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토리

부안 양어머니를 가슴으로 사랑한 브라이언 배리 변산바람꽃으로 피어나다

이종근의 행복산책 2021. 2. 8. 23:23




부안 양어머니를 가슴으로 사랑한 브라이언 배리 변산바람꽃으로 피어나다

기사 작성: 이종근 - 2021년 02월 07일 15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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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뮤지컬 배리 바람꽃이 5일 오후 5시 한국전통문화전당 2층에서 공연장에서 열려 박수 갈채를 받았다.

우분투가 주관·주최한 이번 공연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사람’을 테마로 평화봉사 단원으로 와서 한국인으로 삶을 마감한 브라이언 배리(Brian A Barry. 1945~2016)의 삶을 조명했다.

1966년 한반도에 첫발을 디딘 미국 평화봉사단원들의 가장 어려웠던 점은 쪼그리고 앉아야 하는 화장실도, 누우면 발끝이 벽에 닿는 좁은 방도, 차디찬 펌프물도 아닌 ‘한국어’였다.

대한불교조계종 국제포교사이자 불모(佛母: 불화를 그리는 사람)로 활동한 브라이언 배리 법사. 미국 코네티컷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던 배리 법사는 1967년 부안군 변산반도에서 평화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한국과 연을 맺었다.

대학 재학중 1967년 평화봉사단으로 방한했다가 부안 변산반도에서 본 한국의 모습에 매료돼 졸업 후 다시 한국을 찾아 이내 한국에 정착했다.

그는 이 해 12월, 부안 산내면(현 변산면)에서 하숙을 치던 조기섭. 김초례 부부의 7남매 수양 아들이 됐다. 한국문화를 배우기 위해 부안과 서울을 번갈아 다니면서 도자기, 판화, 목각, 염색, 탈춤 등에 손을 대는 한편 영어 강사 및 교재 개발 연구원, 번역가, 사진가, 카피라이터 등으로 활동했다.

'우리 고향 변산 전북 부안 잘 모르시나요 변산반도 안와보셨나요/우리 고향 부안 변산 마음의 고향 변산반도 우리 고향 한번 오셔요/외변산도 있고 내변산도 있고 유적지도 많고 산해진미 최고/음식을 권하고 사람도 권하고 그 인심 너무 좋아 말씨 구수하고/새만금도 보고 채석강 가보고 해수욕장도 많고 캠핑장도 있고 등산길이 최고 낙조대도 많고 해수욕장 많아/내소가가 월명암 가보고 등산길이 있다 직소폭포 있고/숙박시설 완벽하고 없는 것이 없고 백합죽 맛 좋고 반지락 있고 갑오징어 나오고 쭈깨미도 많고 환상적인 위도 낚시터가 많고/백제항쟁 못들어보았나요 우금산성 안와보셨나요. 우리 고향('부안에 살래')

그는 1979년부터 1998년까지 대우그룹에 근무하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어 대원정사 불교대학에서 불교를 공부했다. 1985년 서울 불광사 광덕 스님에게 도해(道海)라는 법명을 받고 새로운 인생 항해를 시작, 1986년 신촌 봉원사를 참배하던 중 단청을 보고 감화받아 불교미술의 대가 만봉 스님에게 탱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1987년 조계종 최초의 외국인포교사 자격을 품수 받고 성철스님의 제자 원명스님과 함께 연등국제불교회관 창립과 운영에 동참한 이후 조계종 국제포교사 양성과정 강의 등 국제포교 인력 양성과 교육에 힘썼다.

법정 스님 수필 가운데 에세이 65편을 가려 'The sound of water, The sound of wind(물소리 바람소리)'로 엮기도 했는가 하면 세계적으로 알려진 '한국의 불화' 전 40권 영역도 그의 노력의 산물이다.

한국 불교를 세계에 소개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9 문화의 날'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는 화관문화훈장을 수여했지만 병세가 위중해 훈장 전달식에 나가지도 못했어도 전라도 사투리로 유머러스한 수상 소감을 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99년에는 태국 왕실사원의 부탁으로 탱화를 그리는 등 탱화장으로서 실력을 인정받기도 한 그는 2016년에 사망, 김초례 양어머니 옆에 묻혔다.

조기현 우분투대표는 "2월의 양지 빛을 눈부시게 받으며 개화하는 변산바람꽃처럼 우리에게 오신 브라이언 배리 삼촌의 한국 사랑 이야기를 만들었다"면서 " 한 편의드라마로도 부족한 이야기를 감히 '부안바람꽃'을 창작 뮤지컬에 담아보았다"고 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