을 감상하면서 관람객은 왕실 잔치의 손님이 된다.
외규장각 의궤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 박사가 베르사유 별관에서 어람용 의궤 297권을 발견하며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박박사는 2011년 5월 의궤가 국내로 돌아온 뒤, 11월 23일 작고했다. 윤성용 관장은 “박병선 박사는 의궤를 고국에 돌려보내는 것이 임무인양, 그 일이 끝나자 돌아가셨다”며 “그를 기리기 위해 11주기인 11월 21일부터 일주일간 무료로 전시장을 개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