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달을 타고 오르는 남원의 전도양양을 기원합니다
[문화인문 스토리] 용이 달을 타고 오르는 남원의 전도양양을 기원합니다
남원의 고전문학 '최척전'과 '홍도', 고난을 이겨낸 상징
'남원에 사는 최척이 정상사의 집으로 공부하러 다녔다. 어느 날, 옥영이 창틈으로 최척을 엿보고 그에게 마음이 끌려 구애(求愛)의 시를 써서 보냈다. 그리고 시비(侍婢) 춘생을 보내 답신을 받아오게 한다. 최척은 춘생을 통해 옥영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부친의 친구인 정상사에게 혼사(婚事)를 주선해 줄 것을 부탁한다. 옥영은 이 혼사를 반대하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마침내 둘은 약혼을 하게 된다.
혼인날을 정해 놓고 기다리던 중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남원 지역에 의병이 일어났고 최척도 여기에 참전(參戰)하게 되었다. 혼인 날짜가 지나도록 최척이 돌아오지 않으므로 옥영의 어머니는 부자의 아들인 양생을 사위로 맞으려 한다. 그러나 옥영은 최척이 돌아올 때를 기다려, 두 사람은 드디어 혼인을 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이 때 맏아들 몽석이 태어난다'
정유재란으로 남원이 함락되면서, 옥영은 왜병의 포로가 되었고 최척은 흩어진 가족을 찾아 헤매다가 실심한 끝에 명나라 장수 여유문과 형제의 의를 맺고 중국으로 건너가 살게 되었는데, 자신을 매부로 삼으려는 여유문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한편 일본에 잡혀간 옥영은 계속 남자로 행세하면서 불심이 깊은 왜인을 만나 우여곡절 끝에 상선을 타고 다니면서 장삿일을 돕게 된다. 여러 해가 지나 여유문이 죽자 최척은 항주의 친구 송우와 함께 상선을 타고 여기저기로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남에 배를 타고 갔다가, 상선을 타고 안남까지 오게 된 아내 옥영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들은 중국 항주에 정착하여 둘째 아들 몽선을 낳아 기르며 십수 년 간 행복한 생활을 누린다. 몽선이 장성하게 되자 홍도라는 중국 여인과 혼인을 시킨다. 홍도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전했다가 실종된 진위경의 딸이었다.
이듬해 호족이 침입하여 최척은 아내와 아들을 이별하고 명나라 군사로 출전하였다가 청군의 포로가 된다.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명나라의 청병으로 강홍립을 따라 조선에서 출전했다가 역시 청군의 포로가 된 맏아들 몽석을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부자는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고향으로 향한다. 한편 옥영은 주도 면밀한 계획을 세워 몽선, 홍도와 더불어 천신만고 끝에 고국으로 돌아와 일가가 다시 해후하여 단란한 삶을 누리게 된다'
'최척전(崔陟傳)'은 1621년(광해군 13) 조위한(趙緯韓,1559∼1623)이 1621년에 지은 한문소설입니다.
조위한이 남원 주포방에 머물면서 지은 최척전은 정유재란 남원성 싸움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아픔과 상봉을 그린 작품으로, 남원의 고전소설로 알려진 '홍도전'과 그 내용이 같아 당시 실제 있었던 실화를 소설로 꾸며놓은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나라는 조선에 8만 여명의 구원병을 출정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곳 남원성을 지키기 위해 3,000여 명의 병력을 이끈 명나라 장수 양원이 남원에 도착해 당시 남원성안 용성관에 사령부를 두고 침략해오는 일본군과 격전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남원부사 임현을 비롯한 장수들은 지세가 험준하고 성곽이 튼튼한 교룡산성에서 싸울 것을 요청하였으나 양원은 이를 묵살하고 남원성에서 싸울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하여 일본군이 남원성을 공격하게 되자 채 3일도 제대로 못 가 일본군에 참패를 당해 그해 8월 15일 밤을 타고 양원은 도망을 하고. 8월 16일 남원성은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양원의 군대에 속해 있던 정생은 중국으로 양원의 군대를 따라가고, 그의 부인인 홍도는 일본군대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가 남만상선의 노예로 팔려가 우여곡절 끝에 중국에서 남편 정생을 만나 고향 남원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바꾸어 말하면 현대판 이산가족의 상봉 이야기가 바로 '홍도전(紅桃傳)'입니다.
이 '홍도전'은 전쟁이 끝난 후 13년이 지난 1612년 당시 구전되어오던 이야기를 남원부사로 부임한 유몽인(柳夢寅)이 그의 저서 '어우야담(於于野談)' 인륜편 효열조에 기록하여 세상에 전해지게 됐습니다. 이 '홍도전'과 내용이 비슷한 조위한의 '최척전'이 있습니다
'최척전'은 정유재란 당시 종군했던 최척(崔陟)과 옥영(玉英)이라는 부부가 겪은 실제 이야기를 가탁(假託, 다른 사물을 끌어다 사상,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법)기법으로 엮은 것으로 '기우록'에 전해옵니다.
