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반구천의 암각화가 1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2023년 가야 고분군 등재 이후 2년 만에 새로운 세계유산이 탄생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총 17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신석기 시대 인류 최초 고래잡이 활동을 자세히 묘사한 ′반구대 암각화′ 신라 법흥왕 시기 도형과 그림, 글씨 620여 점을 담고 있어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꼽히는 ′천전리 암각화′ 두 유적을 아우르는 반구천의 암각화는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높은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다.
전북에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원 대곡리 암각화와 익산 호암리 범산 암각화가 남아있다.
대산면 대곡리 401번지의 대곡리 암각화는 봉황대로 불리는 구릉의 정상 부근 암벽에 새긴 것으로 호남지방에서 유일한 선사시대의 암각화로, 1991년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전북지방의 선사시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익산시 낭산면 호암리 범산엔 전국 최초로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추정되는 암각문자 5기가 있다.
암각문자 유적이 분포한 이곳의 지형은 남으로 미륵산이 보이고 서북쪽에는 직선거리 13㎞ 정도에 금강이 흐르고 있다. 과거부터 호암리의 범바위산이라고 불리웠는데, 이곳에 새겨진 호랑이상이 지명 유래의 밑바탕이 되는 결정적 단서가 되고 있다.
△남원 대곡리 암각화
남원엔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곡리 암각화 (大谷里 岩刻畵)가 있다.
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동굴벽에 기호나 물건, 동물 등의 그림을 새겨놓은 것을 말하는데, 주로 농사의 풍요와 생산의 의미를 지니는 주술행위의 결과물로 보인다.
대산면 대곡리 401번지의 대곡리암각화는 봉황대로 불리는 구릉의 정상 부근 암벽에 새긴 것으로 호남지방에서 유일한 선사시대의 암각화이다.
암각화는 두 곳에 위치하고 있다. 크기는 1∼2m 내외이며 상하 혹은 좌우 대칭으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겼다. 마모가 심하여 자세하지는 않지만,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을 묘사한 듯하다.
이 암각화는 1991년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전북지방의 선사시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학자들이 청동기시대의 문화유전자를 가진 곳이라는 그 암각화에 들어사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소금바위, 뱀바위, 북극성,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별, 도토리 나무, 돼지머리 제단, 제월봉, 솟대혈 같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손과 생각의 때가 그대로 묻어 있는 그 조각들의 몸통은 하늘 그것도 암각화 머리위에 새겨둔 북극성이 정점이다
그곳이 그때 사람들이 주고 받고자 했던 대상에게 보냈던 통신기지 암각화 제단이었다
뱀과 알과 돼지 즉 뱀이 알을 먹으려는 순간 돼지가 뱀의 응징자로 나타나게 한 그 삼존의 균형조화를 내어준 부족 공동체 수호신이 북극성에 있었고 그 수호신의 유전자가 보이는 곳을 제단으로 내며 그 제단에 올리는 도토리와 소금의 제물을 북극성을 오고가는 통신 왕복선의 연료로 삼은 것이다.
당시 그 제단에서 올리는 부족 사람들의 염원을 가지고 북극성을 올라갔다가 내려온 통신 왕복선 돼지와 함께 북극성 수호신의 답을 가지고 내려온 자를 그 제단 바위에 새겼고 5개의 암각화는 5개 별자리 카시오페아 그것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김용근 선생은 "10월은 상달이고 도토리 달이다 일년 농사물 햇곡식과 햇과일을 모아 하늘과 조상께 감사를 올리는 달이다. 인간의 풍요와 다산은 열달을 견뎌온 자연에서 오고 그 관찰 대상은 도토리 나무였다"면서 "그 제단이 봉황대 암각화이리라. 남원 대곡리 봉황대 암각화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처럼 생활상의 흔적은 없고 제단의 흔적만 보이니 그것에 들일 이야기를 그 유전자로 풀어보는 것이고 거기에 더하여 대곡리 암각화는 한반도 최초의 공동체 문화축제 한마당으로 풀어보는 것이다. 천년고도 천 개의 이야기 씨앗은 그 대곡리 암각화에 끈을 대고 있음이리라"고 했다.
