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형 디지털 뉴딜, 마한 백제 콘텐츠 확장 시급' 전북연구원, '강후진의 '유금마성기'의 복원을 통한 마한ㆍ백제 역사의 재조명'이라는 이슈브리핑서 주장
<속보>조선후기 실학자 강후진(康侯晉, 1685~1756)의 ‘유금마성기(遊金馬城記)’를 적극 활용해 마한과 백제의 콘텐츠를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새전북신문 2020년 1월 29일자 관련 기사>
전북연구원은 '강후진의 유금마성기의 복원을 통한 마한ㆍ백제 역사의 재조명'이라는 이슈브리핑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강후진은 '유금마성기'에 당대의 마한과 백제의 유적을 상세하게 기록한 바, 이를 통해 마한과 백제의 콘텐츠를 확장하고, 전북형 디지털 뉴딜을 실현하는 기회로 삼자는 주장이다.
'왕궁성(왕검성) 북쪽 10여리에 미륵산 서쪽 기슭에 옛 미륵사터가 남아 있다. (중략) 밭두렁 사이에 7층 석탑은 엄청 높고 크며, 모든 석재들은 둘러 막아 첩첩히 쌓아 올려졌고, 돌기둥은 별도로 네 귀퉁이를 받치고 있다. 소위 동방석탑의 으뜸이라 함은 헛 말이 아닌가 싶다. 백년 전에 벼락으로 그 절반이 무너졌고, 아래 석문이 있어 출입할 수가 있는데, 세사람이 함께 들어가 놀 수 있을 정도이다. 서쪽 벽을 밟고 탑 위에 올라가 농부 세 사람이 농기구를 옆에 끼고 그 위에 누워 있다. 밭두렁 사이에는 초석과 석조(石槽), 그릇 등이 널려 있는데, 반쯤은 노출되고, 또는 전부 노출되어 기울어져 있거나 부서져 있다. 종각으로 추정되는 초석은 완연히 남아 있다.'
이는 1738년(영조 14) 어느 가을 날 기록이다. 54세때 익산 금마를 답사한 강후진은 200여 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 너무나도 선연히 금마땅 미륵사지를 기록하고 있다.
이 답사기의 사료적 가치는 매우 높다. 실제 석탑이 7층까지 남아 있었고, 무너진 탑 서쪽 면의 벽을 쌓아 사람이 올라갈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기록이다. 마전이나 사자암 지명은 현존하며, 저산, 명적암, 석정, 용추 등의 지명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유금마성기'는 익산 금마 일대의 왕궁리, 미륵사지, 쌍릉 등이 답사를 통해 당시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완산의 김창익·김수봉, 익산 사람 최운거와 함께 만경강 춘포 일대의 횡탄, 왕검성(왕궁리)의 정원유적와 오금산성, 그리고 미륵사지와 기준성(미륵산성), 당산과 쌍릉 등이 세밀하게 관찰하고 자신의 역사적 소신을 바탕으로 답사기를 적고 있다.
‘유금마성기’는 만경강 춘포 일대의 횡탄를 건너 왕궁리유적 일대를 답사한다. 이는 1738년 익산 금마지역을 답사한 강후진이 기록한 미륵사지, 왕궁리유적, 오금산성, 미륵사지, 미륵산성, 쌍릉 등 백제유적에 대한 생생한 답사기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유금마성기(遊金馬城記)’는 1책 11장으로 된 한문필사본이다. 강후진은 유금마성기 의 첫 글에 ‘호남의 금마군(金馬郡)은 옛날 미한국(馬韓國)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러한 ‘금마’를 고창 무장현출신 강후진은 마한의 시조 무강왕(武康王) 준왕(箕準)의 남래(南來)지역으로보고, 기준이 세운 나라 ‘馬韓’의 중심 도읍지로 익산 금마를 지칭하고 이를 강조하여 기술하고 있다. 그는 금마를 마한의 옛 도성이라 생각하고, 현재의 왕궁리 유적(왕검성)은 무강왕(武康王) 기준의 옛 궁터로, 미륵사지는 무강왕 기준이 건립한 절로, 미륵산성(기준성)은 무강왕 기준이 쌓은 성으로, 쌍릉은 무강왕 기준와왕비의 능으로 추정하고 답사를 통해 이를 증명하려 했다. 강후진의 답사는 전주 이북에서 출발한다. 함께 동행하는 사람은 김익창(金昌益) 등으로 이들은 금마 일대의 지리와 역사를 잘 아는 사람으로 보인다. 강후진은 ‘왕궁리 유적’을 ‘(왕궁성)王宮城’이 아닌 ‘왕검성(王儉城’)으로 명명하고, ‘마한왕이 행차하여 정사를 듣는 곳’으로 판단했다. 강후진은 당시에 왕궁성의 정황을 “그 돌은 모두 다듬고 쪼아서 사방 모퉁이를 두루 돌렸고, 무너진 기왓장과 깨어진 그릇이 밭두렁에 겹쳐서쌓인 것이 무수하다.”라고 생생히 적고 있다. 특히 기와의 제작 기법을 고구려식과 비교분석하기도 하고 흑도(黑陶)의 소박한 형태, 기와의 음각, 양각 기법 등이 확인됨을 세세히 적시하고 있다.
강후진은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무장현(茂長縣) 출신의 지식인이다. 신천강씨(信川姜氏)의 28대 손으로 무장에 세거했다. 그는 반계 유형원, 이재 황윤석 등과 더불어 호남실학자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는 직접발로 뛰는 상고사를 집필한 당대의 지식인으로 투철한 체험정신과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 지리, 사상, 언어, 민속 등 다양한 분야에 저술활동을 남긴 학자로 재조명되고 있다.
2020년 6월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 공포되며 고대역사문화권 연구의 정비ㆍ활용 등의 법적 근거 마련됐다. 여기에 전북의 마한이 누락됐으나 광주ㆍ전북ㆍ충청 등에서 포함을 요구하는 법안을 발의, 권역 확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전북은 마한을 꽃 피운 중심지로 관련 유적이 상당히 많다. 다만 문헌 부분은 제한된 측면이 있어 콘텐츠의 확장이 필요하고, 이를 토대로 선제적 발전 계획수립이 필요해보인다.
'유금마성기'는 정형화된 자료와 유적을 넘어서는 새로운 콘텐츠로 확장할 수 있고, 기존 자료와 연계, 사적 지정ㆍ국책사업 발굴 등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최근들어 한국판 뉴딜에서 문화재청과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재의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관리ㆍ국민의 접근 편의성을 높이는 실감형 문화유산 콘텐츠 사업 등을 중점 추진하고 있다. 이에 '유금마성기'의 내용을 토대로 세밀하게 미륵사지의 실감콘텐츠를 제작하고, 준왕의 남천과 관련된 홀로그램 제작, 디지털 키오스크, 미디어 파사드 등의 기술 접목이 필요하다. 또, 강후진이 직접 답사한 곳을 복원,‘실학자의 길’을 구축하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전북의 인물 강후진을 재조명해 실학자로서 위상을 정립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를 위해 설립 예정인 전라유학진흥원에서 과제로 저서 등을 번역하고 각종 학술대회 등을 추진하여 최치원-김구-유형원—강후진-신경준-황윤석-전우 등으로 계승되는 전라유학의 맥을 구축해야 한다.
박정민 박사는 “전북 지역의 실학자인 강후진을 재조명하고, 그의 역작인 '유금마성기'의 내용 토대로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 실감형 문화유산 콘텐츠 사업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