1권 1책 한문팔사본인 '기우록' 작품첫머리에는 '최척전'이라는 표제가 붙어있고, 끝부분에는 "天啓元年辛酉二月日 素翁題"라 쓰고, "素翁趙緯韓號 又號玄谷"이라는 필사자의 주가 달려있습니다. 이로 미루어보면 천계원년은 1621년(광해군 13)이며, 호를 소옹 또는 현곡이라 일컫는 조위한의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최척전'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란의 소용돌이를 배경으로 하여 애정 문제와 가족의 이산과 재회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17세기 후반부터 나온 대부분의 전쟁소설들(박씨전, 임진록, 임경업전 등)이 이민족에 대한 적개심을 복돋우고 민족 영웅의 활약상을 통해 민족의 자존심을 높이고자 한 반면, 최척전에는 전쟁으로 인한 당대 민중의 고난과 역경이 대단히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작품의 무대가 조선과 중국, 일본을 배경으로 확장되고 있는 점도 특징적이며, 조선인 몽선과 중국여인 홍도와의 결연은 다른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당시 외국인과의 결혼을 금기시하던 풍속을 생각할 때 상당히 진보적인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뜻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하고 강인한 의지와 슬기로 전쟁의 역경 속에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옥영'은 후대 소설에 나타나는 능동적이고 강인한 여성상의 선구가 됩니다.
'최척전'은 임진왜란 때 우리 민족이 받아야 했던 수난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왜구나 구원병으로 온 명군들에게까지도 당한 치욕과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들의 아픔들까지 다루었습니다.
실제로 역사적인 실존인물이 등장을 하면서 중국이나 일본 등 세 나라를 무대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 다큐멘터리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작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건전한 의식을 고취시키고 싶은 작자정신이 깊게 베어난다는 점에서 기존 소설이 따를 수 없는 차별적인 작품입니다.
1618년 4월 현곡 조위한이 남원을 출발하여 하동 쌍계사와 인근의 여러 곳을 유람하고 남긴 '유두류산록'에는 굴절된 우리 역사의 흐름과, 이에 맞물리는 저자의 파란만장한 삶이 읽혀집니다.
예로부터 남원을 가리켜 부르는 이름이 많은데, 백제 때는 고룡군, 대방군, 신라 때에는 남원소경, 고려 때에는 남원부, 조선 때에는 남원도호부라 불렀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습니다.
또 다른 이름으로 우리 고장을 '용성(龍城)'
' 또는 '용성부'라 부르고 있는 바, 용성은 백제때 고룡군에서 연유됐다고도 합니다.
용은 원래 '미르'라는 우리 고어에서 나온 말이며, 미르는 '물'의 원말입니다.
바로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요천과 축천 그리고 교룡산성(蛟龍山城)이 있는 지방에서 유래되었던 것이 아닐까요.
남원에는 용과 관계되는 지명이 수 없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원을 언제부터 용성이라고 애칭 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때론 '교룡산성'의 명칭에서 유래되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쨋든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신라말기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설을 깨닫고 우리나라 전국 산천을 두루 답사할 때 전라남도 영암에서 구례를 거쳐 남원 가까이 구찰군 용방면에 다다랐을 때 날씨가 궂어 뇌성벽력이 치고 폭우가 쏟아질 듯하며 쉬어가고자 주위를 살피다 남원땅을 둘러싼 수십리나 되는 용을 보았다고 합니다. 마치 용이 성을 쌓아 남원 땅에 둘러놓은 듯한 모양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 남원 땅에는 햇빛이 나고 오색 무지개가 휘황찬란하게 비치고 있는걸 보았다 합니다.
이것을 본 도선국사는 가로되
'용이 성을 쌓아 보호하는 곳이다'
하고 감탄하고, 이곳 남원을 용성이라고 했답니다.
전하는데 용이 성을 쌓은 곳이라 하여 용성이란 이름이 쓰이기 시작, 용성부란 이명(異名)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남원은 예부터 용성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원은 200여 개가 넘는 달(月)과 관련된 지명을 갖고 있는 도시로서 선인들이 천상의 월궁을 본 떠 만들었다는 광한루원에서 시민들의 주요 등산로인 애기봉까지 이어진 달맞이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달을 보러 나왔다는 승월대와 이성계 장군과 관련된 인월 달오름마을 등 달과 연관된 지명과 마을이 100여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원시는 달의 도시 브랜드를 적극 개발하고 활용해 나가기 위해 광한루원에서 요천을 건너는 길목인 승월교에서 승월대에 솟은 달을 바라보던 풍습을 재현하는 차원에서 남원의 달을 설치했습니다.
천상의 선녀가 머물렀다는 승월대와 사랑의 광장을 연결해주는 승월교라 불리는 다리가 있습니다.
승월교 주변으로 광섬유를 이용한 분수가 좌우로 뿜어지면서 아름다운 무지개 분수 터널을 이루며 때로는 경쾌하고 때로는 감미로운 음악을 관광객들에게 선사합니다. 은하수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연출된 야경은 색색의 조명과 함께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다리 양 입구의 바닥에는 하트 모양에 성춘향과 이도령이 어우러진 모습의 인공 조형물이 조명을 받아 서로 조화를 이룹니다. 연인이 함께 손을 잡고 이 다리를 건너면 두 사람의 사랑이 더욱 돈독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 해가 지는 저녁이면 이곳을 찾는 연인들과 전국에서 찾아온 가족 단위 관광객들로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용이 달을 타고 오르는 남원의 전도양양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