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스토리

백제 공예 정수, 창조적 계승해야

이종근의 행복산책 2022. 11. 3. 14:13

익산박물관에 들어서면 미륵사지 석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 중 사리내호가 1호 전시물로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사리내호는 높이 5.9cm, 지름 2.6cm의 금 세공품이다. 사리를 담은 작은 유리병을 다시 넣는 소형 금속 항아리다. 90% 이상의 순도로, 황금빛을 발하는 사리내호의 정교한 아름다움 앞에서 관람객은 숨이 멎을 듯한 황홀감에 빠진다. 찬란했던 백제 예술혼의 세계로 인도되는 듯하다 익산이 경주, 공주, 부여와 어깨를 겨루는 '4대 고도(古都)'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네 곳은 2004년 한국의 4대 고도로 지정됐다.

익산은 왕궁(왕궁리 유적), 사찰(미륵사지, 제석사지), 산성(미륵산성, 익산토성), 왕릉(무왕릉) 등 고대 왕국이 갖춰야 할 4가지를 모두 가진 2,000년 고도다. 또 익산은 공주, 부여와 함께 백제 후기의 왕도였다. 백제 시대 공예품의 정수이자 익산 미륵사 창건 시기를 뒤받침하는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가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승격 지정된다. 사리장엄구는 사리를 불탑에 안치할 때 사용하는 용기와 함께 봉안되는 공양물을 통틀어서 가리키는 말이다. 이 유물들은 지난 2009년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서탑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탑 중심에 뚫린 사리를 넣기 위한 구멍(사리공)에서 발견됐다. 발견 당시부터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았던 청동합 6점이 백제의 최상품 그릇으로 확인돼 세간의 관심이 높았다. 문화재청은 청동합이 녹로(그릇을 만들 때 사용하는 돌림판)로 성형한 동제 그릇으로 한국 유기 제작 역사의 기원을 밝혀줄 중요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발견된 사리를 담는 용기인 금제 사리내호와 그것을 담는 금동사리외호도 희귀한 유물이다. 두 유물은 몸체의 허리 부분을 돌리는 형태로 동아시아 사리 관련 유물에서 유사한 구조를 찾기가 어렵다.

익산에 또 하나의 국보 탄생이 예고되면서 백제역사 문화도시로서 위상을 다시 한번 입증받았다. 이로써 익산의 국보는 미륵사지 석탑과 왕궁리 오층석탑,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를 포함, 4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도내 9개 국보 가운데 절반 가량이 익산에 위치하면서 명실상부한 역사문화도시로 인정받게 됐다.

지난 200010월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금동향로. 문화재청은 지난 2012222'보물 제1753'로 지정했다. 이 금동향로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한번도 확인되지 않은짐승 다리 모양의 수각향로(獸脚香爐)라는 점에서 발견당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당대(唐代) 중국 작품에 보이는 번잡한 장식이 없이 실용적이고 단아한 모습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륵사지 금직물은 경사 방향에 색실을 더해 문양을 짰기 때문에 경금직물이라 하며, 흑색 바탕에 적자색과 황색 실로 파선이 대칭을 이루는 테두리 문양을 갖추고 있다. 안타깝게도 1,400년의 장고한 시간만큼 딱딱하게 굳어 있어 테두리 안쪽에 그려진 문양은 알 수 없다. 이러한 문양의 구성과 배치는 중국의 경우 6세기대 금직물에 해당한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고대직물 중에서 테두리문양이 있는 금직물로는 최초의 발견이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그저 새까맣게 보이는 한낱 직물 조각이지만, 금직물에 대한 제직기술과 문양은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는 신라를 거쳐 일본까지, 서쪽으로는 소그드, 사산조 페르시아를 거쳐 이집트 콥트 직물까지 연결되는 당시에는 가장 핫한 아이템이었다. 우리는 바로 미륵사지 금직물을 통해 백제가 실크로드의 한 갈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부여 쌍북리와 익산 왕궁리 등에서 발견된 유리 도가니와 납유리 파편은 모래에 납을 섞어 유리를 만드는 기술이 늦어도 6세기 말에는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시는 이번 국보 승격을 역사문화 관광도시브랜드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예정이다. 백제 공예의 정수를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하는 일이 이제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