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연못의 상징성과 단오 물맞이
송화섭
덕진연못의 상징성은 乾止山地形圖와 全州地圖에 나타난다. 건지산지형도에는 조경단의 背山은 乾止山 兜率峰이고, 臨水는 덕진연못으로 그려져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전주의 진산을 乾止山이라고 한 것도 全州李氏의 始祖인 李翰의 墓와 관련이 있다. 건지산지형도는 肇慶壇(李翰의 墓)의 풍수형국도인데, 덕진 연못은 건지산의 대지골과 명주골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조경단 앞에서 합수하여 蓮花川을 이루고 덕진연못으로 흘러들어간다는 점에서 조경단의 臨水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러나 1872년에 제작된 군현지도가운데 전주지도는 전주부성과 덕진연못의 구도를 잘 묘사하고 있다.
덕진연못은 삼례에서 전주로 들어오는 大路, 즉 나들목에 위치하고, 건지산과 가련산을 이은 덕진제방을 경계로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용산평(龍山坪)은 전주부성의 앞 뜰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앞 들판(野) 가운데에 덕진연못이 위치한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삼레에서 전주로 들어오는 초입에 덕진연못이 위치하고, 전주의 지세로 본다면 전주부성의 남쪽에 위치하고, 풍수지리의 구도로 본다면 전주의 북쪽에 위치한다.
그러나 집안의 연못, 마을의 연못의 위치를 대비시킨다면 덕진연못은 읍성(또는 부성)의 연못으로 규정하는데 문제는 없다. 집안의 연못과 마을의 연못과 궁성의 연못도 모두가 남쪽 뜰(庭)에 위치한다. 이러한 구도를 전주부성과 덕진연못의 구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덕진연못은 전주부성의 연못이요, 정원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구분한 정원의 기준을 전주 덕진연못에 적용한다면, 邑城形 庭園이요, 園池假山型 庭園이라 할 수 있다. 전주시민들은 덕진연못을 매우 신성시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 전기의 문인이던 서거정과 유순의 詩에서 오풍십우의 조화를 부리는 용왕이 덕진연못에 있다고 노래한데서 알 수 있다. 고려시대부터 덕진연못은 용왕의 처소로서 용궁같은 신성한 못이었으며, 덕진용왕에게 기우제를 지냈으며, 용왕의 영험성에 의탁하여 사월초파일(음4.8)에 용왕제를 지내는 관행은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이 뿐만아니라 덕진연못에서 ‘단오물맞이’하는 관행은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전승하고 있다26).
왜 이처럼 역사적으로 전주사람들은 덕진연못을 신성시하고 성지聖池)로 여겼을까 하는 점이다. 만약 曼茶羅를 建立하고자 할 때에는 금강아사리는 먼저 그 땅․산․들을 택해야 하느리라. 그 땅은 갖가지 과일나무가 자라가 부드러운 풀과 이름난 꽃이 있으며 평탄하여 좋아할 만한 곳이어야 한다. 혹은 청정한 연못이 있거나 늪에는 샘이 흐르고 물이 가득차 있다. 부처님께서 칭찬하는 곳이면 어느 만다라를 건립해도 좋은 곳이다. 큰 강둑이나 龍의 연못 근처에 이른바 優鉢羅花, 拘勿頭花, 波頭摩花, 芬陀利花 등 연꽃으로 장엄한 곳이다. 그 곳에서는 오리․기러기․鴛鴦․白鶴․鸚鵡․舍利․拘枳羅 등 온갖 묘한 새들이 날아와 모여서 莊嚴한 곳이다.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과 독각과 성문들이 일찍이 머물렀던 곳으로 적정하여 찬탄할 만하다. 天龍이 守護하는 곳이며, 다른 城邑․聚落․僧房․舍宅․堂閣․塔廟와 天使牛가 머무는 한가하고 고요한 庭園이 있는 빈집가운데 만다라를 함께 건립해야 한다. 만약 이처럼 법다운 곳이 없으면 편한대로 사용하여 안치하되 심지에 따라 건립해야 한다.
위의 밀교의 택지법은 어느 곳에 만다라는 조성하는 것이 좋은지 擇地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曼茶羅는 불교의 우주적 세계를 말하는데, 우주적 세계는 불교적인 신성한 세계를 지칭한다. 『守護國界主陀羅尼經』제 9권 陀羅尼功德軌儀品에는 만다라를 건립할 때에는 먼저 땅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 땅은 청정한 연못이 있거나 늪에는 샘이 흐르고 물이 가득차 있어야 하고, 그 龍의 연못에는 연꽃이 장엄하고, 현묘한 새들이 모여들어 장엄한 곳이어야 한다는 입지적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천룡이 수호하는 城邑, 聚落, 堂閣, 僧房 등에 한가하고 청정한 연못(閑靜園苑)이 있는 곳이라면 만다라를 건립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이러한 구도는 高麗時代 불화인 觀經十六觀變相圖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사찰의 당각 앞에 蓮池가 조성되어 있는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지 안쪽에 조성된 성읍과 취락은 만다라의 세계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덕진연못과 그 안쪽에 위치한 전주부성의 구도는 가히 찬탄할 만한 만다라의 세계이다. 덕진연못과 전주부성은 분리해서 볼 것이 아니라, 曼茶羅라는 불교적 우주적 공간 체계에서 이해해야 한다. 덕진연못은 신성한 제단이라면, 전주부성은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理想的인 城邑(또는 府城)으로서 曼茶羅다. 불교의 우주적 세계는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佛說彌勒下生成佛經』에 등장하는 극락세계의 구도와 전주의 구도가 같다는 것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즉 시두말성(翅頭末城)이 全州라면, 兜率天內院宮이 全州府城이며, 龍宮이 덕진연못 속에 위치한다는 구도와 같다. 그런 점에서 덕진연못은 전주가 사람살기에 좋은 최고의 勝地요, 吉祥地를상징하는 神聖한 연못이란 점이다. 덕진연못이 蓮池로서 주목을 받은 시점은 고려시대 密敎의 발달과 관련이 깊다. 이러한 사실은 1200년(고려 신종 3년)에 이규보가 「全州祭龍王祈雨文」을 『東國李相國集』에 실은데서 알 수 있다. 「全州祭龍王祈雨文」은 지방관리로 전주에 내려온 이규보가 덕진용왕을 하늘못(天之潭)에 거처하는 천룡(天龍)으로 인식하였다는 사실인데, 『彌勒下生成佛經』에 도솔천 내원궁의 앞뜰에 위치한 용궁에 위치하고 천룡이 그곳에 거처한다. 이러한 구도를 그대로 전주에 대입시켜보면, 시두말성(翅頭末城)이 全州라면, 兜率天內院宮은 全州府城이며, 龍宮은 덕진연못에 비유될 수 있다. 실제 1970년대까지 덕진연못 옆에 용궁각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제 3대 용화부인이 매년 사월초파일에 용왕제를 거행하였다고 한다. 1762년(영조38)에 金鍾正이 쓴 『雲溪曼稿』全州道中에 전주의 사월초파일 풍속에 물머리에 장막을 치고 무당이 용왕에게 굿을 하였다(賽龍王 -州俗四月八日 設屛帳於水上 相與飮食遊嬉 以祭龍王云)는 기록이다. 고려시대 佛敎의 護法龍에게 祈雨祭를 지내는 전통과 관행이 조선 후기를 거쳐 1970년대까지지속된 것이다.
*1930년대 전주 덕진연못의 단오물맞이 : 1938년 7월 18일 동아일보 신문기사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