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이 낳은 한문 서예가의 대가 여산(如山) 권갑석(權甲石)선생이 지난 25일 작고했다.
특히 행서 등 한문서예로 널리 알려진 선생은 익산 숭림사 일주문 편액을 포함, 월출산 도갑사, 오
목대 대풍가, 정산종사 빗돌 노래 시비를 쓰기도 했다.
또, 2001년 10월 제3회 세계 서예 전북 비엔날레의 특별기획전의 한국서예가 천인천자문에 참여,
‘하늘천’ 첫 자를 휘호하기도.
여산선생은 익산 출생으로 전주사범학교를 졸업,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입선 4회, 대한민국 미술전
람회 특선 4회, 국전 제21회 서예부 최고상을 수상,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차지한 바 있다.
그후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 등을 역임하면서 국민훈장 동
백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서예전람회 운영위원장,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서가
협회 고문을 맡기도 했었다.
교사 시절 본격적인 서예 공부를 시작한 그는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연이어 입선과 특선을 수
상하며 두각, 지역 서단의 거목으로 성장했다.
교단에서 정년 퇴임하며 현역 생활을 정리한 지 오래지만 30여년 전부터 손수 꾸려온 한국서예연
구회에서 못다 이룬 꿈을 일궈가기도 했다. 신춘휘호대전과 한국서예대전 등을 통해 서예의 저변
확대에 특히 많은 공을 들인 것이다.
2002년엔 제10회 목정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서가협회 공동의장, 창암 이삼만 선
생 기념사업회장 등으로 활동한 데 따른 수상이었다. 조선후기 명필 창암 이삼만 선생의 서예비가
전주 덕진체련공원에 세워진 것도 그의 집념 때문이었다.
지난해 6월에는 두 딸과 함께 가족 서화전을 열기도 했다. ‘삼산(三山) 가족서화전’ 은 평소 가
족전을 여는 것이 소원이었던 여산 선생의 소망으로, 자신인 여산(如山)을 포함, 유산(裕山) 영수
씨와 한국화가 안산(安山) 영주씨와 묵향을 통해 그 꿈을 그윽히 담았다.
선생은 지난 1944년 교육계에 입문, 1989년 정년퇴임 때까지 46년간이나 교직에 몸담아모면서 익
산시와 군산시 등에서 교육장을 지낸 바 있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
'작업실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채화가이자 의사 최인수 (0) | 2008.05.01 |
---|---|
서예가 서홍식 (0) | 2008.04.30 |
사진가 이철수 (0) | 2008.04.24 |
서양화가 이정웅 (0) | 2008.04.22 |
한국무용가, 채색화가 이양자 (0) | 2008.04.17 |