△ 익산 호암리 범산 암각화
익산시 낭산면 호암리 범산에서 전국 최초로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추정되는 암각문자 5기가 있다.
익산고적연구회가 암각문자를 공개해 주목을 받았고, 청동기 시대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부분에 대해 고조선 시대의 산목문자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익산 호암리 범산의 암각문자 유적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낮은 구릉의 조그마한 야산이다.
낭산면 호암리 산 592, 593-1, 593-2번지 일대로 낮은 구릉의 조그마한 야산이다. 범산엔 70∼80년 생의 조선 소나무가 운집해 있으며 분기와 약간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암각문자 유적이 분포한 이곳의 지형은 남으로 미륵산이 보이고 서북쪽에는 직선거리 13㎞ 정도에 금강이 흐르고 있다. 범산 주위의 대부분의 논을 파면 뻘 층을 이루고 있어 강물이 유입된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암각문자는 고조선 시대의 산목문자를 근거로 작성되어 있으며 조각수법에서도 두드러진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이곳이 예전부터 호암리의 범바위산이라고 불리웠는데, 이곳에 새겨진 호랑이상이 지명 유래의 밑바탕이 되는 결정적 단서가 되고 있다.
1호 암에 나타난 문자는 천(千), 금(金), 정(丁), 목(木)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고 좌측면에는 일천 천(千)자가 새겨져 있다.
암석의 재료는 화강암으로 풍화작용에 의한 마모가 있으며 문자의 형태는 식별할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오늘날 문자와는 차이가 있어 해독이 어렵다.
2호 암은 부호 ‘·과 ≡, ↓’가 조합하여 만들어진 문자와‘천(千)과 전(田)’등이며 3호 암에는 상(上), 정(正), 명(明)의 글자와 피라미드 모양이나 사각뿔처럼 생긴 바위에 빼곡이 문자가 새겨져 있으며 중앙에는 이곳 암각문자 중 가장 크고 깊이 새겨진 글자가 남쪽을 향하고 있다.
4호 암에서 나타난 암각문자는 十자와 ≠, 州, 世, 之, 井, 正 등이 새겨져 있다. 바를 정(正)자는 정벌 정의 옛글자로 쓰였던 예가 있어 정벌을 의미하는 글자가 아닌가 하며 바를 정자 위의 점들은 종족의 전진을 의미하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
또, 井자는 9개로 나눠진 밭으로 가운데 부분은 백성들이 경작해 얻은 곡식을 임금님께 받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뒤늦게 발견된 5호 암에서는 문자가 아닌 호랑이 얼굴의 눈과 코가 새겨져 있다. 이 문양은 이 산을 범산이라 불리게 된 배경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은 자연 그대로의 바위로 입안은 연푸른 이끼가 있고 눈과 코는 인위적으로 만들어 한 눈에 호랑이의 얼굴임을 알 수 있다.
호랑이 바위는 선사인들에게 수호신의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간과할 수 없는 부분으로는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과 연관된 단군신화에 호랑이가 등장하고 있고 외래 종교인 불교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삼신각 안에도 호랑이가 있으며 민화에도 호랑이가 널리 그려지고 있다.
범산의 암각문자 유적은 千, 明, 金, 世 등 몇 자를 제외하면 해독할 수 없는 여러 형태의 문자로 음각되어있다.
하지만 바로 이같은 암각문자에 대한 선행 연구는 국내외 어느 곳에서도 전무한 상태인 만큼 비교할 수 없었고 암각문자만 보고 연대를 측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지표상에 시대 편년을 밝힐 수 있는 유물을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성격을 규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취약점을 보완하는 관점에서 청동기 문화권에 접근하고 익산 일원의 마한문화와 관련지어 기초자료를 얻었다.
이 유적의 성격으로는 신과 인간 사이를 잇고 싶어했던 이곳 세력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판단된 가운데 청동기시대 유적과 관계되는 집단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강의 내륙과 유역일대의 종합적인 청동기시대 유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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