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마을을 산책하면서 스치는 기운이 제법 쌀쌀합니다. 그래도 상쾌한 기분이 듭니다. 오늘이 절기로 백로(白露)이니 말입니다.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합니다. 옛 중국 사람들은 백로입기일(白露入氣日)로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그 특징을 말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候)에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습니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 벼도 이제 제법 영글어가는 계절입니다. 풍성한 계절에 마음까지도 풍성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고(東皐, 장수군 학선리 동고) 마을을 찾아갑니다. 동고 마을은 임진왜란 무렵에 수원 백씨에 의하여 형성 되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상동고와 하동고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산신제와 당산제를 지냈으나 인구 줄어들고 마을사람이 노령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 이름은 동쪽을 바라보며 따뜻한 언덕에 터를 잡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동고마을은 영대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대산의 좋은 기운을 받아 누구라도 살만한 터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동고마을은 ‘빈대알등’이라 불리는 곳에 본래 마을입구였다고 합니다. 옛길 입구에는 왕버들나무 숲 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을 ‘숲거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현재는 경지정리를 하여 일직선으로 된 길을 새롭게 냈는데 중턱에 또 다른 마을숲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왕버들나무 숲을 ‘아랫숲거리’ 중턱에 있는 숲을 ‘윗숲거리’라 부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랫숲을 거처 윗숲을 지나 마을로 진입하는 구조였으나 현재는 마을길이 일직선으로 난 상태입니다.
흔히 버드나무하면 전주천변에 있는 능수버들을 떠올립니다. 능수버들은 가지가 땅으로 휘늘어지는 품이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버들은 능수버들을 비롯, 갯버들, 수양버들, 고리버들, 용버들, 들버들, 떡버들, 왕버들 등 비롯하여 30여 종류에 이릅니다. 특히 버드나무는 우물가에 많이 심겨지는데, 이는 무성하게 자라는 뿌리가 우물물을 깨끗하게 걸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왕버들나무는 마을숲으로 가끔씩 목격되는 숲입니다. 고창 삼태마을은 왕버들나무 숲으로 이름난 곳입니다. 왕버들은 수백 년을 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지가 굵고 튼튼해 아름드리로 자라는 멋진 나무입니다. 왕버들나무는 개울가와 호수가 등지에 서식하며, 습지에서 잘 자라 수원(水源)의 지표식물이기도 합니다. (나무이야기) 일반적으로 마을숲을 구성하는 수종들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며 숲과 인접한 지역에서 생장하는 것으로 그 지역의 기후, 풍토에 순치(馴致)된 수종입니다. 동고마을 아랫숲이 왕버들나무인 경우도 이와 연관됩니다. 동고마을 아랫숲인 왕버들 나무는 현재 비록 5그루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마을 숲으로서 마을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윗숲거리는 제법 큰 느티나무(3주)와 개서어나무(3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후계목으로 느티나무를 조성했습니다. 마을숲의 나무들은 비슷한 연령의 한두 수종이 우점(優占)을 이루는 경향이 높습니다. 이는 나무를 심을 때 모아심기[군식]를 했기 때문입니다. 또 수령을 보면 일시적인 모아심기나 단계적 모아심기도 나타나 마을숲을 자세하게 연구하면 마을사람들이 마을숲을 조성한 역사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윗숲 땅은 마을소유이고, 마을 ‘보호막이’라고 마을사람들은 언급합니다. 이곳에 모정을 조성하여 마을휴식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윗숲거리 역시 비록 작은 규모의 숲이지만 마을사람들은 소중한 마을숲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또 이곳에 특이한 형태의 자연석이 있는 있는데, 마을사람들은 배로 인식한 나머지 콘크리트 단 위에 모셔두고 있습니다. 돌거북 처럼 보이는 배 모양 돌은 오래전부터 전해오는데, 만선을 하고 마을에 들어오라는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즉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소중하게 보존해 왔던 마을의 보물인 셈입니다. 영대산 기슭 좋은 기운을 받아 마을 터가 형성되고 인심 좋게 살아왔던 동고마을사람에게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을입구였고 그 허(虛)지점 두 곳에 마을숲을 조성하고 거기에 풍요를 기원하던 배 모양 돌까지 함께 조성해 완벽한 땅을 이루었습니다. 올 가을은 어느 해 보다도 풍성한 계절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 /마령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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