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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백상과 익산 여산의 고아 김대갑

이종근의 행복산책 2022. 6. 20. 11:09

[인문학 스토리] 청년들이여 힘내라, 누가 천리마를 알아봐주는가?

-민백상과 여산의 고아 김대갑

민씨 가문에 내려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조 때 우의정을 지냈던 민백상(閔百祥, 1711~1761)의 집에 어느 날 한 남자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이름은 김대갑(金大甲)이며, 여산 사람으로 위장(衛將, 五衛의 군사를 거느린 오위장)을 지냈습니다.

나이 열 살에 부모를 모두 잃어 고아로 여기저기 떠도는 아이였습니다.

구걸을 하면서 이 댁에서 일하며 살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민백상이 가만히 살펴보니, 지금 모양은 볼품없으나 영리하고 성실한 듯하여 그를 맞아들여 일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민백상은 평안감사가 되었고, 김대갑은 호위무사가 되어 그를 경호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민백상이 평안감사의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김대갑을 불러 사업 자금을 주어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민공이 평양감사로 나가게 됐을때 사동으로따라갔다가 눌러앉은 김대갑은 연줄을잡고 의주의 연시(연시(燕市)=국제시장)의물화를 강경(강경(江景))에 싣고가 파는 무역에 손을 댔고,번 돈으로 고향인 전라도 여산에다 땅을 샀습니다. 그래서 19세에 이미 천석꾼의 갑부가 된것입니다.

김대갑은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당신이 주신 은덕이니 내가 당신을 위하여 일을 하리라 하고, 중국에 들어가 물건을 사서 상업 도시 강경에서 되 팔아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석천(石泉, 익산시 낭산면 석천리) 옛집을 찾아가니 쑥대만 눈에 가득했습니다. 개간을 하고 나무를 심는 등 결국 몇 년 후에는 수 만금의 재산을 가진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김대갑은 그 동안 민백상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하여 그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오랜 당파 싸움에 밀려 집안은 이미 완전히 몰락해 있었습니다.

김대갑은 슬퍼하며 민백상 집안의 모든 혼인과 상례 등 온갖 일을 챙기고, 모든 비용을 다 대면서 가정사를 돕는 일을 자신이 죽을 때까지 계속하였다고 합니다.

 '해동야서'에 '김위장이 정성을 다해 옛 주인을 돕다(金衛將恤舊主盡誠)'라는 제목으로 수록됐습니다. '청구야담', '기문총화', '계서야담' 등에도 실려 있습니다.

민공의 지감(知鑑, 사람을 알아보는 감식 능력)과 김대갑이 천석꾼이 되었기에 국량이 큰 인물이고, 은혜를 갚을 수도 있었습니다.

누가 천리마를 알아봐주는가?

당송팔대가 중 한명인 한유(768~824)는 명문을 많이 남겼습니다. 대표작으로 『원인(原人)』, 『원도(原道)』, 『사설(師說)』 등이 있습니다. 한유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스승에 대한 글을 남겼으며, 그의 공부법은 현재에도 유효한 방법론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만나야 만이 재능을 꽃 피울 수 있다는 『잡설(雜說)』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잡설(雜說)』은 비교적 짧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전달의 의미가 깊다고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세상에 ‘백락’이라는 인물이 있고 난 뒤에 천리마가 있을 것이다. 천리마는 항상 있었지만 백락 같은 이는 늘 있지 않았다.

世有伯樂, 然後有千里馬. 千里馬常有, 而伯樂不常有.

『잡설(雜說)』의 첫 문장입니다. ‘백락’은 사람이름인데 본명은 손양(孫陽)입니다. 그는 주나라 때 인물로서 말을 잘 감정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관련된 고사성어가 많은데 대표적인 것으로 ‘백락일고(伯樂一顧)’가 있습니다. 성어의 의미는 명마도 백락을 만나야 세상에 알려진다는 것과 백락이 한 번 돌아보자 가치가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즉 백락은 명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장자(莊子)는 이 이야기를 다르게 비틉니다.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들판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것이 말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백락이라는 자가 나타나서 좋은 말을 가려내어 명마로 키운다면서 편자를 박고 굴레를 씌워 먹이와 채찍으로 길들이는 바람에 그 본성이 망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기준을 정해두고 인위적으로 맞추려 함으로써 불행이 야기됨을 경계하는 맥락입니다. 다들 천리마에만 눈이 가 있을 때 장자가 본 것은 재능이나 의사와 무관하게 천리마로 길러지다가 죽고 버려지는 대부분의 말들입니다.

백락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천리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과 불안에 내몰리기 때문에 불행합니다.
청년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게 하고 그 기회비용을 국가사회가 파격적으로 부담해야 합니다. 백락 없이도 저마다 천리마가 되어 내달릴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일이 시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