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익산, 허균이 '도문대작'을 쓴 명문의 고장

이종근의 행복산책 2020. 7. 8. 15:43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1569~1618)은 미식가였다.

문집 성소부부고에는 도문대작(屠門大嚼)’ 편이 있다. ‘도문(屠門)’은 푸줏간을 뜻하며, ‘대작(大嚼)’은 크게 입맛을 다시는 것을 뜻한다. 고깃집 앞을 지나면서 입맛만 다신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이 쓴 글을 가끔 보면서 한 점의 고기로 여기겠다며 제목을 푸줏간 앞에서 크게 입맛을 다신다는 뜻의 <도문대작>이라 지은 것이다. 그러고는 서문 말미에 먹는 것에 너무 사치하고 절약할 줄 모르는 세속의 영달한 사람들에게 부귀영화는 이처럼 무상할 뿐이라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밝히고 있다.

 위나라 조식이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에서 푸줏간 앞을 지나며 크게 씹는 시늉을 함은 고기를 비록 못 얻어도 귀하고 또 마음에 통쾌해서다(過屠門而大嚼, 雖不得肉, 貴且快意)’라고 한 데서 따왔다. 흉내만으로 자족하는 것을 비유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이다.

  그는 '함열현'에서 1613년까지 머물면서 '도문대작'이란 음식 관련 책을 쓴다. 1610년 과거 시험 채점 부정에 연루되어 전라도 함열 땅에 유배 갔다. 귀양살이 중에서도 사람들이 이곳에서 가는 뱅어와 준치가 많이 난다고들 하기에 여기로 유배 오기 바랐다. 그런데 올해 봄에는 일절 나지 않으니 또한 제 운수가 사납다라는 내용도 보인다. 알아주는 식도락가였던 허균이 병어를 먹지 못해 아쉬워했다니 그 맛이 보통은 아닌 듯하다.

  유배지의 밥상에는 상한 생선 아니면 감자나 들미나리가 올라왔다. 그마저도 귀해 주린 배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정작 그렇게 골라 간 함열에서 변변하게 먹을 것이 상에 올라오지 않자, 식탐을 참을 수 없어 저술한 책이 도문대작이다. ‘도문대작은 짧은 글이지만 그 글이 담은 내용은 방대하다. 그는 책상에 오도카니 앉아서 지난날 물리도록 먹었던 귀한 음식에 관한 기억을 하나씩 떠올렸다.

떡과 과실, 고기와 수산물, 그리고 채소에 이르기까지 종류별로 적어 나갔다.

 

방풍죽은 강릉, 석이병은 표훈사, 백산자는 전주, 다식은 안동, 밤다식은 밀약, 차수(叉手:칼국수)는 여주, 엿은 개성, 웅지정과(熊脂正果)는 회양, 콩죽은 북청의 것이 명물이다'

 

방풍나물로 끓인 방풍죽. 한 번 먹으면 달콤한 향기가 입안에서 사흘을 간다는 방풍은 평양의 냉면, 진주의 비빔밥 등과 함께 팔도의 대표 음식으로 꼽힌다.

그는 강릉의 해안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방풍으로 끓인 것이 아니면 그 맛이 안난다고 했다. 부안의 예가 바로 그것이다.

 

'대만두는 보만두라고도 불리며 평안도 의주 지방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만큼 대만두를 잘 만든다. 백산자(박산. 쌀로 만든 백당을 고물에 묻혀 먹는 한과)는 전주, 석이병은 금강산, 다식은 안동, 엿은 개성, 약밥은 경주 등이 잘한다.'

 

이 책은 전국 각지의 특산 식재료 백 수십 가지를 분류해 수록해놓았다. 심지어 곰 발바닥과 사슴 꼬리는 어디 어디 것이 좋다고 올려놓았을 정도다. '도문대작'에는 각종 음식과 함께 그 음식의 명산지가 나온다. 인터넷도 먹방도 없던 시절임을 고려하면 그 엄청난 지식과 정보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