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스토리

정읍출신 조선시대 의사 임언국

이종근의 행복산책 2022. 2. 2. 15:52

우리나라 최초의 외과 전문서는 치종비방(治腫祕方)으로, 조선 명종 때 활약한 임언국(任彦國)이 쓴 책이다. 치종지남(治腫指南)이라는 책도 있는데 임언국과 그의 유파가 저술한 것으로 추정된다.

임언국은 조선 명종 때의 의원으로 정읍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노승으로부터 침술을 전수받아 명성을 떨치자 조정에서 그를 불러올려 많은 사람의 병을 치료했다고 전한다.

임언국은 양반가에서 태어나 유학을 공부하다 어머니가 종기를 앓아 낫지 않자 영은사의 노스님에게 침술을 전수받아 치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은사는 임언국의 고향 정읍에 있는 내장산 내장사의 옛 이름이다. 당대의 학자이며 관리인 어숙권은 임언국의 치료 모습을 보고 그 외과술의 뿌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임언국은 종기를 치료하고 난 뒤 반드시 앵무새 고기를 불에 태워 그 재를 종기 구멍에 발랐다. 그 이유를 묻자 한 동네에 살던 마의가 말의 종기를 치료한 뒤 늘 앵무새 고기를 태워 재를 발랐는데 효과가 좋아 자신이 사람에게 발라보니 역시 효과가 좋았다고 했다. 그 후에는 족제비를 불에 태워 그 재를 종기 구멍에 발라주며 치료했다고 한다."

이는 이상곤 한의학박사의 설명이다,

치종청(治腫廳)은 언제 생겼는지 또 언제 폐지되었는지는 정확히 기록이 없으나 임언국은 이곳에서 백성들의 종기를 치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종청은 조정이 종기를 전문적으로 치료해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설치한 종기 전문 의료 센터로 성종 때 만들어진 뒤 폐지와 복원을 반복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 학자 김려가 쓴 야담(野談) 총서 <한고관외사(翰皐觀外史)>는 "임언국이 종기를 잘 치료하는 것으로 유명해 영남에 있는 이이(李耳)라는 선비와 더불어 종기 치료 학교를 처음 설립했다"고 밝히고 있다.

선조 때 활약한 조선 최고의 침의 허임도 임언국의 영향으로 '치종 교수'라는 공식 직함을 갖게 된다. 종기의 원인을 심경락에 두고 기죽마혈(騎竹馬穴)에 뜸을 뜬 점, 두꺼비 독과 태운 재를 종기 치료에 이용한 점 등은 임언국의 경험을 수용했거나 전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방 외과가 복잡한 외과수술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외과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전쟁이나 심각한 질병이 흔치 않던 과거에 종기는 무척이나 무서운 질병 중 하나였다.

시술법 역시 증상과 상황에 따라 다양해 종기를 찢고 치료하다 과다 출혈로 죽은 효종 임금도 있다. 특히 상처를 절개하고 봉합하는 문제가 당연히 중요했을 터이다.

하지만 임언국의 외과적 종기 치료술은 관념적, 유교적 치료 방식의 벽에 가로막힌 한의학에 새로운 길을 여는 전기를 마련했지만, 그 벽은 너무 높았고 한의학은 거대한 유학의 벽 앞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따라서 ‘마의’나 ‘백광현’은 드라마처럼 현대 양방에서 이뤄지는 본격적 외과술을 몇 백 년 앞서 개발한, 전설적 능력을 지닌 과장된 존재가 아니라 한방 외과술의 막을 올린 임언국의 후예쯤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의학이 발달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요즘에도 돈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같은 시대에 굳이 혜민서와 활인서의 이야기를 꺼내고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것은 이런 공공의료가 의료제도가 추구해야할 최종적인 형태이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수준의 의료 혜택을 받아야하고 귀천에 상관없이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함이 마땅하다. 따라서 비싼 약을 쓸 수 없는 백성들을 위해 침술로 종기를 치료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종기들이 잘 치료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